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안산에서 컨베이어벨트 공장을 운영하던 B씨. 주변 업체들의 베트남 진출 분위기에 반년 전 공장을 베트남 남부 동나이의 모 공단으로 이전했다. 이미 많은 한국기업을 유치한 공단이라 인프라, 부지선정, 기초공사 등 초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연휴가 지나고 인력이 일시에 빠져나가 인력난에 한참을 시달렸다. 최근에는 일시에 전력이 끊기는 등 사업 운영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공단 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실제 현장상황은 알려진 것과는 다른 점이 많아 주의가 요구된다. 특히 일부 현지공단은 기초공사 등 인프라 구축이 전무하면서도 공단유치설명회에서 완벽한 인프라가 조성된 것으로 설명하는 등 과장광고 문제도 심각하다.
◆지방정부 투자유치회 잇달아··· “현실은 텅빈 부지에 휘황찬란한 문구뿐”
지방성 정부와 공단개발주관사를 포함해 한국 주재 베트남대사관까지 후원한 행사다. 현장 분위기는 뜨거웠다. 한국 기업 200여곳이 참석했다.
경북 구미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참석자는 요즘 구미지역 공장들이 대거 베트남으로 빠져나가 지역 경기가 말도 아니라며, 자신도 이번 기회에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하고자 설명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치설명회가 끝나자 그의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왔다. 공단분양가격, 인프라 구축계획, 세제혜택 등을 상세히 문의하는 질문에 해당관계자가 말꼬리를 흐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는 주최 측이 생각보다 준비가 부족한 것 같다며 다른 공단을 알아봐야겠다고 자리를 떠났다.
한 업계 관계자는 “투자설명회 안내를 받고 분양 계약을 완료했지만 지방정부가 약속한 도로 등 공단인프라가 제때 구축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공장 입주 시 가장 기초적인 지반 작업도 안 돼 있어 분양 계약과 달리 지반공사를 업체가 직접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불만을 제기하고 도중에 계약 파기를 위해 소송 중이거나 막대한 손해를 보고 다시 한국으로 복귀하는 업체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현지 공단임대 분양을 전담한다는 한 관계자는 “코트라나 투자설명회에서 주는 자료에만 의존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베트남은 우리의 상식과 다른 점이 많다. 필히 분양 계약 전에 최소 3개월 이상 체류하면서 현지사정을 파악하고 물류, 주변 인프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주요공단··· 기초인프라도 없는 외곽공단
이미 베트남 공단에 입주한 업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인력난이다. 공장운영을 위해 인력수급이 필수적이지만 베트남 제조업이 활황세에 접어들면서 일자리가 넘치다 보니 이에 대한 절대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현지에서 가방제조 공장을 한다는 한 관계자는 빈즈엉성, 동나이, 롱안 등 주요 공단지역은 이미 조성이 완료된 공단이라 인프라와 물류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인력 수급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베트남의 새해 연휴인 '뗏(Tet)' 기간에 인력의 이동이 가장 심한데, 연휴가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여기에 한국 기업들마저 속속 공단 내 빈 땅을 차지하고 입주해 인력난이 더욱 가중된다는 것이다.
결국 근로자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임금인상이 필요한데, 호찌민시나 주변 지역의 경우 이미 1급지로 선정돼 임금이 최고 수준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여기에서 임금이 더 올라가면 결국 캄보디아 등 주변국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반면 다낭, 후에를 중심으로 하는 중부지역 일부 공단은 페수처리장, 산업용수시설, 전력망, 경비초소와 같은 기초적인 인프라 시설도 없는 곳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부지방의 한 공단에 입주했다는 기업 관계자는 “물류비, 외곽의 환경은 차치하고라도 기본적인 근로자 사택, 공단과 시내 연결도로 확장울 위한 공사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지방성과 관리공단에 매번 민원을 제기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세수확보 후 진행이 가능하다는 게 전부”라며 “애초에 지방정부 계획을 신뢰하지 않았다면 중부지방 진출은 절대 안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규정 제각각··· 특별세무조사로 외국기업 길들이기
공단 분양 시 각 성의 관계법령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공단이 유치 당시에는 저렴한 분양가와 수년간 법인세 면제 등 각종 특혜를 내놓지만 실제 입주해 보면 소방점검비용, 환경부담비용, 각종 안전비용 등으로 나가는 세금이 되레 더 많다는 것이다.
특히 베트남 정부가 매년 외국기업을 대상으로 벌이는 세무조사는 현지 진출 기업들의 대표적인 고민거리다. 통상 세무조사는 3~5년에 한 번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베트남 정부는 일종의 ‘외국기업 길들이기’ 수단으로 세무조사를 활용하기도 한다.
호찌민시의 한 기업 관계자는 “베트남 법이 굉장히 불명확한 면이 있어서 아무리 국제회계법인의 컨설팅을 받아 일을 진행해도 세무국에서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면서 “소송에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긴다 해도 과정이 번거롭고 힘들어 개별 기업은 속수무책”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명절 때 전 직원에게 포상의 형태로 선물을 지급했는데, 문제가 되어 세무조사 대상이 된 적이 있다”며 “이런 특별포상도 회계처리를 해야 하는지 문의를 해도 담당자마다 잣대가 달라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기업 영향력 큰 빈즈엉성 등 일부 모범 사례 참고해야
현재 베트남 전역에 있는 공단은 350여개에 달한다. 계획 중인 수백곳의 공단을 더하면 사실상 베트남 전역이 공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미 베트남 진출을 결정했다면 최대한 지역 리스크를 줄이는 것만이 안정적인 현지 진출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모범적인 사례로는 빈즈엉성이 꼽힌다. 이 지역의 경우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통합인프라 구축, 호찌민시에 인접한 지리적 강점이 있다. 주요 공단인 미푹 공단, 싱가포르 공단, 베카맥스 공단 등에는 이미 600여개의 한국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인구가 200만명에 달해 인력이 풍부하고 빈즈엉대, 이스턴인터내셔널대(EIU) 등 6개 종합대학이 매년 신규인력을 배출한다는 점도 강점이다. 현지 교민회 주도로 호찌민한국국제학교에 이어 빈즈엉한국국제학교 설립이 추진되는 것도 한국 기업에는 큰 이점이다.
노재환 서우리얼티 베트남 대표는 “빈즈엉성의 경우 지역경쟁력지수 인프라 부문 전국 1위를 달성한 지역”이라며 “지방정부 또한 한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현지 인민위원회의 친기업적인 기조도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베트남 지방정부들이 중앙정부의 방침에 따라 공단입주 시 환경영향평가도 강화하는 추세다. 과거와 달리 섬유, 하이테크 등 특화된 공단 개발로 지역을 묶어 산업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병행 중이다.
노 대표는 “유해업종인 경우 환경세가 부과된다”며 “각 지방공단은 환경유해업체 여부를 까다롭게 보고 있고 도금 및 염색 업체는 아예 신규 사업허가를 내주지 않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이테크 법인세 혜택 등 업종마다 분양환경이 각기 다른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며 “무엇보다 베트남은 변수가 많아 입주 후 향후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필히 사전에 계약사항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공증 등 많은 부분을 점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