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언론인 심포지엄] ① 사상 최악의 한일관계 “언론도 책임있다”

2019-06-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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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사상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만든 ‘화해치유재단’이 해산됐고, 일본기업에 배상을 요구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광개토대왕함의 일본초계기 사격레이더 조준문제로 한일 국방당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이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는 한일정상이 만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일미래포럼, 게이오대 현대한국연구센터가 공동으로 ‘제7회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한국과 일본의 언론인이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의 이해를 넓히자는 취지다. 이 자리에 참석한 30여명의 한일 언론인과 학자들은 5시간 동안 한일관계 언론보도와 미래비전에 대해 토론했다. 
 

지난 7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게이오대 미타캠퍼스에서 '제7회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사진 왼쪽부터 추규호 한일미래포럼 대표,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김철훈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김기정 연세대 교수, 오이시 유타카 게이오대 교수, 정준희 중앙대 교수. [사진=한준호 기자]


“한일관계와 언론보도를 다루는 이번 세션은 오야코동과 같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함께 존재하는 세션이기 때문입니다.”

7일 게이오대 미타캠퍼스에서 열린 ‘제7회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 제1세션의 사회를 맡은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대뜸 ‘오야코동’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청중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야코동은 닭고기달걀덮밥을 뜻하는 일본어인데 닭과 계란을 함께 밥 위에 얹히기 때문에 오야코(親子)라 불린다.
먼저 오이시 유타카(大石裕) 게이오대 교수는 한일관계 악화를 언론이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저널리즘에는 국적이 존재하기 때문에 공평하고 중립적인 보도가 불가능하다”며 언론이 실시해 공표하는 여론조사가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오이시 교수는 요미우리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은 각각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일본 초계기 사격레이더 조준문제가 발생한 즉시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해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데 일조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그는 “언론이 여론조사라는 방식을 통해 한일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존재한다는 점을 재확인하려 했다”며 “여론이란 발견되어지는 것이어서 언론이 여론조사를 실시해 결과를 공개하면 그것이 바로 여론이 되어버린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오이시 교수는 한국과 일본 언론인이 한일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 서로의 관점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그는 한국 언론인에게 “일본 언론은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명확해서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데, 한국 언론이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한국 언론이 일본 언론에 갖는 오해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일본 언론인에게는 “독도문제와 같은 영토문제를 다룰 때, 한국은 단순한 영토문제가 아닌 역사문제 측면에서도 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인식의 차이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이시 교수는 최근 신문과 TV와 같은 전통적 언론보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접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인터넷 보도를 통해 여론의 양극화가 진행 중인데 한일관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증폭되고 있어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제7회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에서 발표하는 정준희 중앙대 교수. 사진 오른쪽은 오이시 유타카 게이오대 교수. [사진=한일미래포럼 제공]


이어 정준희 중앙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일본 언론들의 기본 인식의 틀에 문제가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일본 언론이 갖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인식이 한일관계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한국 국내에서 바라본 것보다 훨씬 더 한국 사회를 대립적이며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한 것으로 묘사한 일본 언론의 기사가 눈에 띈다”며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의 대립을 부각시키고, 헌법재판소가 여론에 휩쓸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을 사례로 들었다. 특히 일본 언론이 문재인 정권이 과거 노무현 정권처럼 ‘친북’, ‘반일’ 성향이 강해 한일관계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 부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국은 실정법보다 국민정서가 우위를 점하기 때문에 한국정부는 법치주의에 근거한 합리적인 정책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일본 언론에 있다”며, 국민정서법이라는 말은 한국 언론에서 만든 개념인데 일본 언론이 이를 역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정 교수는 "일본 언론의 이러한 인식이 한국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원인"이라며 “협상 상대자로서의 문재인 정부의 안정성과 실효성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고, 한국 정부의 반일감정 활용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정권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향후 한일 간 협력활성화를 위한 언론보도의 방향도 제시했다. 양국 언론이 상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활용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정 교수는 한국 언론의 일부가 그간의 일본정부의 노력이나 양심적인 일본인의 목소리를 정당하게 전달하지 않았던 점, 일부 일본 언론 역시 위안부 문제 등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사례를 외면하거나 부정적 여론을 자극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일본 언론이 한국의 정치 조건에 대한 더 심층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본 언론인 토론자로 나선 이케하타 슈헤이(池畑修平) NHK 캐스터는 한일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 언론이 사용하는 워딩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케하타 캐스터는 “일본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프레임으로 ‘반일’과 ‘친북’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런 이미지가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깊게 박혀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는 인물에 대해 더 깊게 분석하고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문장이 길어져서 문장을 단순화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며 “언론 입장에선 단순화시키는 게 편리하고, 자극적이고 재미있어진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케하타 캐스터는 일본 언론의 워딩도 문제가 있지만, 한국 언론의 워딩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피고기업인 일본기업을 피고기업이라고 하지 않고 전범기업이라 표현하고 있다”며 “한국 언론은 전범이란 두 단어로 피고기업을 모두 묶어버리는데 그렇게 되면 독자들은 전범기업에게 무엇을 요구해도 된다는 인식이 퍼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피고기업인 신일철(新日鐵)이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점 등 역사적인 언급은 전혀 없이 전범이라는 워딩으로 묶어버리는 것도 언론이 사용하는 워딩의 무서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케하타 캐스터는 “일본에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라는 유행어가 있는데, 이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정보만 수집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며 “필터버블이 한국이 싫다는 사람들에게 그런 정보만 제공하고 있어 한일 언론인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오른쪽은 이케하타 슈헤이 NHK 캐스터, 왼쪽은 고미요지 도쿄신문 편집위원. [사진=한일미래포럼 제공]


고미 요지(五味洋治) 도쿄신문 편집위원은 “정준희 교수가 언급한 한일관계 악화에 언론이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분명 그런 측면이 있지만 적극적으로 관여한다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고미 편집위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파티에 일본 특파원들이 참가하거나 홍보수석과 식사도 자주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거의 없어졌다고 들었다”며 “기자들도 역시 인간이고, 한국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서울 특파원으로 나가는데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본도 마찬가지로 오부치(小渕) 정권 시절에는 한국 언론의 도쿄 특파원을 수상관저에 불러 간담회를 열곤 했었는데 지금은 없어져서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황영식 전 한국일보 주필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관련 판결에서 재판부가 고심한 흔적이 느껴졌다면서 이 부분에 대한 언론의 고찰이 없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하코다 데쓰야(箱田哲也) 아사히신문 논설위원은 오이시 교수와 정준희 교수가 앞서 지적한 한일관계 악화를 언론이 부춘긴다는 주장에 공감을 나타냈다.

하코다 논설위원은 “한일관계 악화는 한국 측의 일본에 대한 무지(無知)와 일본 측의 악의(惡意)가 만들어낸 공동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특히 문재인 정부는 일본에 대한 지식과 전략성이 없는데, 이게 문재인 대통령 개인의 생각인지, 정확한 정보가 결여되어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은 근거 없이 희망적인 관측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만난 한국 국회의원과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국회의원은 강제징용 관련 재판에서 일본 기업에 피해가 가도 일본 정부는 보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는데, 그것은 희망적 관측일 뿐이며, 일본은 한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주는 보복조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코다 논설위원은 “한국사람들은 자존심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자존심도 국익도 중요하지만 현실에선 이것도 저것도 취할 수 없다”며 “정의와 악을 떠나 우리는 언론인으로서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양국 관계를 파탄시키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법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팩트를 정확히 전달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코다 데쓰야 아사히신문 논설위원(사진 왼쪽) [사진=한일미래포럼 제공] 


이명찬 게이오대 방문연구원은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지만 세대별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잘 파악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원은 “한 여론조사에서 일본의 10~20대 중 한국에 친근감을 느낀다고 대답한 사람이 57%에 달하는데 왜 한일관계가 악화됐다고 규정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세대들은 과거를 보고 지금을 평가하지만, 지금 10~20대들은 지금의 한국과 일본을 보고 평가한다”고 세대별로 한일관계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연구원은 “10~20대는 피해의식과 열등감이 없이 서로에 관해 호의를 갖고 있다”며 “한일관계가 최악인 것 같지만, 지나간 세대들의 마지막 결투이지 제대로 된 한일관계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코다 논설위원도 “10-20대들이 별도 차원에서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것대로 발전시켜 나갔으면 좋겠다”며 “안타깝게도 일본도 그렇지만 이들은 신문을 보지 않고 SNS를 통해 한국 정보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우리처럼 아저씨와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가 몰랐던 것을 젊은 세대들이 하고 있다”며 “여기에 암운이 드리워지지 않도록 우리가 잘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 사회를 맡은 김기정 교수는 "내일 당장 해법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이 필요 이상의 갈등과 오해를 증폭시키고 있다면 이번 토론을 통해 그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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