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총리는 29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국무회의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을 논의했다며 “북한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꽤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북한이 중국,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에 이어 아시아에서 5번째 ASF 발생 국가가 됐다는 얘기다. 다만 북한 당국은 물론 국제기구에서 북한의 ASF 발병 사실을 확인한 바는 없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예방 백신이 없어 치사율이 100%에 가깝고 바이러스 생존력이 매우 높은 가축 전염병이다. 주로 아프리카·유럽에서 발생하다가 지난해 8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중국에서 발생한 후 몇 달 만에 중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확산세가 빠르진 않지만, 그 기세가 10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다. 중국농업농촌부는 지난 3월 ASF 발병 사례가 급감했다고 발표했지만, 지난달 중국 최남단에 위치한 하이난성에서 ASF가 발병한 데 이어 이달에는 홍콩에서도 발병 사례가 보고됐다. 중국 언론들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 사이만 하더라도 윈난성, 광시좡족자치구 등 3곳 이상에서 잇따라 발병이 확인됐다. 중국 정부는 올해 최대 2억 마리가 폐사하거나 살처분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 중국의 일부 돼지 농장들은 전염병이 의심돼도 신고 없이 불법으로 돼지를 유통하거나, 사체를 유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중국은 지역이 넓다 보니 돼지 수송 차량이 장거리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질병 전파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또 다른 발병국인 베트남의 ASF 확산세도 좀처럼 꺾이질 않고 있다. 뚜오이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2월 북부지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ASF는 중부지역을 거쳐 남부까지 번진 상황이다. 뚜오이째는 “이미 전체 국토의 3분의 2 가량에서 ASF가 발생했다”며 “지금까지 현지에서 사육하는 돼지의 5%가 넘는 170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됐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아시아 국가의 돼지 사육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세계 가축가금류 시장과 무역'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전 세계 사육 돼지 수는 7억6900만 마리로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억3300만 마리를 중국이 키운다. 베트남은 약 3000만 마리로 미국 7300만 마리의 절반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아시아의 ASF는 전 세계 동물성 단백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택주 미트경제연구소 국제담당 전문위원은 '미트저널' 6월호에 쓴 글에서 앞으로 최대 5년에 걸쳐 전 세계가 단백질 공급 부족을 겪을 것이라며, 내년부터 진짜 공급 문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 위원은 “예상대로 중국 돼지가 2억 마리 사라질 경우 1000만t 이상의 돼지고기 생산이 줄어드는 것”이라며 “이는 전 세계 돼지고기 생산량의 8% 이상을 차지하고, 또 전 세계 돼지고기 교역량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물량”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대로라면 그 피해는 ‘재난’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돼지고기 공급이 부족하게 되면 소, 닭, 오리 고기의 공급도 부족하게 될 것이고 이는 ‘세계 단백질 재난’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위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국에서 ASF가 발병하는 걸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부터라도 방역을 강화하고, 잔반사용금지, 국내거주 동남아 외국인 음식물 쓰레기 철저 분리, 농가별 펜스강화, 외부접촉 금지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