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양측은 지난 7~9일 베이징에서 차관급 실무 협상을 개최, 미국산 에너지 및 농산물 구매 확대를 통한 무역 불균형 개선 등 양국 간 구조적 난제에 대해 논의를 했다. 류 부총리는 실무 협상 첫날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미국과의 대규모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한 통상 차원의 노력에는 이미 양측이 상당한 의견 접근을 보고 있지만, 미국이 그토록 바라는 중국 경제 정책의 '구조적 변화(structual changes)'를 두고는 진전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낙관적인 어조로 무역협상의 진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합의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 제품의 수입을 늘리는 데는 적극적이지만 실질적 제도 개선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해외기업들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와 지식재산권 침해, 사이버 절도 등 이른바 '기술 절도'로 불리는 불공정 관행을 제도적으로 개선할 것을 중국에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합의문에 라이트하이저 대표나 트럼프가 서명을 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24일(현지시간) 미·중 무역 협상과 관련, 두 나라는 "많고 많은 문제(lots of lots of issues)를 안고 있다"며 합의에 도달 하려면 아직 머나먼 길을 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경제매체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중국의 구조 개혁과 공정한 통상 관계를 위한 처벌 규정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중국이 세계 첨단 기술 산업을 지배하기 위한 '중국제조 2025' 전략으로부터 미국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해 미국산 수입을 확대하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의미이다.
이번 미.중 회담의 성패는 중국이 미국의 '구조적인 변화' 요구를 어느 정도 까지 수용하느냐 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입장을 수용 하자니 금융, 서비스, 보안 분야에서 각종 관련 법률 개정이 필요할 뿐 아니라 국가 경제의 구조적 개혁과 수정도 불가피 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미.중 무역 갈등의 여파로 중국 경제의 성장이 눈에 띠게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 전쟁 여파로 지난 해 중국 무역은 수출과 수입 모두 큰 폭 감소세를 보였다. GDP 성장률은 28년래 최저치인 6.6%로 뚝 떨어졌다. 무역 협상이 결렬되어 '관세 폭탄' 전쟁이 다시 본격화 되면 2019년 성장률 6%대 사수도 어렵다는 우려가 중국 내부에서도 제기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블랙스완(검은백조) '와 '회색 코뿔소'의 위험을 철저히 예방하라고 강조했다. 블랙스완은 발생할 확률이 낮지만 일단 나타나면 큰 충격을 주는 리스크를 뜻한다. 위안화 급락에 따른 자본 유출, 이로 인한 전면적인 금융위기 가능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회색 코뿔소는 부동산 거품, 기업 디폴트 증가 등 뻔히 보이지만 실제 위협시 까지 주목 받지 못하는 위험이다.
로스 장관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중간 무역협상 시한 연장 가능성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예단하기 이르다. 시한이 다가오게 되면 대통령과 협상 참가자들이 그 시점의 상황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논의하게 될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런 상황에서 양측이 '완전한 타협점'에 이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하지만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감은 아직 식지 않고 있다. 중국 협상단을 이끄는 류허 부총리는 대표적 '개혁 주의자'로 중국 경제 모델의 설계자로 알려져 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24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류허 부총리가 결단력을 발휘할 것"이라며 낙관론에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