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10일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김 여사가 지난 4일 영화에 나온 할머니들의 자녀 혹은 손자·손녀와 이 영화를 함께 관람했으며, 할머니들에게 편지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과 할머니들의 이름이 새겨진 책주머니를 선물했다고 밝혔다.
'칠곡 가시나들'은 1930년도에 태어나 가난과 여자라는 이유 등으로 한글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뒤늦게 글을 배우면서 발견한 일상의 변화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하는 김정숙 여사가 보낸 편지 전문.
‘칠곡 가시나들께’ 라고, 애정과 존경을 담아 불러봅니다. 며칠 전에 따님이랑 손주 손녀 몇 분과 ‘칠곡 가시나들’을 보았습니다. 1930년대 태어난 ‘가시나들’에게 배움의 기회는 쉽지 않았겠지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박해와 가난 속에서 어머니의 자리를 지켜낸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80줄에 이르러 글자를 배울 용기를 내고 ‘도라서 이자뿌고 눈뜨만 이자뿌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던 ‘칠곡 가시나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처음으로 이름 석 자를 쓰고, 처음 편지를 쓰고, 처음 우체국에 가고, 아무도 ‘꿈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던 세월을 건너 가수라는 꿈을 찾아 노래자랑에도 나가고….
‘떨리고 설레는 첫 순간들’을 맞이하는 칠곡 가시나들의 얼굴을 보면서 덩달아 마음이 환했습니다.
칠곡 가시나들에게 첫 극장관람 영화는 자신들이 주인공인 ‘칠곡 가시나들’ 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 늦은 처음’, 하지만 이제라도 스스로 찾아내신 ‘그 모든 처음’을 축하드립니다.
이제 ‘가시나들’이라는 말은 나이에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패기, 나이에 꺾이지 않고 설렘과 기쁨의 청춘을 살아가는 지혜, 유쾌하고 호탕한 유머와 사려 깊은 통찰…. 그런 말들로 다가옵니다. 과거와 추억 속에 살지 않고, 날마다 두근두근한 기대로 오늘을 사는 칠곡 가시나들의 ‘내 나이 열일곱’이라는 선언에 박수를 보냅니다. ‘청춘은 인생의 어느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이라는 시도 있으니까요.
“나는 박금분. 할매면서 학생이다”, “나는 곽두조”, “나는 강금연”, “나는 안윤선”, “나는 박월선”, “나는 김두선”, “나는 이원순”, “나는 박복형” 당당하게 말하는 그 이름들 앞에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사는 기, 배우는 기 와 이리 재밌노!” 배우는 게 마냥 즐거운 칠곡 가시나들께 조그만 책주머니를 만들어 보냅니다. 칠곡 가시나들의 그림과 함께 자랑스러운 이름들도 새겨 넣었습니다. 공책이랑 연필이랑 넣어서 가볍게 드세요. 주머니가 크면 이것저것 무겁게 넣으실 것 같아 너무 크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공부가 아무리 재미있어도 너무 오래 구부리고 계시지는 마세요. ‘아침 점심 저녁 맛있게 먹기, 그리고 밤에 잘 자고 잘 일어나기.’ 주석희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 꼭꼭 잘하셔야 합니다.
‘글자를 아니까 사는 기 재미지다’ 라고 하셨지요. ‘칠곡 가시나들’에게는 글자를 알고 나니 사방에서 시가 반짝이는 인생의 봄이 왔나 봅니다. 더 많은 분들이 늦게나마 ‘봄’을 만나도록 해야겠습니다. ‘칠곡 가시나들’의 즐거운 감탄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번져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가마이 보니까 시가 참 많다/ 여기도 시 저기도 시/ 시가 천지삐까리다‐시인 박금분> 저도 오늘부터 가마이 ‘천지삐까리’인 시를 만나보겠습니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유쾌한 칠곡 가시나’들의 자리를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2019년 3월 6일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 김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