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지금·여기·당신] '강원도의 힘'이 될 로컬 크리에이터

2019-04-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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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쇼 머스트 고 온'

<이승재의 지금·여기·당신>은 우리 시대(지금) 삶의 현장(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당신)을 쓰고, 말하고, 부딪히는 칼럼입니다.

 

‘더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나온 영국 록 밴드 ‘퀸’의 명곡이자,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의 사실상 마지막 곡이다. 그보다 앞서 미국 작가 해리 골든이 쓴 에세이 제목이기도 하다. 서양인들이 자주 쓰는 속담인 이 말은 ‘쇼는 계속 되어야한다’로 해석된다. 쇼는 곧 인생, 누가 뭐라 해도, 힘들고 어려워도 가야할 길을 가야한다는 뜻이다.

창조경제! 박근혜 정부가 2013년 2월 공식 출범하면서 내건 경제 슬로건이다. 사실 이 단어는 영국의 경영전략가 존 호킨스가 2001년 출간한 책 ‘The Creative Economy’가 원조다. 호킨스는 “창조경제란 새로운 아이디어로 제조업과 서비스업, 유통업, 엔터테인먼트산업 등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했다. 영국 정부가 설립한 국제문화교류기관인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도 자주 쓴다. 그런데 이 좋은 말을 박근혜 정부가 주창한 이후 “실체가 없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창조경제는 박 전 대통령 몰락 이후 죽은 말(사어·死語)이 됐다. 요즘 창조경제라는 말은 쓰지 않지만, 그럼에도 전국 17개 시도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더 쇼 머스트 고 온!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역 인재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으로 만드는 보육, 나아가 창업을 지원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창조경제혁신센터 홈페이지 (ccei.creativekorea.or.kr)를 통해서다.

특히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강원센터)는 지역밀착형 창작자, 일명 ‘로컬 크리에이터’ 발굴에 주력한다. 로컬 크리에이터란 특정 지역에 자리한 유무형 콘텐츠를 기반으로, 창의적·혁신적인 사업 방식으로 창업에 나서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 강원도에 터를 잡고 남들과 다른 비즈니스를 개척하는 이들이다. 네이버와 손잡고 출범한 강원센터는 창의적인 1인 창작가·자영업자·소상공인 같은 로컬 크리에이터들을 찾고, 지원하고 육성,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김철 나다 호스테라피 대표(오른쪽 서 있는 이)가 12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별빛말목장에서 호스테라피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이승재]

지난 12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춘화로 469 ‘별빛말목장-말똥말똥’. 30여명의 동네 주민,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학생들이 초롱초롱 눈을 크게 뜨고 퇴역한 경주마 ‘초롱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강원센터가 지원해 개설된 ‘호스 테라피’ 강좌에 참석한 이들이다. 말(馬)을 통해, 말과 함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호스 테라피를 소개한 강사 김철 대표(나다 호스 테라피)는 “이곳에 전국 처음으로 호스 테라피를 위한 전용 목장이 만들어져 매우 기쁘다”고 했다.

호스 테라피 역시 강원센터가 찾은 새로운 로컬 크리에이터 분야다. '산골샘' 윤요왕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대표가 발벗고 나서 창의적인 비즈니스의 첫발을 뗐다. 한종호 강원센터장은 "윤 대표와 지역주민들이 모두 합심, 노력해 호스 테라피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많은 응원을 보낸다"며 함께 기뻐했다.  

    

강원센터에 따르면 강원도 전역에 이런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즐비하다. 먼저 동해안 양양으로 가보자. 보드를 타고 파도를 즐기는 서핑을 평생 사업으로 택한 박준규 서피비치 대표가 있다. 그는 군사지역으로 통제된 양양의 한 해변의 규제를 풀어내고 ‘서피비치’라는 이름을 붙여 서핑전용해변으로 탈바꿈시켰다.
 

강원도 양양 서피비치, 왼쪽이 박준규 대표[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바닷가에 설치된 여러 개의 해먹이 서피비치의 자랑이자 상징이다. 정직원 15명, 성수기에는 85명의 직원이 일한다. 바닷가 레저 활동이 일자리 창출의 요람이 된 거다. 그는 16개 제휴사와 함께 양양 백사장에 서점, 수영장, 라운지 등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 세계 각국의 서퍼들이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을 기획 중이다. 그는 강원도 고성에서 삼척까지 160㎞ 해안에 설치된 철조망이 철거되는 날을 고대한다.
 

버드나무 브루어리 전은경 대표.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커피의 도시 강릉에 수제맥주의 씨앗을 뿌리는 크리에이터도 있다. ‘버드나무 브루어리’ 전은경 대표는 서울의 한 양조교육기관에서 만난 동료들과 강릉에 터를 잡았다. 맥주를 만들지만 그 공장은 오래된 막걸리 공장터, 제품에는 강릉을 담았다. ‘강릉맥주’라는 로컬 브랜드로 전국 마트에 수제맥주를 공급하고 있다. 올해에는 수입산 맥아를 대체, 국내산 재료를 맥주의 주재료로 활용해 ‘한국적 맥주’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제 그는 한국 가요 K-팝(POP)이 한국 맥주 K-펍(PUB)으로 확산될 미래를 그린다.
 

브레드메밀 최효주 대표.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동계올림픽의 도시, 평창에는 ‘브레드메밀’이 있다. 평창 메밀을 주재료로 하는 빵가게를 ‘빵빵한’ 최효주, ‘달달한’ 최승수 남매가 운영한다. 평창에서 유년기를 보낸 효주씨는 고향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는 이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그는 “손님들 모두가 나의 어머니,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가게를 운영한다. 동네 농축산인들이 생산하는 제품을 재료로 쓴다”며 지역주민과의 상생을 강조했다. 최효주 대표는 대전의 유명베이커리 성심당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 대전에 ‘성심당 거리’가 있듯 평창에 ‘브레드메밀 거리’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당차다.
 

최윤성 칠성조선소 대표.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속초의 최윤성 대표가 하는 ‘칠성조선소’는 단순한 배를 만드는 공장이 아니다. 속초 도심 옛 건물의 의미를 다시 찾는 도시재생의 아이콘이다. 박물관, 카페, 놀이터, 문화공간, 교육공간 등 5개로 이뤄진 칠성조선소에서 최 대표는 카누와 카약을 만든다. 그리고 지역을 혁신하는 문화를 창조한다. 동아서점, 문우당서림, 완벽한날들, 비단우유차 등을 만든 주변 로컬 크리에이터들과 ‘극동연합’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메이드 인 속초’ 브랜드를 지향한다.
 

캘리그래피공방 김소영 작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예쁜 글씨가 작품이 되는 캘리그래피로 로컬 크리에이터의 한 획을 긋고 있는 이도 있다. 신사임당, 허난설헌으로 대표되는 문예(文藝)의 고장, 강릉에서 캘리그래피 공방을 연 김소영 작가다. 강릉지역 단체와의 협업을 강조하는 그는 “강릉의 문인 문화를 발전시키고 공방문화를 체험하는 중심지, 앵커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김 작가는 강릉 명주동 청년회 활동에 애정을 갖고 있다. 순수한 열정 가득한 강릉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뭉쳐 지역 행사를 열고 흥겨운 잔치를 자주 벌일 때 그는 글씨로 봉사한다. 그는 “로컬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이 나를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신나고 행복하다”며 웃는다.

이들은 강원도 문화창조산업을 이끌고 있는 71인을 소개한 책 ‘로컬 크리에이터’에 등장했다. 이 책을 쓴 모종린 연세대 교수는 “정부 지원이 골목상권과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데 중심을 뒀다. 또 젊은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을 대기업이나 공무원이 되지 못한 B급 인재로 여기는 시선도 있다"고 밝혔다. 모 교수는 이어 “도시문화와 골목산업을 창출하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체계적인 육성만이 우리가 원하는 창조도시로 가는 길이다. 커피산업, 서핑산업, 유기농산업이 보여주듯 전국에서 새로운 창조기반 지역산업의 입지가 가장 우수한 지역이 바로 강원도”라고 적는다. 
 
창조경제, 소득주도성장, 4차산업혁명 등 때마다 달라지는 경제구호의 '교집합'은 바로 골목길경제, 문화창조산업이다. 지역의 창의적 소상공인, 로컬 크리에이터는 우리 경제의 ‘풀뿌리’다. 강원도 창조경제, '머스트 고 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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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강원도 경제의 풀뿌리를 지키고 키우는 데 열일하는 한종호 강원센터장은 일본 출장을 계획 중이다. 네이버 출신인 그는 일본 도쿄에서 약 600㎞ 떨어진 산골마을 도쿠시마(徳島)현 가미야마정(町)을 찾는다. 그에 따르면 인구 5400여 명의 작은 시골 마을에 일본의 유수한 IT기업들이 너도나도 지사를 설치했다. 12년 전인 2007년 가미야마 마을주민들 모두가 일치단결해 기업 유치에 나섰고, 마을 전체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았다. 이제는 한여름 계곡에 발 담그고 노트북으로 일하는 도쿄 젊은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마을이 확 달라졌다. 한 센터장은 이런 혁신을 배워 강원도 경제에 꾸준히 ‘창조’를 입히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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