세계 경제에 짙은 불황의 한파가 몰려오고 있나? 아니면 지나친 기우에 불과한가? 나홀로 호황 미국은 최장기 경기 확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방준비제도(연준)가 31일(현지시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 기준금리를 내린 것은 세계 경제의 둔화 때문이다. IMF는 지난 23일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2%로 0.1%포인트 낮추며 4회 연속 하향 조정했다. 연준은 이번 조치를 세계 경기 둔화의 여파가 미국으로 번지기 전에 예방적 차원의 '인슈어런스 컷(insurance cut)'으로 규정했다.
뉴욕 주식은 이날 기준 금리 0.25%포인트 인하 소식에도 불구하고 급락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이번 조치가 장기적인 금리인하 사이클은 아니라고 밝힌 영향이다. 그동안 공격적인 금리인하를 압박해온 트럼프 대통령도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날 트윗을 통해 "시장이 파월 의장과 연준에서 듣고 싶었던 말은 이것(금리인하)이 중국과 유럽연합(EU), 그리고 다른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장기적이고 공격적인 금리 인하 사이클의 시작이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과거 미국 대통령은 연준에 대한 독립성을 존중하는 의미로 금리 정책에 대한 언급을 피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관례를 무시하고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해 틈만 나면 노골적으로 간섭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최근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인 3.7%를 기록하는 등 경제 지표가 호조를 보이고 있는데 트럼프가 금리를 대폭 내리라고 압박하는 것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상당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 트럼프와 그의 비판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파월 의장은 31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금리인하는 명확하게 보험적 성격"이라며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트럼프의 '0.5%포인트 빅컷'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고 향후 추가 금리인하를 단언하지도 않았다. 또 "이번 금리인하는 '중간 사이클'(mid-cycle)의 조정"이라며 "이건 장기적인 일련의 금리인하의 시작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리인하 국면이 단기간에 그칠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그러나 연준이 시중의 달러 유동성을 회수하는 양적 긴축 정책의 종료 시점을 9월 말에서 2개월 앞당겼다. 트럼프의 요구 중 일부 수용한 셈이다.
어쨌든 이번 연준의 금리 인하 조치는 미국 통화정책의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파월의 전임자인 재닛 옐런 의장 시절이던 2015년 12월 연준은 '제로 금리 종료'를 선언하고 점진적 금리 인상과 긴축 기조로 돌아섰다. 이어 2016년 1차례, 2017년 3차례, 지난해에는 4차례 각각 금리를 올렸다. 모두 0.25%포인트씩 9차례 금리를 올리면서 기준금리를 2.25~2.5%까지 끌어올렸다. 연준은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된 올해 들어서는 지난달까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유보하는 태도를 취해왔다가 이번에 2008년 10월 이후 첫 금리인하에 나선 것이다. 즉, 금융위기 직후로 시중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을 흡수하는 '통화긴축 사이클'이 3년 7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이로 인해 기타 세계 주요 경제권 중앙은행들도 미국의 통화정책 완화 움직임에 동참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실시된 주요국들의 동시다발적인 금리 인하 움직임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주 유럽중앙은행(ECB)은 기준 금리를 현행 0%로 유지했으나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현행 금리 수준이나 더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일본은행(BOJ)도 이번 주 금융정책회의에서 단기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0.1%로 유지하면서 장기 금리(10년물 국채)를 계속 0% 정도로 억제하기로 결정했다. 또 경제가 추락해 물가가 악화할 경우 "주저 없이 추가적 금융완화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결정문에 명기했다. 미·중 무역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으로 일본·유럽을 비롯한 선진국과 신흥국들도 줄줄이 돈 풀기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준의 금리 인하 조치가 글로벌 통화흐름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연준의 금리 인하 배경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이 많지만 무엇보다도 그 원인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결적 무역정책에 있다고 볼 수 있다. 1년여간 끌어온 미·중간 무역 갈등이 봉합되지 않으면서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에 빠져들고 있다. 6월 말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무역 전쟁의 '휴전'에 합의한 이후 미·중 양국은 지난 이틀간 중국 상하이에서 무역 협상을 개최했으나 별다른 성과없이 끝났다. 블룸버그통신은 양국 협상이 3개월 전보다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양측은 9월초 미국 워싱턴D.C.에서 협상을 이어가기로 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한 셈이다. 중국 측 입장에서 보면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강제 기술이전, 지적재산권 문제, 비관세 장벽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한 타결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급한 건 미국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무역 분쟁이 쉽게 타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미국의 이번 금리 인하 조치 이면에는 '환율 냉전(cold currency war)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금리 인하로 가계·기업의 부채이자 부담이 줄고, 소비·투자 여력이 늘면서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지만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며 수출 경쟁력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가치가 고평가 된 까닭에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 상대국들과의 무역적자가 커진다고 보고 있다. 또 중국과 유럽이 거대한 환율조작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 핌코의 요하임 펠스 글로벌 경제고문은 최근 CNBC 방송에 출연, 환율냉전을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금리인하나 마이너스 금리, 양적 완화 등을 통해 이뤄지는 전쟁이라고 설명하고, 연준이 다른 중앙은행에 비해 금리인하 여유가 많은 상황이라 미국이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설명했다.
각국이 수출지원을 위해 경쟁적으로 통화 가치를 낮추는 글로벌 환율전쟁이 본격화 되면 대외경제 변수에 민감한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경제가 안갯속을 헤매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심화되는 한·일 갈등은 우리 정부와 기업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퍼펙트 스톰(초강력 폭풍)으로 다가오는 한국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신속한 대책이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