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정민의 의심, 확신이 되던 순간…'사바하'

2019-02-2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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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바하'에서 나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는 배우 박정민(32)에게 '낯선' 작품이었다. 작품의 장르적 특성이나 매력도를 떠나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이나 연기와는 너무도 다른 '결'을 가졌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지만, 장재현 감독이 완성해놓은 '사바하'의 세계를 보며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하면 되는구나."

영화는 신흥 종교 집단을 쫓던 박목사(이정재 분)가 의문의 인물과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며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 이번 작품에서 박정민은 미스터리한 정비공 나한 역을 맡았다.

평범해 보이는 인물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인 그는 영월 터널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철진이 자살을 부추긴 장본인으로 실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 철진의 죽음 이후에는 쌍둥이 동생 금화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위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 '나한'은 좀체 쉬운 인물이 아니었다. 장르적 색채가 강하면서도 영화적 은유와 시적인 표현들이 가득하다. 드러내기보다 숨기면서 인물을 파고들어야 하지만 "장르 영화 특성상 기능적인 역할도 해야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바하' 나한은 그간 제가 해온 연기와는 달랐어요. '지금 내가 하는 게 맞나?' 의심이 들곤 했죠. 그동안 드라마를 쌓고 감정을 끌어올린 다음 설득하는 작업을 해왔다면 나한은 기능적인 역할도 해야 했거든요. 아마 예전처럼 연기했다면 시간이 오래 걸렸을 거예요. 나한은 '사바하'라는 장르 영화 속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는 아이예요. 서스펜스를 맡고 있죠. 연기할 때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나중에 감독님이 장면들을 붙여놓은 걸 보고 깨달았어요. '아, 이렇게 나오는 거구나.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하면 되는구나!' 하고요."

영화 '사바하'에서 나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동주'(2015)부터 '아티스트'(2016) '그것만이 내 세상'(2017) '염력'(2017) '변산'(2017) 등 쉬지 않고 '열일' 해왔던 박정만은 '사바하' 시나리오를 받아들기 전까지만 해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사리고 있었다고.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던 그였지만 "이 영화를 나 아닌 누군가가 했다고 생각했을 때 너무 배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 출연을 결정했고, 그 순간의 결정은 박정민의 많은 '습관'을 바꾸어놓았다.

"처음에는 저도 제 방식대로 나한을 만들었죠. 늘 해오던 방식으로. 이렇게도 연기해보고, 저렇게도 연기해봤는데 감독님께서 나한의 감정을 잘 설명해주시고 그의 '목적'에 관해 많이 설명해주셨어요. '얘가 어떻게 나와줬으면 좋겠다'고도 하셨죠. 그 신의 목적은 곧 나한의 목적이니까요."

해보지 않았던 장르, 해보지 않았던 연기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을까? 박정민은 "이렇게 대사가 적은 인물은 오랜만"이라면서도 "있는 대사는 거의 주문"이라며 바람 빠진 듯 웃기도 했다. 영화를 본 기자 역시 그의 말에 웃었다. 영화 속 무표정한 얼굴로 '주문'만 외던 나한이 떠올라서였다.

"대사를 외우는 건 어렵지 않은데 주문을 외우는 게 어려웠어요. 그냥 입에 붙이는 수밖에 없었죠. 그 '주문'을 스님들처럼 리듬을 타서 외우면 나한 캐릭터에 어울리지도 않고 이상하게 보일 거 같아서. 그냥 리듬을 쭉 빼고 아주 담백하고, 건조하게 연기했어요. 테이크마다 리듬도 다 달랐어요. 후시 녹음 할 때도 다른 걸 많이 시도해보기도 했었어요."

주문을 외울 때는 '리듬감'을 쭉 뺀 말투를 보여주었지만 도리어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묘한 '리듬감'을 선보이는 독특한 나한의 언어. 이 기묘했던 말투에 관해 질문하자 박정민은 "평소 제가 쓰는 말투를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변산' 학수는 온전히 제 말투인 게 좋겠지만, '사바하' 나한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고민 끝에 완전 '나답지 않은 말투'를 꺼내 보기로 했죠. 또 '사천왕'은 모두 어린 시절부터 알던 아이들일 거라는 설정에서 서로를 높여 부르는 말들이 더 이질적이고 낯설며 이상해 보일 거로 생각했어요. 누가 봐도 어린아이들이 서로를 '철진님' '나한님'이라 부르면서 존댓말을 쓰고 서로를 높여 부르고 대하는 그 '이상한' 행동이 그대로 보이길 바랐죠. 생경해 보이길 바랐던 거 같아요."

영화 '사바하'에서 나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미스터리한 나한의 정체. 박정민은 "관객들이 '쟤는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약해 보이는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숨기려 노력하지만,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약함'이 관객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그게 계기가 되는 신이 있어요. 나약하고 죄의식이 강한 나한의 모습들이요. 하지만 그걸 다 드러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한이 다 표현해버리는 순간 너무 재미가 없어지더라고요. 나한은 정보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버릴수록 재밌어져요. 하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힘들더라고요. 뭔 안 해야 재밌는데, 뭘 안 해야 하니까!"

무표정한 얼굴의 나한은 그 내면을 들여다볼수록 상처투성이인 데다가 강렬한 믿음과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 있는 인물. '보여줄 수 있는 것'에 비해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적었던 매우 어려운 캐릭터였다. 감정연기에 관해 묻자 박정민은 "기본적으로 나한의 몸에 붙여놔야 하는 감정은 괴로움"이라며 시종 '괴로움'과 '믿음'으로 인물을 갖추었다고 설명했다.

"나한은 사이코패스적인 인물이 아니에요. '믿음'을 가진 친구지만 '악행'을 분명 인지하고 있고 밤마다 괴로워하고 있죠. 하지만 나를 구원해주는 존재를 위해 매번 마음을 다잡잖아요. 나한의 마음에 깊이 들어가지 못한 채 시작했는데, 들어가 보니 불쌍한 아이더라고요. 이 아이마저도요. 그럴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나한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보시면 '사바하'는 정말 슬픈 영화가 될 거 같아요."

영화 '사바하'의 주인공은 곧 서사였다. 각각의 서사가 인물들을 끌어가고 인물들은 충실히 그 몫을 다해냈다. 장재현 감독이 머릿속으로 그려낸 영화를 실현해준 건 박정민을 비롯한 이정재, 유지태, 이재인, 이다윗 등 걸출한 배우들. 박정민은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의 칭찬을 늘어놓으며 "영광이었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사슴 동산과 관련된 인물인 유지태 선배님과 가장 많이 만났죠. 극 중 나한이 장군이기 때문에 지태 선배님께서 (나한에게) 존대말을 쓰는데 그 그림이 묘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요. 사실 처음에는 서로 존댓말을 쓰는 설정이었는데 불교에서 장군이 더 위라고 하길래 '그럼 제가 반말해도 되지 않나요?' 제안해 설정을 바꾸게 되었죠. 관계성들을 만들어나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반말은 하고 있지만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듯하고 반대로 지태 선배님은 공손한 말투지만 한참 위에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관계가 잘 보인 거 같아요."

영화 '사바하'에서 나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또한 그는 지난 2016년 개봉한 '무서운 이야기3: 화성에서 온 소녀'를 언급, 이재인과의 인연에 관해 추억하기도 했다.

"정말 놀랐던 게 우리가 '무서운 이야기3'에서 만났다는 거예요! 옴니버스 영화라 같은 에피소드에 나온 건 아니었지만 '기계령'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로봇이었던 아이가 재인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나중에 '사바하'에서 만나게 됐는데 뭐랄까 딱 그 나이 또래 수줍은 소녀더라고요. 낯도 많이 가리고. 그런데 카메라 앞에만 서면 어른이 돼버려요. 모니터를 보는데 웬 어른이 서 있는 거예요. 놀라서 감독님께 '아니, 얘 그동안 큰 거 아니에요?'라고 할 정도예요. 진짜, 정말, 잘 될 애예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원하는 바를 이루소서"라는 뜻을 담은 '사바하'라는 영화 제목처럼, 그의 '믿음'과 '신념'이 지켜지길 바라는 뜻에서였다. 그는 최근 자신을 지탱해주는 존재가 "영화"라면서 부끄러운 듯 웃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오그라들기도 하고, 너무 '인터뷰용 언어' 같기도 한데 정말 진심이에요. 전 요즘 영화 현장에 나가는 게 제일 재밌어요. 얼마 전 '타짜' 쫑파티에 갔는데 그간 살 부대끼며 작업한 친구들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집에 못 가겠더라고요. 다음날 인터뷰 일정이 있는데도 자리를 못 떠나고 있다가 근처에서 잘 정도로요. 그 정도로 현장에 있는 게 제일 좋고 신나요. 스태프들은 저를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한 사람, 일원'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좋아요. 그런 좋은 마음으로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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