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한 대학 AI(인공지능)대학원 입학설명회장. 수백명 학생들이 가장 궁금해한 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 대학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올해 AI대학원 지원 사업에 선정된 고려대, 성균관대, 카이스트 입학설명회 현장은 뜨거웠지만 질문은 대동소이했다.
입학설명회에서 고려대는 구글·페이스북 등 우수한 해외기업과 산학협력을 강화한다는 점을, 성균관대는 가장 많은 15명 전임교수가 현장 중심 교육을 제공한다는 점을, 카이스트는 판교에 아시아 최고 AI 밸리를 육성한다는 점을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약 4대1의 경쟁률을 뚫고 정부지원을 받게 된 3개 대학은 올 가을 AI대학원 설립을 앞두고 우수한 학생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3명의 신임원장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부 지원 사업이라는 ‘상징성’과 ‘선점효과’는 있었지만 이들 속이 마냥 편한 건 아니었다.
“1년 학비가 1300만원 수준이다. 연 평균 50명 내외로 학생이 들어오면 4~5년 후 재적인원이 200~250명이 된다. 올해는 첫해라 정부지원금이 10억원인데, 내년부터 20억원씩 받는다. 200명이 되는 4년 후에는 등록금만 40억원이 넘는다, 생활비 지원, 연구비, 출장비까지 하면 1년에 10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정부지원금 20억원은 등록금 주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
이성환 고려대 AI대학원장의 계산이다. 고려대 AI대학원은 정부지원금 20억원, 서울시 부담금 2억원, 고려대 자체부담금 2억원으로 매년 24억원을 지원받는다. 학생 수가 적은 1~2년차에는 유지할 수 있어도 재적인원이 꽉 차는 4~5년차가 되면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부족한 부분은 교수들이 외부 프로젝트를 따오거나 기업과 산학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원장은 “고려대 AI대학원 전임교수 7명이 올해 확보한 연구비가 60억원 정도이고 AI대학원에 선정되고 인터파크, 넷마블 등 기업들의 AI 연구과제를 확보해 4억1000만원 정도 연구비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부족한 정부지원금으로는 연구 장비를 구매할 수도 없다. 딥러닝과 뉴런 네트워크 연구에는 빠른 계산을 가능하게 하는 ‘GPU칩'이 필수다. 고가 GPU칩과 더불어 고사양 그래픽카드도 필요하다.
두 조건이 최적화된 컴퓨터는 대당 1억원이 넘는다. 교수들은 보통 저렴한 칩과 카드로 조합한 컴퓨터를 쓴다. 고려대와 성균관대는 현재 각 교수들이 보유한 장비로 대학원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AI대학원 최종 선정 결과 발표 후, 세계적으로 GPU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사가 고려대를 방문해 자사 제품 구매를 요청했다. 이 원장은 “우리 사업비에는 GPU 구입비는 포함돼 있지 않다”고 답해야 했다.
카이스트는 사업비에 GPU 구입 예산이 일부 책정돼 있다. 국립대인 카이스트 등록금은 고려대·성균관대의 절반 수준이어서 여유가 있는 편이다. 반면 정송 카이스트 AI대학원장은 “컴퓨터로 실험을 하려면 고사양 서버실을 운영해야 하는데 전기가 많이 든다”며 “전기 공급기 공사비와 매달 발생할 어마어마한 금액의 전기요금을 정부지원금으로 써도 되는지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몸값 10억원이 넘는 해외 최고 교수는 3개 대학 모두 확보하지 못했다. 오히려 타 학과 교수진을 뽑아 교수연구실 문패만 ‘AI대학원’으로 바꿔단 사례가 많다. 카이스트와 고려대는 AI대학원 전임교수로 적을 옮겼지만, 성균관대는 기존 학부에도 적을 두고 AI대학원에도 적을 둔다.
기존 학과에서 교수들이 이동하면서 교육 누수현상도 발생한다.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AI대학원 교수로 이동한 경우, 컴퓨터공학과 학생이 AI대학원에서 수업을 들어야 해 학생 수가 늘어난다. 학교 측은 학과를 새로 만들 때 왕왕 발생하는 일이라고 설명하지만, 교수들 업무부담은 차치하고 학생들이 피해를 본다.
3명의 원장들은 ‘탈락’에 대한 위기감에 입을 모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사업안은 5년 후 단계평가를 거쳐 1개 대학 탈락, 3년 후 1개 대학 탈락 후 최종 1개 대학만 2년 추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지형 성균관대 AI대학원장은 “AI대학원은 국가 인력 양성 프로그램인데 떨어뜨리는 걸 전제로 설계했다”며 “기술개발 논리라면 경쟁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인재 양성에 무조건 경쟁을 요구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5년 후 학과가 첫 박사 졸업생을 배출할 시점에 폐과되는 학교가 생길 수도 있다는 의미다.
어렵게 첫발을 뗐지만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건 역시 ‘예산’이었다. 정송 원장은 “AI와 관련해 개인적으로도 20억원 정도 연구비를 쓰는 사람도 많다”며 “그렇게 연구가 중요하다면 인력양성사업에는 예산을 더 써야 한다”고 말을 보탰다.
정말 연구비가 필요하면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에서 연구비를 받을 수 있지만, 인력양성은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지원 과기정통부 인공지능정책팀 과장은 “최초 설계는 5+3+2년으로 단계평가마다 1개 대학을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한 것이 맞지만 현재는 5년이 지나보고 결정할 예정”이라며 “절대평가일지 상대평가일지도 미정이기 때문에 모두 유지될 수도, 모두 탈락할 수도 있지만 예산 확보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김 과장은 “일각에서는 AI만 이렇게 지원해주냐는 의견도 있고, 지원금만으로 사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며 “정부 지원금으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학이 자립해야 하기 때문에 무작정 예산을 늘릴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