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로봇 때문에 인간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시선이 있다. 과연 그럴까. 고도로 발달하는 기술이 현재 우리가 맡고 있던 일자리를 없앤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반복적인 작업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신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없애는 것은 지금 현재의 일자리일 뿐이다. 기술 발달로 삶이 더욱 풍요롭게 되면, 우리는 더욱 높은 차원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게 된다. 새로운 욕구는 다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 일자리를 걱정하는 이들이 간과하는 것이 이 대목이다.
[2001년에 나온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에이아이(AI)'의 포스터.]
새로운 일자리는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인문테크놀로지 영역이다. 생소한 말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개념은 어렵지 않다. 인문학과 테크놀로지가 결합한 신개척 분야를 가리킨다. 인문학은 지금까지 모든 학문의 마더 사이언스(Mother Science, 모과학·母科學) 역할을 담당해왔다. 예를 들면, 컴퓨터 공학의 모과학은 수학이고 수학의 모체는 철학, 이런 식이다. 모과학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거기서 탄생하는 파생학문이나 응용기술은 인문학적 사유의 근간에서 멀어져 전문적이고 세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시작되면서 가상세계가 현실과 융합하기 시작했다. 이야기 속의 사물과 기술이던 자율자동차, 도깨비방망이, 염동력, 텔레파시, 마술의 집 등 신(神)의 능력들이 현실 속에 구현되기 시작했다. 이제 응용학문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상품개발을 위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힘들어졌다.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는 상품개발에는 학문의 모태인 인문학이 추동하는 테크놀로지가 필요해진 것이다. 이른바 인문학이 자본과 결합하는 인문테크놀로지의 시대다.
[2001년에 나온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에이아이(AI)'의 한 장면.]
가상과 실제의 융합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가 풍요로운 가치를 생성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이제는 상품에 가상의 스토리가 입혀지고, 이를 통해 고객은 더욱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즉, 파생실제를 실제보다 더욱 실제처럼 만들어야 주목받는다. 이 파생실제로 빚어지는 상품과 일자리의 규모는 지금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만큼 무궁무진하다.
1, 2차 산업혁명은 현실세계를 개혁했고, 3차 산업혁명은 가상세계를 만들었다. 4차 산업혁명은 현실과 가상이 융합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인류 번영과 분배를 꾀한다. 가상세계를 현실과 융합하도록 엔지니어링하는 것이 바로 인문테크놀로지이다. 지난 산업사회에서 소외됐던 인문학을 다시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는 강력한 반전(反轉)이다. 지난 산업혁명 끝자락에서 고용의 문 밖으로 내쫓겼던 인문학이 가상현실의 문으로 들어와 일자리 빅뱅을 일으킨다. 이것이, 새로운 혁명에 우리가 진정 흥분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