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항거' 고아성 "3·1운동 100주년? 내 생애 가장 의미 있는 3·1절"

2019-03-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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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항거'에서 유관순 역을 맡은 배우 고아성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냥, 죄책감이 들어서요."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감독 조민호 이하, '항거') 언론 시사회장에서였다. 유관순 역을 맡은 배우 고아성(27)은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던 도중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영화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였는지 채 말을 마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연신 눈물을 쏟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며칠 뒤 인터뷰 현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커다란 눈망울은 여전히 눈물이 그득했고 "인터뷰를 하다가 또 울어버렸다"며 겸연쩍어하는 얼굴은 영화 속 유관순과는 달리 느껴졌다. 영화와 유관순 열사에 관해 죄책감이 그득하다며 문득문득 눈물을 보이던 고아성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죄책감'에서 애정과 존경을 엿볼 수 있었다.

'항거'는 1919년 3.1 만세운동 후 세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 속, 영혼만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1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역사 속 위대한 독립운동가 이전에 한 명의 보통 사람이었던 열일곱 소녀 유관순의 마음을 따라간다.

3.1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와 '항거'에 관한 세간의 관심이 더욱 높아진 상황. 조민호 감독과 고아성 그리고 제작진들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유관순 열사의 이면을 보여주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모두가 아는 인물을 연기한 거잖아요. 이제는 어떤 평가도 달게 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요."

영화 '항거'에서 유관순 역을 맡은 배우 고아성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조곤조곤, 또박또박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어떤 비장함이 느껴졌다. 그가 '항거' 시나리오를 받고 유관순 캐릭터를 앞두고 어떤 심사숙고를 거쳤는지 적게나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 그에게 "시나리오를 받기 전, 그리고 연기하고 있을 때, 촬영을 마친 지금 시점에서 보는 유관순 열사는 차이가 있느냐?"고 묻자 단박에 "아주 다르다"는 답이 돌아왔다.

"달라요. 아주 달라요. 유관순 열사님께 접근할 때 피상적으로밖에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적으로 접어드는 부분에서 죄책감을 느꼈고 감정이 다양해졌어요. 언론시사회 때 말씀드린 '성스러움' '존경스러움' '존경심' 등이 그런 마음인 거죠. 그리고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 제 안에서 조금 더 정리되면서 감정이 더 풍부해지기도 했고요."

그가 언론시사회에서 눈물을 보였던 건, 범접할 수 없는 존경심과 더불어 한없이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었다. 열일곱, 앳된 소녀가 가진 극단의 모습은 고아성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감정이었다.

"유관순 열사의 인간적 면모라고 할까요. 그런 부분을 예상하지 못했어요. 막연하게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눈물도 자주 보이고, 고민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는 인간적인 모습들이 가슴 깊이 다가왔어요. 저는 늘 강인한 단면만을 생각했고 그래서 이런 인간적인 면모를 준비하면서 더 죄책감을 느꼈죠."

고아성의 마음을 뒤흔든 건 단 한 장의 사진이었다. 바로 유관순 열사의 머그샷. 영화 오프닝 장면에 등장하는 사진이기도 하다.

"앳된 얼굴이더라고요. 남아있는 그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마음에 새겨넣었어요. 그 사진부터 시작해 제 안에 있는 유관순 열사님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든 거 같아요. 나이도, 목소리도 새롭게 각인이 되더라고요. 감옥에서 시간이 시작되기 전, 그 시간을 겪지 않은 얼굴. 그 사진을 틈틈이 보면서 (인물과 감정을) 만들어 갔어요."

영화 '항거'에서 유관순 역을 맡은 배우 고아성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시나리오를 받고 "영광과 부담감 중, 솔직히 부담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는 고아성. 그 '부담'이 '소중함'으로 바뀌기까지 많은 고민과 고충이 따랐음은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부담'에도 출연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아성은 조민호 감독의 편지 때문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시나리오에 편지가 함께 있었어요. '유관순 열사뿐만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8호실의 많은 여성독립운동가에 관해 말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는데 영화에 대한 결의가 느껴졌어요. 역사에 대한 잔혹함을 스크린에 모두 담을 수 없고 치우지 않은 역사를 담고 싶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죠. 감독님에 대한 확신이 들었어요."

감독님에 대한 확신과 작품에 대한 애정 그리고 캐릭터에 대한 책임감과 열의는 '열연'으로 이어졌다. 고아성은 유관순 열사 캐릭터를 위해 촬영 전 금식까지 감행하며 캐릭터에 몰입했다고.

"시나리오 회의를 시작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금식' 이야기를 했어요. 몸을 따로 준비해서 작품을 들어간 건 처음이었어요. 실질적인 감량뿐만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에서도 도움이 된 거 같아요. 제가 어떤 인터뷰에서 봤는데 마음고생을 짙게 하는 장면을 앞두고 이틀 동안 잠을 안 자고 촬영장에 갔는데 연기로 크게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몸'이 준비가 된다는 건 또 다른 연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장난기 넘치고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영화 초반, 유관순의 모습들이 오히려 더욱 범접하고 접근하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영화 초반, '나는 개구리가 아니다'하고 외치기 전까지의 과정은 유관순이라는 이름 아래 준비한 작업이 아니었어요. 그냥 한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감정을 지켰어요. '나는 개구리가 아니다' 하고 외치는 장면에서 그분의 어떤 성격을 알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리더 같은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오히려 그런 장면들이 진지한 장면보다 더 접근하기 힘들었던 거 같아요."

유관순이 아닌 배우 고아성으로서 마음이 아팠던 장면들도 함께 언급했다. 그는 "폭력이 가해지는 신보다 홀로 8호실에 남았던 장면들이 더욱 아팠다"고 전하기도 했다.

"특사로 8호실에 함께 하던 모두가 떠나고 유관순 열사만 홀로 남는 장면이 있어요. 폭력이 가해지는 장면보다도 그 장면이 더 깊게 남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예상했을 텐데. 더 가슴이 아팠어요."

3.1만세운동 이후 1년. 서대문형무소 8호실에 갇혀있던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테스트 촬영 당시 고아성은 서대문형무소를 방문 그날의 공기를 느껴보려 했다고. 그는 서대문 형무소가 주는 무드와 감정에 관해서도 말했다.

"테스트 촬영을 하러 갔던 날이 생각나요. 영화 준비하면서도 몇 번 갔었는데 그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더라고요. 이들이 이 공간에 있었다는 울림이 깊게 다가왔어요. 어릴 때도 가보고, 가까이 있는 곳이지만 혼자 이렇게 있어 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복도 끝에 홀로 서 있었는데 뜨거운 감정이 끓어오르더라고요. 영화를 찍을 때도 '이 감정을 그대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마음가짐으로 연기했어요."

영화 '항거'에서 유관순 역을 맡은 배우 고아성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유관순 열사에게 8호실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은 '동지'이자 '친구'였다. 고아성에게도 8호실에서 함께 한 여배우들 역시 남다른 의미였을 텐데. "오래 활동했지만 이런 경험은 낯설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어느 날, 어떤 배우가 그러더라고요. '우리 생경스럽지 않아?'하고. 그러고 보니 저도 또래들과 촬영한 적은 있었어도 이렇게 많은 분과 함께 한 공간에서 촬영한 건 처음이었어요."

유관순 열사를 연기하면서 고독하고, 힘들고, 괴로웠다. 그러나 8호실에 함께한 24명의 배우가 그 고통을 함께 나눠주었고 고아성은 그 무게를 이겨낼 수 있었다.

"극 중 3.1운동 1주년을 맞아 8호실에서 만세를 외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을 앞두고 정말 괴롭고 무서운 감정이 들었어요. 나름대로 연기 활동을 오래 했는데도 촬영 3일 전부터 심장이 마구 뛰더라고요. 제 얼굴을 (카메라가) 찍고 24명의 배우가 등지고 있는데 그분들은 얼굴이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데도 감정을 주면서 일일이 아이컨택을 해주시더라고요. 그 마음이 실시간으로 전해졌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아, 왜 그렇게 무겁게만 생각했지?' '왜 혼자서만 짊어지려고 했지' 하고요. 소중한 경험이었죠."

평소 작품을 마치면 기념으로 소품을 가져온다는 고아성. "이번 '필모 전시장'에 전시된 소품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네모난 틀밥"이라며 웃어 보였다.

"그 틀밥도 고증에 따라 만든 거예요. 제 필모 전시장에 잘 전시해놨어요. 가져올 땐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영화 속에서 제가 항상 밥을 잘 못 먹더라고요. 기도할 때도 몰래 밥을 먹고, 빨래터에서 밥을 먹을 때도 도중에 불려 나가고, 밥을 나눠주기도 하고. 밥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앞서 언급한 대로 올해는 3.1 만세운동 100주년이다. 고아성에게 올해 3.1절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질 터.

"영화를 준비하면서 더 많이 생각하기도 했었던 거 같아요. 영화 개봉 시기기도 하지만, 영화를 준비하면서 더 많이 깊이 생각할 기회가 된 거 같아요. 제 생에 가장 의미 있는 3.1절이 아닐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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