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타트업들이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공공기관 갑질에 몸살을 앓고 있다. 세제 감면과 금융 등 지원을 받기 위해 벤처기업 확인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평가지표에도 없는 회사명을 바꾸라는 요구를 받거나 대출 금융기관·대출 금액을 공공연히 강요당하는 사례가 끊이질 않고 있는 것이다.
충청지역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A 대표는 “벤처는 도전하고 혁신하는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증을 받으려면 기업명을 바꿔야 한다는 황당한 요구사항을 들었다. 두 번이나 기업명 변경을 요구해도 바꾸지 않자 ‘벤처 인증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하더라"며 "나중에 인증을 받기는 했지만, 심사과정에서 무척 깐깐하고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심사 담당자의 요구사항을 고분고분 들어주지 않은 순간부터 눈 밖에 난 것 같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벤처기업확인제도는 1998년 시행 이후 2006년 대대적인 제도 개편을 단행했고, 현재는 기술보증기금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 공공기관이 평가를 주도하고 있다. 혁신 자체가 생존전략인 스타트업을 규제‧관리가 주 업무인 공공에서 평가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지난 10여년간 제도는 변하지 않았다. 창의성이 상징인 벤처기업이 보수적인 공공기관의 평가를 받으면서 ‘갑’의 벽을 느끼는 경험은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자리잡기도 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소벤처기업부는 벤처기업 평가 주체를 공공에서 민간으로 이양하는 개정안을 작년 11월 국회에 제출했지만, 국회 파행으로 아직까지 계류 중이다. 그나마 제출한 개정안도 민간으로의 완전한 이양이 아닌,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반쪽짜리 제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이지흠 안동대 링크플러스사업단 교수는 “그동안 (공공기관 중심의) 벤처인증을 통해 세제 등 혜택을 제공하면서 어느 정도의 혁신 성과를 냈고, 어떤 창업 생태계를 구축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민간의 혁신성을 (벤처 평가에) 가미하기 위해서는 담보나 자본 없이도 4차 산업혁명의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제도로 대폭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