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네덜란드 가정의 1년 평균 생활비가 300길더였는데, 총독이라는 이름의 튤립은 그 10배인 3000길더에 거래됐다. 이 금액이면 돼지 8마리, 소 4마리, 우유 2t, 치즈 1000파운드, 은잔 하나, 침대, 배 한 척과 바꿀 수 있을 정도였다.
튤립은 하루에 몇 배씩 가격이 오르고 한 달에 수십 배씩 가격이 올라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 튤립 알뿌리를 찾아 다녔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몇 달 만에 99%나 폭락하고 말았다.
지난해 암호화폐(가상화폐) 시장이 폭등하자 이를 두고 튤립 버블에 비유하곤 했다. 비트코인의 경우 국내에서 김치프리미엄(가상화폐에 대한 국내 수요는 지나치게 많지만 공급이 제한되어 있어 한국의 암호화폐 거래가격이 해외보다 비싼 현상)까지 붙어 3000만원까지 치솟았다가 2월 현재 300만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다른 암호화폐의 경우 등락폭은 더 심했다. 튤립 버블과 같다는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향후 전망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지난해 “한강으로 가즈아~”를 외칠 만큼 큰 ‘파동’을 거치면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장의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뜬구름 잡는 식의 ‘가상’에 불과한 기술과 화폐가 아닌 ‘실생활’에서 직접 접할 수 있는 기술과 화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는 기술과 화폐는 도태되는, 이른바 옥석이 가려지고 있는 셈이다.
데이터를 블록으로 묶어 동시에 수많은 컴퓨터에 복제 저장하는 특성으로 보안이 뛰어나고 위·변조가 불가능하다는 블록체인과 그 부산물인 암호화폐를 활용한 다양한 시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변화의 포인트다.
세계적으로는 유통업체 월마트가 식품 추적에 블록체인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는 암호화폐 결제서비스가 공식 등장할 전망이다. 가상화폐공개(ICO) 금지와 같은 규제책으로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정부도 다양한 공공 블록체인 시범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거래 블록체인 사업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블록체인 전자증명시스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블록체인 온라인선거시스템 등이 그것이다.
민간 부문에서는 더 활발하다. 씨커스블록체인은 제주도 렌터카에서 관광지 요금결제를 암호화폐로 결제할 수 있도록 했고, 메디포스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활용한 의료 평판시스템으로 최상의 의료정보를 제공한다. 이외에도 라인의 링크(Link), 두나무의 루니버스(Luniverse), 티몬의 테라(Terra), 블로코의 아르고(Aergo) 등 다양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활용한 프로젝트가 지난해 선보였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블록체인이 가진 분권화, 스마트 계약, 투명성, 보안성 등의 장점은 혁명적인 기술이지만 현실과의 접목이 전제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많은 블록체인 기업들을 홍보해 온 시각으로 보자면 상당수의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올해부터는 실생활에 뿌리 내리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해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