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핵담판'인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깨지면서 '중재역'을 자임해온 문재인 대통령도 최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타임이었던 '선(先) 북·미 간 종전선언-후(後) 다자 간 평화협정체제 구상'도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세기의 핵담판 전 '신(新)한반도체제' 구상을 띄우면서 남북경제협력 이니셔티브(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100주년을 맞는 3·1절 기념사에서도 미·중·일·러를 주변국으로 하고 한반도의 두 주인이 북한의 개혁·개방을 주도한다는 '신한반도체제' 구상의 각론을 밝힐 예정이었다.
◆靑 급반전에 당혹…26분 만에 상황 180도 반전
청와대는 28일 오후 역사적인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인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핵담판이 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핵담판 결렬 직전인 오후 2시 10분 정례브리핑에서 "오늘 회담 결과에 따라 남북 간에 대화의 속도·깊이가 달라지겠지만, 잠시 휴지기에 있었던 남북 대화가 다시 본격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2차 핵담판에서 북·미 정상이 '종전선언'에 합의하는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 발언이었다. 북·미 양국이 70년간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면, 문 대통령은 항구적 평화협정을 위한 다자 협의체를 제안할 구상이었다.
또한 북·미 정상이 영변 핵폐기에 합의했다면, '북한의 실질적 핵위협'은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이는 '남·북·미·중 평화협정 체결'과 직결한 사안이었다. 남북경제협력을 위한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26분 만에 상황은 급반전했다. 김 대변인은 오후 2시 27분 '남북 대화 본격화'를 언급했다. 외신 등 언론은 오후 2시 53분 북·미 정상이 오찬과 서명식 없이 숙소로 돌아갔다는 속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청와대 일부 관계자들은 기자들의 전화를 받지 않거나, "사태를 파악해보겠다"고 극도로 말을 아꼈다. 문 대통령은 이날 TV 생중계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등과 함께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볼 예정이었지만, 핵담판 결렬로 자연스럽게 취소됐다.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 나온 것은 6시 2분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면서도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룬 것도 분명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지속적인 대화 의지와 낙관적인 견해는 다음 회담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연계해 제재 해제 또는 완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점은 북·미 간 논의의 단계가 한층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미국과 북한이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지속해 나가면서,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해나가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북·미 제3차 회담의 중재역에 나설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저녁 미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하노이회담 결렬 소식과 배경을 설명했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문 대통령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며 "사활적인 중재 노력을 통해 북·미가 타협할 수 있는 상호 설득점을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