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송영길의 ‘배신’과 빌 게이츠의 예지

2019-01-23 05:01
  • 글자크기 설정
 

황호택 아주경제 논설고문 겸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이며 인류의 건강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 세계 최대의 자선재단을 운영하는 빌 게이츠는 2008년 차세대 원자로를 개발하는 ‘테라파워(TerraPower)'를 설립했다. 환경적으로 안전하고 한번 연료를 넣으면 100년까지 사용가능한 원자로를 연구하는 이 회사의 비전은 대략 1기당 10억 달러의 비용으로 6000개의 원자로를 세워 전 인류에게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탈(脫)원전을 하면서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 등 신재생 에너지로 방향을 틀었지만, 빌 게이츠가 제시하는 비전은 거꾸로다. 게이츠는 “원자력이야말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하루 24시간 이용가능한 유일한 에너지원”이라면서 원자로가 갖고 있는 사고의 위험성은 기술혁신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원자력 마피아’라고 공격 받을 만한 발언을 IT 기업의 선각자가 한 것이다.
2011년 가까운 일본에서 벌어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일본,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원자력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후쿠시마 사고는 기본적으로 초대형 쓰나미가 초래한 재해였다. 후쿠시마 발전소는 5~7m 파고에 대비한 방파제를 갖췄으나 10m가 넘는 파도가 밀려왔다. 설상가상으로 지하에 설치된 비상 발전기가 침수돼 가동을 멈추었고 그 이후의 재앙은 잘 알려져 있다.

한국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비상 발전기를 고지대로 옮기고 방파제를 높였다. 내진 설계도 한층 강화했다. 한국은 일본 열도가 태평양에서 오는 쓰나미를 막아주고 있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에서 발생하는 쓰나미도 지리적 요인으로 한국에 도달하지 않는다. 그러나 후쿠시마의 공포로 추락한 원전의 사회적 수용성은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는 문재인 대통령을 정점으로 확고하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한철수 창원상의 회장이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관련 기업들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며 “신한울 3, 4호기 원전 건설을 재개해달라”고 요청하자, 문 대통령은 “정부의 에너지 정책 흐름이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단칼에 잘랐다.

이런 분위기에서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충심의 제안'은 이 정부의 핵심 정책인 탈원전을 비판하고 나섰다. 송 의원은 ‘충심의 제안’에서 “상대방의 의견이 옳으면 수긍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민주주의는 가능하다”고 했지만 인터넷에는 “배신자”, “반문(反文) 본색” 같은 비난이 줄을 잇고 있다. 송 의원이 밝힌 한국의 에너지원별 발전비중은 석탄화력이 43% 내외이고, LNG 화력 25%, 원자력발전 26%, 재생에너지가 4%이다. 석탄은 값이 싸지만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대량 배출하는 반환경 에너지원이다.

석탄 화력이 뿜어내는 미세먼지는 표 안 나게 살금살금 인간 수명을 단축시킨다. 중국도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소를 늘리면서 석탄발전소를 조기 폐쇄하는데, 한국은 중국과 반대로 간다.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정부도 최근 석탄화력 가동을 줄이고 LNG 발전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LNG는 발전비용이 석탄의 1.8배가량이고 미세먼지 발생량도 만만치 않다. 빌 게이츠는 재생에너지에 대해 “간헐적인 바람과 햇빛에 의존하는 발전은 바람이 불지 않고 태양빛이 없을 때에 대비해 거대한 배터리가 필요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출현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서는 공사 중단에 따른 매몰비용이 7000억원에 이르는 신한울 3, 4호기 공사를 시급히 재개하는 것이 맞는다. 신한울 3, 4호기 공사 재개로 죽어가는 원자력 생태계도 살릴 수 있다. 한국 원자력산업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에 원전을 수출하고 운용인력을 파견하면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원전 1기 수출은 자동차 250만대 수출과 맞먹는다. 그런데 이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를 수출하겠다면서 원자력 관련 위원회와 공공기관 자리를 반(反)원전 인사로 깔아놓았다.

한국의 겨울은 이제 3한(寒)4온(溫)이 아니라 3한4진(塵)이다. 춥다가 따뜻해지면 미세먼지가 걱정이다. 한국에서 4년가량 거주한 한 외국인은 겨울과 봄철 대기의 질이 너무 나빠 연말쯤에는 한국을 뜨고 싶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은 진보의 어젠다다. 편협한 집단사고에서 벗어나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감축하는 쪽으로 에너지 믹스를 과감히 전환할 때가 됐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