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이 12일 0시(현지시간)를 기점으로 22일째에 돌입, 미국 역사상 최장 기록을 깨뜨렸다. 조만간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셧다운 장기화로 인한 불만과 피해도 누적되고 있다.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 57억 달러(약 6조 3600억원)를 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장벽 예산을 한 푼도 내어줄 수 없다는 민주당의 갈등으로 지난해 22일부터 시작된 셧다운은 12일 빌 클린턴 임기 때 썼던 최장 기록인 21일을 넘어섰다.
문제는 양측이 여전히 한 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며 맞서고 있어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주말에도 양측은 협상 계획이 잡혀있지 않아 셧다운은 다음 주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 지대 시찰 영상을 게재하고 불법 밀입국자 관련 범죄 현황을 열거하면서 국경 장벽의 당위성을 부각시켰다. 그는 “지역구 민주당 상하원 의원들에게 연락해서 해결하라고 말하라”고 적으며 지지자들에게 직접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을 끝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계속해서 국가비상사태 선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의회의 승인이 없어도 국방부 예산과 병력을 장벽 건설에 활용할 수 있다. 다만 당장 꺼내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 시 소송에 나서겠다고 벼르고 있어 장기 법정 싸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공화당 내에서도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민주당은 장벽 건설을 결사 반대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에서 장벽 예산은 결코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민주당은 지난 3일 하원에서 셧다운을 끝낼 수 있는 예산안을 통과시켰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 때문에 상원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다며, 셧다운의 책임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고 있다.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은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이 초당적 예산안을 도출해야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백악관은 민주당과 협상 가능성을 열어놓았으나 셧다운이 더 길어질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신문은 백악관 소식통을 인용, 백악관 예산 집행부가 2월 말까지 셧다운이 계속될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 일부 자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29일 의회에서 예정된 국정연설에서 의회를 향해 셧다운의 책임을 물으며 질책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이 셧다운을 둘러싸고 네탓 공방을 벌이는 사이 셧다운으로 인한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셧다운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셧다운의 단초가 됐던 장벽 예산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CNBC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1일 셧다운으로 인한 손실을 약 36억 달러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셧다운이 앞으로 2주가량 더 이어진다면 손실은 6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밖에도 무디스는 셧다운 여파로 인해 1월 고용지표가 악화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치는 셧다운이 장기화될 경우 미국이 'AAA' 신용등급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셧다운 영향을 받는 80만 연방 공무원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11일은 셧다운 후 첫 월급날이었다. 필수 공무직 42만 명은 셧다운 후 계속 근무를 했으나 급여를 받지 못했다. 38만 명은 강제 무급 휴직 중이다. 매월 공과금을 지불하고 모기지 대출을 상환하던 80만 연방 공무원들의 가계 재정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셧다운 후 연방 공무원들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세 건의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의회는 이 같은 불만을 고려해 셧다운이 기간 동안 급여를 받지 못한 모든 연방 공무원에게 소급해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11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융기관에게 셧다운 영향을 받는 이들에 대한 유연한 대응을 당부하기도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연준은 11일 성명을 통해 “셧다운 영향을 받는 이들이 일시적으로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서 “기존 대출의 상환 조건 수정이나 신규 대출 지급” 등의 조치를 당부했다.
한편 12일 마이애미 국제공항은 보안요원 부족을 이유로 터미널 중 한 곳을 폐쇄하기로 했다. 공항 보안업무는 필수 공무직에 포함되지만 일을 해도 제때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되자 직원들의 병가 신청이 평소에 비해 2배나 늘어났다고 로이터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