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을 당한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표면적인 사유는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이다. 하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엄중함은 ‘경제실정’ 심판이다. 박근혜 정부 4년 기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95%로 최악의 기록을 남겼지만,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4.8%정도 유지해 나름 선방했다.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에게 돌아가는 몫을 표시하는 지표인 노동소득분배율도 GDP 대비 61.7%에서 63.3%로 크게 개선되었다. 그 중 피용자보수(보수, 4대 연금, 현물 등 일체) 비중 역시 43.8%에서 44.8%로 다소 호전돼 외형적으로는 썩 괜찮은 경제성적표이다. 그러나 속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아니다.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사회보험료를 포함한 총 조세증가율은 연평균 6.5%로 경제성장률을 2배 이상 초과했다. 특히 유리지갑으로 불리는 임금근로자들에게 거둔 근로소득세는 연평균 증가울이 14.5%로 급등 수준이었고 덩달아 따라붙는 4대 보험료도 8% 이상 늘었다. 이명박 정부 기간 연 3% 수준에 그쳤던 공시지가 상승률은 매년 5.8%로 뛰면서 재산세와 취득세 등 주요 지방세 또한 9% 이상 치솟았다. 한편 사회보장기금을 포함한 정부수입도 매년 평균 5.6%(25조 9813억원) 늘었으나 증가분 대부분(24조 6412억원)은 고스란히 공무원 및 공공기관 직원 등 공공부문 종사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들의 연평균 보수증가율도 5.6%이다. 어려운 나라경제 사정에도 불구하고 세금은 더 걷고 정부수입도 늘렸는데, 염치없게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이 독식해버렸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 기간 조세 증가 현황 [표=최광웅 연구원장 제공]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든다.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면 나라가 망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집권한 박근혜 정부 기간 4년 동안에만 그들 역시 공무원을 5만 2196명이나 늘렸다. 인사혁신처 추계 방식대로라면 이들에게 향후 70년간 약 6조 3000억원 가량의 공무원연금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는 고스란히 연금충당부채로 남는다. 공무원·군인연금충당부채는 박근혜 정부 기간 매년 79조원씩 증가해 연평균 18.1%씩 급증했다. 그리하여 2016년 이미 752조 6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미래 세대인 청년들에게 큰 부담을 지우는 일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 기간 전체공무원 평균월급도 76만원, 연 4.6%가 늘면서 단연 선망1위 직업군을 유지했다. 공공기관 역시도 총 37개 기관, 직원은 7만 1591명이 늘면서 인건비로만 4조 7362억원이 급증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 공시지가 상승률 비교 [표=최광웅 연구원장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TV토론에서 “증세 없이 복지가 가능합니까?”라는 질문에 “제가 대통령이 되면 할 겁니다.”라고 답변했다. 이는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부인할 수 없는 빼박 공약이다. 그렇지만 당장 늘린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인건비를 감당하기 위한 이유로 더욱 많은 세금을 걷어야 했으며 2015년 연말정산 파동과정에서 세액공제 방식을 도입하려다가 여야 모두로부터 난타를 당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기간 가구주 연령별 경상소득 균등화 배율 변화 [표=최광웅 연구원장 제공]
통계청이 발표하는 가계소득동향지표에는 상-하위 10% 또는 20%계층을 비교하는 10분위 배율이나 5분위 배율만 공개된다. 그런데 하위 10% 또는 하위 20%는 근로능력이 없는 노인층이거나 장애인 등 약자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청년 실업이 급증·지속되면서 20~30대 청년층과 이른바 86세대라고 불리는 고소득층인 50대의 소득비교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연공급제를 특징으로 하는 우리나라는 직장에서 퇴직 직전 50대 소득이 가장 높다. 박근혜 정부 4년 동안에도 근로자 가구는 39세 이하 대비 50대 소득 배율이 1 대 1.22에서 1.21로 다소 개선되었다. 하지만 비근로자가구, 즉 자영업자 또는 실업자가구는 1.24에서 1.25로 오히려 악화됐다. 청년층 취업난과 그로 인한 자영업 쏠림 및 자영업자의 영업이익률 감소가 그대로 드러나는 수치이다. 지난해 말 현재 39세 이하 유권자는 3분의 1이 넘는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당선된 20~30대는 겨우 3명, 단 1%뿐이다. 이렇듯 정치적 영향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청년들은 선거제도 개혁이나 공수처법 도입도 거의 관심이 없다. 최근 국회에서 벌어진 몸싸움은 그저 짜증날 뿐이다.
프랑스 2017년 총선 불복종운동 당선인 선거구(16개) 개표현황[표=최광웅 연구원장 제공]
230년 민주주의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는 2012년 대선에서 좌·우파 포퓰리즘을 표방한 후보들을 무려 32.5%나 지지했다. 당시 사르코지 대통령은 연금개혁 성공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바탕으로 재선 도전에 나섰지만 높은 청년실업률을 잡지 못해 간 발 차이로 패배했다. 그 후 사회당 올랑드 대통령이 바통을 이어받았으나 프랑스 경제는 5년 내내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청년실업도 꺾일 줄 몰랐다. 그러자 2017년 대선에서는 무려 15% 이상 더 늘어난 48.2%가 좌·우파 포퓰리스트들을 찍었다. 세 차례나 결선투표에 진출한 극우파 국민전선(FN) 외에도 이번에는 극좌파 불복종운동(FI)이 나서서 19.6%나 획득했다. 사회당 → 좌파당을 거친 장뤽 멜랑숑이 2016년 설립한 FI는 “좌파 개혁”을 모토로 스페인 포데모스를 벤치마킹해 만든 시민참여네트워크이다. 한 달 뒤 총선에서는 17명의 당선인을 내면서 단숨에 원내교섭단체(15명)를 구성했다. 특히 15명은 1차 투표 2위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역전승을 거뒀는데, 14명이 사실상 극우파 국민전선 후보의 도움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멜랑숑은 본인이 65세의 좌파 역전 노장임도 불구하고 다수 청년들을 공천해 20대 3명, 30대 3명을 당선시켰다. 최연소인 Adrien Quatennens 의원은 1990년생(당시 27세)으로 만 16세에 이미 이른바 기회균등법(CPE, 고용유연성 강화하는 법) 반대를 위한 청소년시위에 참여하는 등 정치경력 10년 이상의 관록을 자랑한다. 불복종운동과 국민전선은 비록 극좌-극우로 갈리지만 기성세대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년층을 주된 지지기반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2011년 기준으로 프랑스 순 연금소득은 순 생애소득의 103%를 받는다. 청년들이 68세대를 비난하며 거리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지금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란조끼 운동도 언제 혁명으로 폭발할지 아무도 모른다. 혁명과 개혁은 피 흘림 여부로 구분된다. 4·19는 수 백 명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분명한 혁명이다. 6월 항쟁 역시 항쟁이라고 부르지만 피를 불렀기 때문에 미완의 혁명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목숨을 걸면 혁명이요 그렇지 않으면 개혁이다. 그렇지만 연금개혁이나 노동개혁과 같은 지금시기 중요한 개혁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청년들이 혁명을 하겠다고 떨쳐나설지 모른다. 극좌-극우가 뭉쳐서 판을 갈아엎자는 제2의 프랑스가 될지도 알 수 없다. 가벼운 주머니이지만 지구촌 곳곳을 둘러보며 이를 앙 다무는 청년들은 갈수록 넘쳐난다.
최 광 웅(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