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라운드까지 선두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에 4타 뒤진 공동 8위. 박성현의 노림수는 확실했다. 까다로운 코스에서 공격적으로 핀을 공략했다. 파5 홀에서는 과감하게 이글을 노렸고, 파4 홀은 티샷을 멀리 보낸 뒤 짧은 거리서 정확한 샷으로 버디를 사냥했다. 승부사다운 ‘닥공’(닥치고 공격) 스타일이었다.
시즌 두 번째 대회 만에 우승. 박성현이 ‘슬로 스타터’라는 꼬리표를 뗐다. 화끈한 역전 드라마로 2019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첫 승을 수확했다. 3일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클럽 뉴 탄종 코스(파72)에서 끝난 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9개를 쓸어 담으며 보기는 1개로 막아 무려 8타를 줄여 64타를 쳤다. ‘64타’는 이번 대회 최저타 기록이다. 최종합계 15언더파 273타(69-71-69-64)를 기록한 박성현은 2위 이민지(호주·13언더파 275타)를 2타 차로 따돌리고 투어 통산 6번째 우승트로피를 수집했다. 이 대회에서 우승상금 22만5000달러(약 2억5000만원)를 챙긴 박성현은 LPGA 투어 통산 상금 400만 달러를 돌파(407만6822 달러)했다.
마지막 날 우산을 낮게 쓰고 경기에 집중한 박성현의 기록도 놀라웠다.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 281야드를 보내면서 페어웨이는 두 번, 그린은 단 한 번만 놓쳤다. 퍼트 수도 27개에 불과했고, 이글을 노리다 벙커에 빠진 홀에서도 버디를 잡아낸 완벽한 라운드였다. 말 그대로 ‘더 멀리 보내고 더 정확하게’ 펼친 경기였다. 지난해보다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는 10야드(269.80야드→279.38야드) 늘었고, 페어웨이 정확도(71.70%→80.36%)와 그린 적중률(74.05%→78.47%)이 모두 크게 향상됐다.
박성현은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목표를 ‘시즌 5승’으로 정했다. 데뷔 시즌인 2017년 2승, 지난해 3승에 이어 목표치를 더 높인 우승 횟수였다. 시즌 초반 고전했던 지난 2년간과 달리 첫 승을 빨리 거두면서 박성현의 올해 시즌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7월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2018년에는 5월 텍사스 클래식에서 첫 승을 기록했다. 박성현도 “첫 승이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전혀 몰랐다”며 놀란 뒤 “작년에는 샷이 불안정해서 경기를 풀어나가기 어려웠는데, 올해는 겨울 훈련이 굉장히 좋아서 전체적으로 더 단단해진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이어 “목표 수정은 없다. 아직 네 번 더 우승해야 한다”고 마음도 단단히 다졌다.
박성현에게는 또 하나의 목표가 더 있다. 세계랭킹 1위 탈환이다. 박성현은 “물론 세계랭킹 1위 경쟁에 대한 의식을 하고 있다”며 “올해 목표 중 하나가 다시 세계 1위가 되는 것”이라고 다부지게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쭈타누깐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 박성현은 세계 1위 탈환을 위해 박차를 가했다. 쭈타누깐은 공동 8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박성현은 시즌 초반 기분 좋은 역전 우승으로 여유도 생겼다. 최근 광고 촬영을 위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만난 박성현에게 ‘우즈로부터 연락 받은 건 없나’라는 질문이 나오자 재치 있는 입담을 보탰다. 박성현은 “우즈의 전화번호를 모른다”며 웃어 보인 뒤 “아마 우즈가 이 인터뷰를 본다면 우즈로부터 좋은 에너지를 받아 이번에 우승할 수 있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LPGA 투어는 2주간 휴식기를 갖지만, 박성현은 오는 6일부터 사흘간 더 컨트리클럽 레이디스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하기 위해 필리핀으로 이동한다. 이 대회는 필리핀과 대만 여자골프 투어가 공동으로 개최한다. 올해부터 2년간 필리핀 기업으로부터 역대 최대 규모(약 70억원 추정)로 새 후원을 받은 것에 대한 보답 차원의 대회 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