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엽 인터뷰]베이징의 남북 남녀학생 동창생, 제 딸 얘깁니다

2018-12-10 17:24
  • 글자크기 설정

소설 '답방'속에서 궁금했던 몇 가지, 저자에게서 직접 들어보니...

 

송승엽 교수[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 송교수를 왜 죽였나요

"딸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빠, 왜 주인공을 죽게 했어요?' 사실 딸에게 해피엔딩을 약속했거든요. 그런데, 나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을, 답방 피격 때 총 맞아 숨지게 했으니...항의를 하는 거죠."

2018년에 나온 책 '답방'의 작가 송승엽(69)은 이렇게 말했다.

"그건 저도 궁금했던 일이었는데, 한반도에서 빚어낸 남남북녀의 결혼 당사자를 다 죽게한 건 좀 야속한 조치 아니었습니까?"

기자가 웃으면서 물었을 때, 함께 웃음을 지어보이던 작가는 다시 돌아온 정색(正色)으로 이런 말을 했다.

"남북 통일의 과정은 지극히 험난한 과정일 수 밖에 없죠.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이뤄지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만약에 희생이 필요하다면, 저같이 인생을 다 산 사람이 기꺼이 한 몸을 버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남남북녀 두 사람의 사랑은 결실을 맺었으니 그것으로 족한 거라고 봅니다. 두 사람이 진정 통일의 씨앗이 되도록, 희생으로 승화하는 장면을 생각한 것입니다. 두 사람은 영원히 동행하겠다고 맹세했으니, 그 값진 희생은 영원히 사는 길이 아닐지요."

잠시 숙연해졌다. 

# 제 딸이 북한학생 얘기를 많이 하더군요

- 소설 초반에 보면 베이징의 55중학에서 남한 소년과 북한소녀 간에 사랑이 나오는데, 이건 실제 경험한 일인지요?

"아, 그건 우리 큰 딸의 이야기입니다. 1991년 수교 이전에 코트라 베이징 주재 대표부 창설멤버로 갔을 때, 가족들과 함께 갔죠. 큰 딸은 중학교 1학년 때 베이징 55중학에 전학을 갔습니다. 소설 주인공은 고3이지만 딸은 중1이었죠. 한국 학생은 딸 혼자였고 처음으로 그 학교에서 북한학생들과 부딪치며 공부를 했죠. 당시 딸은 학교에 다녀온 뒤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놨죠. 그래서, 제가 나중에 쓸모 있을 것이니, 일기에 자세히 적어놓으라고 말했지요. 소설에 나오는 대화들은 대부분 그때 딸과 북한 학생들이 나눴던 것들이죠. 당시 베이징에서는 한국학생과 중국학생의 애정 이야기가 많이 나돌았죠. 이때 사실, 언젠가 딸이 전해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리라 생각을 했을 겁니다. 한국 학생과 북한 학생이 저마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남쪽과 북쪽으로 돌아가면, 그 예전 인연을 토대로 남북관계 개선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안이 떠올랐던 거죠. "

# "당신은 소설 쓸 자격이 없어요"

- 소설에 로맨스가 나오는데, 사모님이 혹시 컴플레인을 하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아유, 컴플레인을 하긴 하더군요. 당신은 소설 쓸 자격이 없어요, 이러더군요. 애정관계 묘사를 이렇게 못하다니...너무 무미건조하다고 말입니다. 그건 저의 한계인 걸 어떡합니까. ㅎㅎ"

- 저는 거꾸로 봤는데요. 이게 연애를 부각시키는 스토리라면 당연히 좀더 농도를 높일 수 있었겠지만, 전반적으로 묵직하고 드라이하게 가는데 거기에 실오라기 한 가닥같은 순수한 마음이 아주 서투른 듯한 기색으로 서로 오가니 도리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흐름을 살린 듯 합니다.

이 말에 구원병을 얻은 듯 송교수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게 다 의도인데..."

- 소설 속의 최병만 국정원장과 송지윤 교수는 한때 미국에서 같이 여행도 다닌 절친으로 나옵니다. 송승엽 교수님도 현 서훈 국정원장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압니다만?

"서원장과는 대학과 정보기관의 선후배인 것은 맞지만, 저건 그냥 가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서원장을 제가 존경하는 건 사실이지만, 같은 부서에서 직접 일한 적은 없으며, 지금도 개인적으로 연락하거나 그런 일은 없죠. 워낙 현직에서 바쁘신 분이니까..."

# 비무장지대를 인적(人的) 완충지대로

- 비무장 지대에 한방 의료시설과 요양시절을 갖추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건 논의가 있었던 얘긴가요?

"순수한 제 생각입니다. 지금 비무장지대는 유엔이 맡고 있죠. 이 지역을 비우면 완충장치가 없어지는 셈입니다. 남북한 협력이 잘 되면, 여기에 우리 민족의 의료체계인 한방 연구단지를 두면 특성화 단지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이를 기반으로 국제요양원을 만들면, 남북의 사람들 뿐 아니라 글로벌한 이용자들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경우, 국제적인 관심 속에 자연스럽게 완충장치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죠. 남북의 두뇌가 힘을 합쳐, 연구를 해나가면 세계적인 '의료 메카'가 될 수도 있겠지요."

- 비무장 지대 철수를 놓고 소설 속에서 북한 10군단의 불만이 대단하던데요? ㅎ

"그런 불만은 당연히 있을 겁니다. 그들은 총을 놓으면 일자리가 없어지니까 말입니다. 그보다 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야겠죠. 그래서 단순한 관광단지 개발보다는, 뭔가 의미있으면서도 확실한 인적(人的) 완충장치가 될 수 있는 기업단지로 조성하는 게 이 지역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청와대에서도 귀담아 들을 만한 얘기인듯 합니다. 소설과 현실을 넘나드는 귀한 얘기 잘 들었습니다. 


                                           이상국 논설실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