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해진 에리히 호네커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공산당) 서기장은 소련군의 출동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호네커는 10월 17일 사임했고 그의 철권통치는 막을 내렸다. 그의 뒤를 이어 서기장에 오른 에곤 크렌츠는 개혁 추진을 선언했지만 국민들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11월 4일 동베를린에서는 100만 명이 참여한 반정부집회가 열려 언론자유화와 여행 자유화를 요구했다. 크렌츠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11월6일 여행 자유화 법안을 공포했다. 하지만 이는 여권과 비자발급 절차를 간소화한 것일 뿐 전면적인 여행 자유화가 아니었다.
사흘 뒤인 11월9일 오후7시, 동독 공산당 공보담당 정치국원이었던 귄터 샤보프스키는 당사에서 열린 정례 기자회견 막바지에 메모 한 장을 꺼내 읽어내려갔다. “앞으로는 여행 목적이나 방문 대상자 등을 밝히지 않아도 자유롭게 외국 여행을 신청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서독도 포함된다”는 내용이었다. “언제부터 시행하느냐”는 이탈리아 안사통신 특파원의 질문에 샤보프스키는 잠시 머뭇거리다 “지체 없이 즉시”라고 답했다. 평범한 하루로 묻힐 수 있었던 11월9일이 20세기 세계사에서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공식 발표문이 없어 기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긴급뉴스를 전 세계에 타전했다. 저녁 7시 5분 ‘AP통신’이 가장 먼저 ‘동독이 국경을 개방했다’고 보도했고, 서독 공영방송인 ARD의 8시 뉴스에서도 같은 내용이 보도됐다. TV를 통해 소식을 들은 동베를린 시민들은 서베를린으로 가는 검문소에 몰려들었고 숫자는 순식간에 수천, 수만명으로 불어났다. 갈팡질팡하던 국경수비대는 갈수록 거세지는 국경 개방 요구에 눌려 밤 10시 30분,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바리케이드를 열었다. 시민들은 장벽에 올라 망치와 곡괭이를 들고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날 밤, 공포의 산실이었던 베를린의 검문소는 동서독 주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고 환호하는 감격의 상봉장소로 변모했다.
감시탑 116개소, 총길이 167.8km, 높이 3.6m, 폭 1.2m. 독일의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1961년 8월 동독측이 탈주자를 막기위해 서베를린 경계선을 따라 철조망과 벽돌을 설치하면서 구축됐다. 이로 인해 서베를린은 ‘육지속의 섬’으로 변했다. 수 천 명의 동독시민들이 이 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하다가 136명이 사살됐고 3,221명은 체포됐다. 전 세계의 그 누구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장벽은 붕괴됐고 1년도 채 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마침내 통일됐다.
베를린 장벽은 28년만에 붕괴됐으나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군사분계선(MDL)은 아직 건재하고 있다. 1953년 7월 한국 전쟁 휴전 협정 체결 당시 임진강에서 동해안까지 1,292개의 말뚝을 박고, 이 말뚝을 연결해 설정한 총 240km길이의 가상의 선이다. 군사분계선에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 범위에는 군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 지대인 비무장지대(DMZ)가 설정되어 있다.
군사분계선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이다. 판문점 군사분계선 상에 설정된 동서 800m, 남북 600m 장방형지대로 유엔사령부와 북한측이 공동으로 경비한다. 원래는 군사분계선 표지물도 없었고 자유롭게 양측을 넘나들 수 있었지만 1976년 북한이 저지른 도끼만행사건 이후 분계선을 표시하는 콘크리트 경계석이 설치됐다. 이후 남북 경비병들이 소총과 경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채 근무하게 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게 되었다.
‘21세기 비틀즈’로 통하는 방탄소년단이 최근 3년 연속 '빌보드 200' 1위에 2019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팝듀오·그룹' 2관왕을 차지하며 세계 팝의 정점에 우뚝 섰다. 젊은이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난과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고 자신들의 음악과 젊음의 가치를 지켜내겠다는 뜻이 담긴 이름처럼 방탄소년단은 자신들의 철학과 주장이 담긴 노래를 직접 만들어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방탄소년단이 판문점 군사분계선 앞에서 콘서트를 열어 북한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자유의 봄바람을 불어넣는다면 철통같은 군사분계선도 언젠가는 무너지지 않을까? ‘봄날’의 노랫말처럼. “겨울을 끝내고파/그리움들이 얼마나/눈처럼 내려야 그 봄날이 올까/ 아침은 다시 올 거야/어떤 어둠도 어떤 계절도/영원할 순 없으니까...”
김세원 논설고문·건국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