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상한' 소비자 '기이한' 시장

2019-01-2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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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생활경제부장]

 

요즘 ‘이상한 소비’가 늘고 있다.
'2500원짜리 김밥 한 줄로 점심 한 끼를 때우면서 다이어리는 100만원이 넘는 걸 쓴다?'
통상적인 소비심리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상황’이다.

지난해 말 루이비통의 다이어리 제품 ‘아젠다’는 품절사태를 겪었다. 커버 95만원, 속지 17만원을 합해 다이어리 하나가 100만원을 훌쩍 넘었다. 그러나 출시 직후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 ‘최애 아이템’으로 뜨면서 아젠다는 동이 났다.

자동차시장에서도 비슷한 징후가 있다. 지난해 1억원 이상 고가 수입차의 국내 판매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1억원이 넘는 수입차는 전년보다 10.5% 증가한 2만6314대가 팔렸다. 지난해 판매된 수입차 10대 중 1대의 가격이 1억원을 넘은 꼴이다.

수년째 내수침체에 소비심리 위축까지 굳어진 상황에서 고가제품이 잘 팔리는 ‘기이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상한 추세는 또 있다. 고가제품이 잘나간다고 해서 저가제품이 안 팔리는 것도 아니다. 초저가도 잘 팔린다. 

의류시장을 예로 들면, 수백만원짜리 디자이너 브랜드(제품)가 잘 팔리는 가운데 초저가인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구매자의 비율도 꽤 높다. 중간에 낀 10만~20만원대의 ‘중저가’ 의류제품이 안 팔릴 뿐이다.

‘완전히 싸거나 아니면 아예 비싸거나’. 쉽게 말해 지금 소비자들은 초저가 아니면 프리미엄급 제품들을 주목하고 있다. 가성비를 따져 저가제품을 찾기도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소비풍조가 공존하는 것이다. 이른바 소비 양극화 시대의 도래다.

유통업계 관점에서 보면 이 같은 소비자의 성향이 극과 극으로 치달으면서 기업들 간 운명도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중저가를 내세우며 승승장구하던 대형마트가 불황에 허덕이며 폐점이 속출하는 사이, 위기국면이던 백화점은 명품을 중심으로 오히려 반등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지난해 11월 말까지 신세계백화점의 명품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9.1% 늘었다. 2016년 9.4%였던 명품 매출이 2017년 18.4%였다가 지난해는 더 증가한 셈이다.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 역시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각각 전년 대비 명품매출 신장률이 14.6%, 19.8%에 달했다. 백화점 관계자들 사이에 "명품이 계절성이 있었는데 요즘엔 시기도 안 탄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반면 대형마트는 '초저가'를 앞세운 온라인몰에 밀리며 몇 해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이마트가 대구 시지점과 인천 부평점을 폐점했고, 홈플러스(동김해점·부천중동점)와 롯데마트(동대전점)도 폐업 행렬에 동참했다.

수익지표 역시 이마트의 2018년 3분기까지 매출이 10조125억원으로 2017년 같은 기간보다 7.8%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2.5% 줄었다. 롯데마트도 같은 기간 매출 4조8439억원으로 2017년에 비해 3.4% 줄었고, 지난해엔 1818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소비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소득 양극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3분기 월평균 가계 소득은 474만80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4.6% 증가했지만 하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132만원으로 1년 전보다 오히려 7% 줄었다. 소득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다만 예전의 소비 양극화는 대체적으로 소득의 양극화와 정비례한 소비 패턴을 가졌다. 부자가 비싼 물건을 사고 가난한 사람은 저렴한 상품을 산 식이다. 하지만 최근의 소비 양극화는 이런 패턴을 과감히 바꾸고 있다.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초고가 명품을 이제는 ‘서민들’이 원하는 만큼 구입한다.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는 ‘가성비’에서,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을 추구하는 ‘가심비’를 넘어, 이제는 나의 심리적 만족을 위해서라면 가격에 상관없이 지갑을 열겠다는 '나심비' 풍조가 등장한 것이다. 소비가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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