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평규 칼럼] ​국가는 거칠게 나아가야

2019-06-14 06:00
  • 글자크기 설정

미중 패권다툼 사이에 낀 韓…독립적·주체적 전략이 필요할 때

조평규 전 중국연달그룹 수석부회장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이 우리기업에게도 들이 닥치기 시작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며칠 전 삼성과 하이닉스를 포함한 글로벌 IT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미국의 대중(對中) 압박에 동참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미국 국무부도 “화웨이 장비는 안보와 무관하다"는 청와대 논평을 정면 반박하면서 대중 제재에 한국도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한국을 향해 자기 편에 서지 않으면 보복하겠다는 협박을 가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진 모습이다. 정부는 외교부에 미·중 관계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설치했다고 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예견돼왔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때 미·중 사이에서 눈치만 보다가 실기(失機)해 우리기업들이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정부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전략적 대비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서구와 중화문명 간의 장기적인 갈등 관계로 고착화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다양한 전략과 수단을 가지고 있어 쉽게 항복할 나라가 아니다. 인내심도 강하고 맷집도 강해서 끝까지 버틸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미·중에 대응하는 독립적이며 일관성 있는 원칙과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미국은 동맹이니 무조건 따른다거나, 중국은 경제적으로 깊이 연결돼 있어 중국 편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로는 우리의 설 땅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국가는 위기가 닥쳐오면 자기만의 독립적인 전략을 마련하고 거칠게 나아가야 한다. 거친 모습은 남에게 의지하려는 종속적인 사고로는 생겨나지 않는다. 종속성이란 자기의 것이 아닌, 외부의 것을 들여와 자기 행세를 하는 것을 말한다. 종속적 태도는 오늘날 미·중 무역전쟁에서 보여주는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최진석 전 건명원 원장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독립적이면 전략적이 되고, 종속적이면 전술적 단계에 머문다. 독립적인 나라에서는 이익을 추구하고, 종속적인 나라는 명분에 매달린다. 독립적이면 선진국까지 올라서고, 종속적이면 중진국이 오를 수 있는 최고 높이다. 독립이 습관이 된 나라의 정치는 사실에 의존하고, 종속성이 팽배한 나라의 정치는 감성과 도덕에 붙잡힌다. 독립적이면 미래를 향하지만, 종속적이면 과거에 갇힌다. 독립적이면 본질을 선택하고, 종속적이면 기능을 선택한다. 결국, 종속의 끝은 식민지 국민이 되는 것이다"라고.

김태유 서울대 교수는 저서 '패권의 비밀'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패권을 사회계급에 적용하면 지배계급이 자신의 지배를 관철하면서 동시에 이를 정당화 하는 힘을 말하며, 국가간 관계에서는 한 나라의 ‘최고지도력'을 가리키고, 경제력과 군사력이 바탕 되지 않는 패권은 궁극적으로 성공 할 수 없다”고.  또 ”패권은 단순무력 사용을 통한 강제가 아니라 경제적 실익을 통한 설득의 과정”으로 동의를 이끌어 내는 유연함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패권을 쥔 나라는 자국의 경제가 충분한 잉여를 생산해 내고 적절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선순환 구조일 때 경쟁력을 가진다. 만약 패권국가 자신의 경제·사회 체제가 본질적인 한계에 직면해 있거나, 경쟁국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때 전쟁을 통해 자국의 경제체제의 힘을 얻고, 상대의 경제적 군사적 기반을 파괴하려고 한다. 따라서 강대국들의 경제 및 군사적 흥망은 아주 밀접히 관련돼 있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형식적으로는 무역분쟁의 모습을 띠고 있으나 결국 패권전쟁과 다를 바 없다.

미국은 경제적으로는 관세·기술·희토금속·정보통신·환율·금융 등 방면에서 중국과 겨루고 있다. 또 군사적으로도 화웨이 장비의 안보적 위험을 과장하는가 하면, 미국의 인도·태평양사령부를 키우고,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고, 중국의 제2 도련선(태평양 상에 위치한 파푸아뉴기니-사이판-괌-오가사와라 제도를 잇는 선으로, 외부 해양세력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의 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등, 전방위적인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는 미국과 군사동맹에다가 경제적으로도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고, 중국과는 북핵 문제와 경제적으로 밀착돼 있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체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바람 앞의 등불 신세나 다름없다. 바람의 향방이나 세기에 따라 꺼질 수도 있는 운명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제구조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이 매우 높고, 수출 주도형 성장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모델은 외부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도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이 첨예하게 대결하는 경계선상에 있어 자칫 잘못했다가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원치 않은 봉변을 쉽게 당할 수도 있다.

우리의 생존은 독립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전략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어도 견디기에 벅차다. 요즘 같이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갈팡질팡하는 형태로는 피해가 막심 할 것은 뻔하다. 우리는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을 찾는 영리함보다, 목표를 만들고 설정 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그 힘은 국가가 거칠게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생긴다. 그래야 자존심도 지키고 어려움이 닥쳐도 단결해 극복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그래픽=연합뉴스]



조평규 전 중국연달그룹 수석부회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