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장은 지난 15일 당내 여론조사 경선을 통해 후보로 내정됐다. 그는 44.8%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만 최대 재벌인 궈타이밍(郭台銘) 전 훙하이(팍스콘)그룹 회장을 꺾었다. 17일 당중앙상임위원회 추인을 거쳐 오는 28일 전당대회에서 당 후보로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여당인 민진당은 지난 6월 일찌감치 차이 총통을 대선후보로 선출해 놓은 상태다.
특히 최근 홍콩 인도법(일명 송환법) 반대 시위로 중국에 대한 경계감, 이른바 '차이나포비아'가 대만에 확산되는 가운데 양안(兩岸·중국 본토와 대만) 관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특히 대만 통일이냐 통일 반대냐가 이번 대선의 최대 이슈로 부각된 모습이다.
◆'반중' 여론 고조 속 부활··· 차이잉원
차이 총통은 2016년 첫 대만 여성 총통, 8년 만의 정권 교체 등 타이틀을 얻으며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취임 직후만 해도 지지율은 과반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가 강하게 밀어붙였던 연금개혁안, 탈원전, 노동법 개정, 동성혼 허용 등 각종 개혁안은 심각한 사회 갈등을 초래했고, 지지율은 내리막길을 탔다. 또 친중 행보를 보인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과 달리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 않고 대만 독립외교 노선을 걸으며 양안 관계도 수렁에 빠졌다. 결국 지난해 11월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국민당에 참패하면서 차이 총통의 재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듯 보였다.
상황이 급반전된 건 올 초부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과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통일방안을 제창하면서다. 그는 당시 통일을 위해서라면 무력 사용도 불사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차이 총통은 일국양제 통일방안을 거부하며 단호히 대응했다. 이에 따른 반사효과로 바닥을 치던 지지율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지난달 고조된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로 중국을 향한 경계심이 대만으로까지 번지며 차이 총통의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차이 총통을 지원사격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결정한 데 이어 대만 현직 총통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차이 총통이 미국에 4박 5일 장기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중국이 제창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중국의 거센 반발을 샀다.
차이 총통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비공개 강연에서 사실상 중국을 ‘독재 정권’이라고 비판할 정도로 중국에 날을 세웠다. 그가 연임에 성공할 경우 양안 갈등이 더욱 격화해 대만 해협이 '동아시아 화약고'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대만 독립은 '매독'보다 무섭다"··· 한궈위
차이 총통에 맞설 한궈위 시장은 노골적인 친중파다. 1949년 국공내전 이후 대만으로 패퇴한 국민당군 장교 아들인 그는 사실상 중국 본토에 뿌리를 둔 대만인, 즉 외성인(外省人)이다. 차이 총통은 중국 본토에 반감을 가진 대만 토착 원주민인 본성인(本省人)이다.
한 시장은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당국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중국의 대만정책 총괄 사령탑인 류제이(劉結一) 국무원 대만판공실 주임과는 3시간 동안 화기애애한 회담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 시장은 '92공식(九二共識)'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92공식은 1992년 중국과 대만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의 해석에 따라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대만은 중화민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것을 말한다.
한 시장은 심지어 대만 독립에 대해 "'매독'보다 무섭다"고까지 한 적도 있다. 차이 총통이 집권기간 내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은 것과 비교된다.
사실 최근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에 따른 반중 정서가 대만에까지 번지며 한 시장 지지율이 주춤하기도 했다. 홍콩 시위엔 관심 없는 등 냉담한 태도를 보여 여론의 질타도 받았다. 하지만 120만명에 달하는 두꺼운 팬층의 열성적 지지가 그를 국민당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게 도왔다고 대만 현지 언론들은 분석한다.
한 시장은 사실 1년 전까지만 해도 무명의 정치인이었다. 한때 입법위원(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2012년부터는 농산품운수판매공사 총경리(사장) 등을 맡았으며, 지난해 국민당 주석 경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야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만 전역에 ‘한류(韓流·한궈위 열풍)'를 일으키며 ‘정치스타’로 떠올랐다. 20년간 '민진당 표밭'이었던 대만 2대 도시 가오슝에서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대머리'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운 그는 직설적이고 솔직한 성격, 기존 정치인과 달리 정쟁에 얽매이지 않는 신선하고 서민적인 모습으로 유권자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한류'는 국민당 전체 지지율까지 끌어올리며 차이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에 뼈 아픈 패배를 안겼다.
◆캐스팅보트 '제3의 후보'··· 커원저? 궈타이밍?
차이 총통과 한 시장의 양강(兩强) 구도 속 캐스팅 보트를 쥔 ‘제3의 후보’가 출마할 가능성도 있다. 한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로 꼽힌 무소속 커원저(柯文哲) 타이베이 시장이다.
외과의사 출신인 그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기존 정치인과 다른 신선한 이미지로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며 타이베이 시장에 당선됐다. 무소속이지만 당시 야권이었던 민진당과 연합해 16년간 '국민당 표밭’이었던 타이베이시에 국민당을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타이베이 시장 직은 대만 총통으로 가는 등용문으로 불린다. 마잉주(馬英九), 리덩후이(李登輝), 천수이볜(陳水扁) 등 대만 전직 총통 대부분이 타이베이 시장을 지냈다. 그의 출마설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커원저는 타이베이 시장 취임 후 친중·반중에 얽매이기보다는 양안 관계에 있어서 실용주의적 태도를 취하며 반중 성향의 민진당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뒀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선 단독 출마해 국민당과 민진당 양당의 공세를 받았음에도 연임에 성공했다.
이번 국민당 경선에서 2위로 낙선한 궈타이밍 전 훙하이그룹 회장이 국민당을 탈퇴해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흘러나온다. 그는 대선을 위해 45년간 일궈온 그룹 회장직도 내놓을 만큼 경선에 ‘올인’했다.
궈 전 회장은 경선 패배 후 한 시장에게 축하 메시지를 건네면서도 지지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당내에선 한 시장이 당심을 하나로 모으는 데 힘써야 한다며 우선 궈 전 회장부터 끌어안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만 궈 전 회장이 실제로 대선에 참여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국민당 경선 여론조사에서 한 시장과의 격차가 17% 포인트나 벌어졌던 만큼 그가 대선 출마를 신중하게 고려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한 시장과 차이 총통이 막상막하일 정도로 양강 구도가 뚜렷이 나타난다.
지난달 22일 대만 TVBS 방송이 차이 총통, 한 시장, 커 시장의 3자 대결 구도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차이 총통이 37%로 1위를 차지하고 한 시장(29%)과 커 시장(20%)이 뒤를 이었다. 특히 차이 총통 지지율은 전달과 비교해 12% 포인트 상승했으며, 한 시장과 커 시장 지지율은 각각 10% 포인트, 6% 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대만연합보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한 시장이 35%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으며, 이어 커 시장(26%), 차이 총통(22%) 순이었다.
◆"대만 통일론 지지냐 반대냐"··· 미·중 패권다툼 우려도
역대 6차례 치러진 대만 대선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양안 관계였다. 각 후보가 양안 관계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유권자의 표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국민당은 중국 본토와의 점진적 통일을 위한 협력 강화를 외친 반면, 민진당은 대만 독립과 주권 수호를 내세웠다. 그런 만큼 국민당은 '친중', 민진당은 '반중' 색채가 뚜렷하다.
특히 이번 대선 표심은 중국과의 통일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로 극명히 갈릴 것으로 보인다. 올 초 시 주석이 '통일론'을 외친 데다가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로 일국양제 통일론 경계심이 커져 반중 정서가 고조되면서다.
차이 총통은 벌써부터 일국양제 통일을 단호히 거부한다며 반중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국민당에겐 악재일 수 밖에 없다. 한 시장조차도 일국양제는 반대한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을 정도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미·중 무역전쟁 고조 속에 미국이 중국의 ‘역린’인 대만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는 가운데, 대만 총통선거가 사실상 미·중 간 대결이 될 것이라고까지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차이 행정부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반면, 한 시장은 사실상 중국 지도부가 물밑에서 보이지 않게 지원하는 후보라는 것. 일각에선 대만 대선이 미·중 패권 다툼의 장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곱번째 대선··· 대만 총통선거史
대만의 첫 총통선거는 1996년에야 치러졌다. 내년 선거가 일곱번째 대선이다.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에 쫓겨 대만으로 건너온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국민당은 1949년부터 1987년까지 대만을 계엄 통치했다. 이어 장제스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은 아들 장징궈(蔣經國) 총통은 ‘대만은 대만인이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 아래 1988년 사망하면서 본성인 출신인 리덩후이에게 총통직을 넘겨주었다.
리는 대만인 출신들을 대거 기용하고, 대만독립을 주장하며, 중화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직선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1996년 첫 대선에서 그는 53.99%라는 높은 지지율로 총통에 당선됐다.
2000년 대선에선 민진당 천수이볜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며 첫 정권교체가 실현됐다. 이후 민진당은 대만 독립노선을 걸으며 중국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특히 2007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대만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중국과의 관계가 시급해지면서 2008년 대선에선 국민당 마잉주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하지만 마 총통의 친중 정책에 대만이 중국 경제권 하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며 2016년 대선에선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차이잉원이 당선, 민진당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