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것 같고 살기는 고통스럽고 힘들 따름이다. 기도할 힘만 있어도 행복이라지만 그렇게 쉽게 행복은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지 못한다. 언제나 일을 할 때는 선택이 강요된다. 실수해도 괜찮은 선택도 있고,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 해서 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성공적인 선택을 하면 어떨까? 그것도 계속해서 말이다. 그런 선택의 뒤에는 지식을 넘은 지혜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에게 티베트의 문수보살과 같이 칼로 양단할 수 있을 정도의 정확한 지혜가 있다면 그로 인한 선택은 분명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 같다.
불교에서는 지혜를 반야라고 하고 반야지혜라고도 한다. 무지(無知)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야가 필요한 데 이 역시 쉽게 얻어지지 못한다. 그러기에 이런 지혜를 얻기 위해 우리는 자신을 위한 수행을 하고 또 남을 위한 기도를 한다. 자비의 종교와 베풂의 종교인 불교에서 나를 포함해 가족과 남 나아가 전혀 인연이 없는 중생들 모두에게 반야의 지혜를 얻어 행복하고 나아가 성불하게 하는 기도를 장려한다. 그런 기도하는 중생을 위해 우리 삶에 항상 함께하는 관세음보살을 권속으로 거느린 부처님이 계시다.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은 사찰에서 주로 극락전 등에 계시며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고자 용선(龍船)을 타고 고통의 바다를 건너와 이 생(生)의 중생을 맞이해 피안으로 가게 태워 준다.
지금까지 불화 등에 나타난 반야 용선은 그림 전체에 빽빽하게 찬 배에 아미타삼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과 지장보살, 비구니, 비구, 처사, 보사(補寺女), 동녀(童女), 동자(童子) 그리고 번을 잡고 인도하는 인로왕보살이 타고 있다. 하지만 치유의 아이콘인 “서윤희” 작가의 그림에는 구름, 산, 바다, 암석, 대지의 부분을 닮기도 하고 연운의 프랙탈의 사이 공간처럼 보이는 광활한 배경 안에 부처와 현세의 주위 인물들이 함께 극락정토를 향하는 반야용선을 타고 있다. 단순한 불경도상이 아닌 초현실과 현실의 화해를 통한 치유와 기원의 마음이 엿보인다. 이생에서의 좋지 않은 기억들을 떠나보내며 피안으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서 작가의 작품이 현실에서 출발하여 영적이고 초월적 작품으로 더 성숙한 예술로 한 단계 어쩌면 몇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모습과 매치된다.
“기억의 간격_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2017)는 작가 자신에게 큰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을 기억의 단편에서 띄엄띄엄 꺼내, 저주의 지옥이 아닌 피안의 <반야용선>에 태워 극락으로 인도하고 있다. 용서와 자비라는 마음의 여유를 보인다. 이렇듯 서윤희 작가는 박제화된 희노애락의 기억을 끄집어내 시공간을 초월한 작품 속에서 과거의 집착을 내려놓고 살아야 할 현재와 미래로의 화해와 치유로 함께 가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길을 표현하고 있다.
극락과 같은 행복한 삶을 오래된 미래로 끌고 이어가기 위한 서윤희 작가만의 행복공식은 늘 기억의 정화작업을 통해서 이뤄진다. 그 과정에서 서 작가는 자신만의 조제법으로 온갖 약초들을 끓여내고 상처 난 기억과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기억에 끼얹어 이 모든 시간을 치유한다. 오랜 시간 기억의 순간들을 성찰해 온 수행자와도 같은 그의 작업의 여정은 기억 속 감정과 욕심, 아픔을 내려놓고 비움으로써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과정이다. 연약한 한지는 삶의 모진 시간을 모두 견디고 단단해진 어머니의 손처럼, 작가의 인내로 더 질겨지고 강해져 아름다운 문양들을 베풂에 은은하면서도 강력하게 품고 또 뿜어낸다. 반야용선도에 그려진 세계 속에서 우리의 삶은 사라지지 않고 무한히 승화한다.
고통받는 현대인들에게 반야지혜란 치유하는 마음의 여유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여유를 서 작가는 언제나 ‘차 한 잔’에서 찾는다. 그가 염색에 사용한 첫 번째 조제약은 다름 아닌 홍차였다. 그리고 지금 인사동에 자리 잡은 스튜디오 ‘Memory Gap #F’를 찾는 이에게 서 작가는 언제나 녹차와 보이차를 내놓는다. 힐링의 차 한 잔은 멀리 찾아온 소중한 손님들에게 서방정토로 가는 티켓으로서 마음의 여유를 제공해준다.
차는 내고 비우고 채우고 나누는 과정에서 손님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나누고 그 빈자리에 여유와 기쁨 그리고 즐거움을 채워주는 팽주의 역할 역시 서 작가의 몫이다. 그렇게 일상이 함께하는 서 작가의 작업공간은 어느덧 아미타불의 반야용선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