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조원 규모의 승차공유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승차공유 업체의 원조 격인 우버는 지난 5월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으며, 미국 2위 승차공유 기업인 리프트도 올 들어 나스닥에 상장했다. 동남아시아판 우버로 불리는 그랩은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해 동남아 8개국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IT(정보기술) 강국을 표방하는 한국은 승차공유 시장이 정체된 모양새다. 정부가 택시업계의 눈치만 보며 승차공유 정책에 사실상 손을 놨다. 우버가 불법으로 몰려 퇴출된 후 5년간 진척이 없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내놓기로 한 택시‧승차공유업계 상생안이 기득권인 ‘택시 손들어주기’가 골자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앞으로 스타트업 참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차산업혁명 시대 ICT(정보통신기술)를 기반으로 한 신산업의 트렌드를 거스를 수 없다는 지적이다. 미국 컨설팅 업체 매킨지도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승차공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6년 1%에서 2030년 30%로 껑충 뛸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한국은 우버X(일반차량호출서비스) 서비스가 당국의 철퇴를 맞은 지 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승차공유 서비스 업체에 대한 투자 통계치 등 정확한 자료조차 갖추고 있지 않다. 우버, 그랩 등 해외 업체들이 글로벌 투자업계 큰손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등에게 과감한 투자를 받으며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제자리걸음으로 시장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카카오와 풀러스 등 카풀(승차공유) 서비스 등장으로 올해 초 정부와 정치권 모두 모빌리티 업계와 택시업계의 대타협에 반짝 관심을 가졌지만, 타협 이후 100일 넘게 손 놓고 있었다. 그러다 4개월 만에 택시 사납금을 폐지하고 카풀 영업시간을 제한한 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를 통과했다.
하지만 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카풀 허용 시간이 주중엔 오전 7~9시, 오후 6~8시로 두 시간씩에 불과한 데다 주말과 공휴일은 영업 자체가 금지돼 정상적인 운영이 힘든 탓이다.
김성수 서울대 교수는 “카풀은 일반 승용차로 목적지가 비슷한 다른 사람을 태워 가는 서비스다. 공유경제 관점에서 카풀 서비스에 제한시간을 두는 건 맞지 않다”고 했다.
카풀 서비스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렌터카 차량호출 서비스도 벼랑 끝에 몰렸다. 지난 12일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은 ‘단체관광을 목적’으로 한 11~15인승 승합차 렌터카만 운전기사를 알선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렌터카 차량호출 서비스를 제공하며 폭풍 성장한 ‘타다’를 겨냥한 셈이다.
정부 정책의 방향도 택시를 활용한 혁신을 주문하고 있다. 국토부는 모빌리티 업계가 택시 면허권을 매입‧임대해 운영하는 내용의 상생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매년 택시면허를 1000개가량 구입해 이를 모빌리티 업계에 개당 매달 40만원 수준으로 임대해주는 방식이다.
예컨대 타다의 경우 택시 호출을 중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면허를 매입‧임대해 기존 서비스를 유지해야 한다. 타다의 운행차량이 1000대인 것을 고려하면 매달 임대비만 4억 정도 든다. 면허 할당량을 모두 확보하지 못하면 추가로 면허를 매입해야 해 실제 비용은 더 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택시 업계는 손해 보는 것이 없다. 자금력 있는 모빌리티 회사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자본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어도 진입장벽에 가로막힐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신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산업혁신팀장은 “시장에 대한 진입 제한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술력을 담보한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이 많이 나오고 있지 않은 이유”라며 “모빌리티 산업은 성장성이 예상되는 사업이다.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선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벤처기업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생태계를 처음부터 잘 구축해야 뿌리깊은 나무가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