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평규 칼럼] 미·중무역전쟁, 동서 문명충돌 프레임으로 전환

2019-05-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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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팅턴 '문명의 충돌' 차츰 현실화

G2 수출의존도 높은 韓…미중 사이에서 실리 추구해야

조평규 전 중국연달그룹 수석부회장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1996년 낸 저서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에서 세계의 문명을 “서구, 중화, 이슬람, 정교, 힌두,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일본”의 8개로 구분했다. 그리고 미래의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문명 간의 단층면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특히, 21세기에는 중국의 도전이 강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2001년 9·11 뉴욕 테러 발생 후 문명의 충돌은 이 사건을 미리 예견한 저작으로 높이 평가 받았고, 최근 미·중 무역전쟁이 문명의 충돌 방향으로 프레임이 짜여짐에 따라 헌팅턴의 주장은 다시 한번 논쟁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국무부는 카이론 스키너를 정책기획국장에 임명했다. 국무부의 정책기획국은 미국 외교정책의 두뇌로 국제정세의 분석과 외교전략 방향을 제시하는 곳이다. 스키너는 과거 미·소 간의 냉전체제 전쟁 속에서 구소련의 몰락을 이끈 로날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정밀하게 연구한 학자다. 미국 국무부가 스키너를 임명한 것은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 공산당의 해체를 위한 전략을 입안하고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스키너는 “중국과의 패권경쟁은 그 동안 미국이 경험하지 못한 전혀 다른 문명이자 이념과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냉전시기 “소련과의 전쟁이 서구문명권 내부에서의 싸움이었다면, 중국과의 전쟁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차원이 다른 문명권과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미국 국무부가 설정한 목표는 중화문명이 타깃임을 알 수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평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외쳤다. 시 주석은 지난 5월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문명대화대회'에서 “아시아가 인류문명의 산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시아에는 47개국 1000여종의 민족이 있으며,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거주하고, 이슬람문명·기독교문명·인도문명·중화문명 등 다채로운 문명 양식이 어우러진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중국은 아시아문명의 종주국임을 과시함과 동시에 미국과 문명차별주의자들을 겨냥해 “자신의 인종과 문명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문명을 개조하거나 대체하려고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으며 재앙”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아시아 문화의 중심으로 한배를 타고 세계를 향해 전진하며 세계의 발전 속에서 발전하고,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가 서로 손잡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가자”고 아시아 문화권의 대단결을 호소했다. 단순하게 보였던 미·중 무역 갈등이 이제는 서구문명과 중화문명과의 프레임전쟁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이다.

미·중 무역 갈등 초기에는 전문가들도 불공정한 무역관행과 자국내부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것인만큼, 단기간에 해결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최근 미·중 무역전쟁은 관세 뿐만 아니라 기술, 희토류, 정보통신(IT), 안보, 환율,문명 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내세워 미·중 무역전쟁에서 미국 편에 설 것을 우리나라에 강요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미·중과의 무역규모는 전체수출의 40%에 달한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는 거대한 중국시장을 무시 할 수 없으며, 미국의 압력도 들어주어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와 밀접한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는 미·중 양국이 경제전쟁에 이어 문명충돌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은 수출에 목매는 우리에게는 현실적으로 불리한 요소들이 많다.

우리기업들은 미·중 문명 대결을 어떻게 인식하고 전략을 세우고 실행해야 할 것인가? 시일이 지나감에 따라 미중간의 갈등이 장기적이고 복잡한 구조와 형태를 보일 것으로 간주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중국이 미국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 사전에 우리와 중국과의 협상과 대화는 특히 중요하다. 중국이 미국에게 뺨 맞고 우리가 보복 당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경제보복 조치로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런정페이(任正非) 화웨이 회장이 종종 6·25전쟁 때 강원도 철원에서 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상감령(上甘嶺)전투를 거론하는 것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미국에게 잘못 처신하거나 실수를 하면 미국으로부터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중국에 정통한 전문가로 구성되는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중국 정부나 중국 기업과 사전에 비공개적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협상을 해야 한다. 헌팅턴의 지적대로 미·중 전쟁에서 중국은 경제적인 손실보다는 체면이나 자존심의 손상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 착안해서 중국의 체면을 손상하지 않도록 하면서 우리는 실리를 취해야 한다. 중국과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돼 있어 경제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복잡한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중국과 협력하거나 협상할 공간은 의외로 많이 존재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중화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으나, 1950년 한국전쟁 후 경제개발 과정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문명의 영향을 주로 받았다. 현대 한국사회는 동양문명과 서구문명이 혼재해 있는 복합적인 문화권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동양문명을 미국보다 좀 더 잘 이해하고, 서구문화는 중국보다 더 잘 아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미·중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해서는 전쟁의 와중에서 우리가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미국의 통제로 중국산의 대미 수출길이 막히거나 경쟁력을 상실한 분야에 대해서는 우리가 중국 대신 대미 수출을 확대해야 한다. 반대로 미국산 제품의 중국시장의 접근이 어려워진 분야에는 우리가 시장을 확대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날수도 있다.

우리가 지혜를 발휘해 올바른 전략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선제 대처한다면 미·중 무역전쟁에서 우리는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실리를 취하거나 도약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깊어지는 미중 무역전쟁.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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