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관심, 관여, 관문이란 말에 쓰이는 '관(關)'은 묘한 말이다. 이 글자의 옛 형상을 보면 문 사이에 막대기 두 개가 걸려 있다. 막대기 중간에는 점이 찍혀 있는데, 이것은 문을 자물쇠로 잠갔다는 의미다. 관(關)이라는 말이 단독으로 쓰이면 국경이나 요지의 통로에 있는 문으로,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이나 화물을 조사하는 곳, 즉 세관이나 공항의 통관소 같은 곳을 의미했다. 원래는 문을 닫아놓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대상에게만 제한적으로 문을 열어주는 행위가 '관(關)'의 핵심이다.
관심(關心)은 관계의 사이를 넘나드는 마음이다. 반드시 사람 사이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과 다양한 대상 사이에 존재한다. 무엇에 대해 마음의 열쇠를 돌린 것이다. 관여(關與)는 저 마음을 행동화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나 대상에 관계해서 이것저것 참여한 것이 '관여'다. 관심은 빗장만 풀어도 '관심'이지만, 관여는 빗장을 풀고 나와야 '관여'다. 이 관여가 지나치거나 부적절한 상황을 꼬집는 말이 오지랖이다.
오지랖은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한다. 옛 한복의 복식을 보면 오지랖이 풍성하게 처리되어 호화롭고 넉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대개 여성이 이것저것 관여하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무라는 표현이었다. 여성의 옷자락이 넓어서 옆에 있는 사람을 가리거나 바닥이나 시야를 가리는 상태를 비유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적절한 정도를 넘어서서 참견하고 간섭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박완서의 소설 '미망'에는 "무슨 여편네가 이렇게 오지랖이 넓담. 즈이 애비에미가 시퍼렇게 살았는데 때 되면 어련히 알아서 시집을 보내든지 말든지 헐려구"란 대목이 나온다. 딸의 혼사문제를 다른 아낙이 참견하는 것에 대해 역정을 내면서 '오지랖 넓다'는 비난을 하는 것이다. 오지랖 넓다는 말에는 은근히 상대를 깔보고 낮추는 태도가 숨어 있다.
지난 12일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을 지목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나 촉진자가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며"라고 말해서 세상이 시끄럽다. 그간 남북 간에 암묵적으로 다져온 존중과 신뢰에 '금'이 가는 말이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중재나 촉진 같은, 분수에 넘치는 의욕을 부리지 말고, 미국에 북한을 위해 해줄 말이나 똑바로 하라는 원색적인 직격탄이다. 남측 정상에 대한 상궤(常軌)의 말투도 아니고, 나이를 고려한 발언도 아니다. 사활을 건 북한의 베팅 전선에, 남(南)이 한낱 들러리나 도구로 여겨지는 듯한 기분도 있다. 이런 말 또한 북한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시늉일 뿐이므로 너그러이 포용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참아나가는 것이 우리 정부의 전략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오지랖'은 심했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