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중국의 꿈' 가로막는 '미국의 벽'…'중국제조 2025'의 실체

2018-11-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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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中 '첨단굴기' 무역전쟁 핵심 자인

中 명운 건 생존 전략, 양보 불가능한 영역

곳곳서 성과 "위협적", 갈길 멀다 회의론도

[그래픽=이재호 기자]


중국이 산업 고도화 전략인 '중국제조 2025'를 포기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장에 대한 진위 논란이 뜨겁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중국이 세계 경제의 패권을 차지한다는 의미의 '중국제조 2025'는 매우 모욕적"이라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우리는 대화로 문제를 풀기를 원하지만 미국도 중국이 택한 발전의 길과 정당한 이익 추구를 존중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중국 경제의 지속 발전을 위한 첨단산업 육성은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함의가 담겨 있다.

두 정상 간의 설전을 지켜본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국가의 핵심 정책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근거를 갖고 얘기했는지 알 수 없지만 중국이 포기했다고 볼 수 있는 징후는 없는 것 같다"고 회의적으로 분석했다.

재미있는 전언이 있다. 무역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 5월 미국이 140개 항목으로 구성된 요구안을 중국 측에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40%는 단기간 내에 처리할 수 있고 40%는 시간이 걸리지만 이행 가능한 사안이며 나머지 20%는 중국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소식통은 "미·중 간 협상을 통해 시간이 걸리는 것은 중국이 조정을 시도하고 이행 불가능한 항목 중 일부라도 받아들이는 식으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며 "가장 어려운 문제가 '중국제조 2025'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관계가 어떻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중국제조 2025'가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한 주요 원인이라는 게 확인됐다.

중국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중국제조 2025'는 어떤 프로젝트인가. 그 진전 속도가 어떻길래 미국이 체면까지 내던진 채 대놓고 견제에 나선 것일까.

◆선택의 여지 없는 中, 견제 나선 美

'중국제조 2025'는 지난 2015년 중국 국무원이 기존 제조업의 체질 개선과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내놓은 경제 발전 전략이다.

향후 30년간 10년 단위로 3단계에 걸쳐 중국 제조업의 고도화를 추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단계(2015~2025년)로 미국·독일·일본·한국 등과 같은 글로벌 제조 강국 대열에 진입하는 게 우선 과제다.

2단계(2026~2035년)로 글로벌 제조 강국 내 중간 수준을 확보하고 3단계(2036~2045년)에 접어들면 제조 강국 중 최선두로 나서는 게 목표다.

차세대 정보기술(IT)과 항공우주, 선박·철도·전기차, 로봇 등 10대 전략산업도 발표했다. 특히 2025년까지 핵심 기술과 부품, 소재의 자급화를 이루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중국 입장에서 산업 고도화 추진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다. 시진핑 체제 들어 7%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깨진 데다 노동 임금이 가파르게 올라 중국 내 생산기지가 동남아시아로 빠르게 이전되고 있다.

'세계의 공장' 지위가 위협받고 있는 만큼 첨단산업을 육성해 새 먹거리를 창출하는 게 시급해진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키우려는 신(新) 성장동력이 미국 등 선진국들도 군침을 흘리고 있는 분야라는 점이다.

여기에 중국이 미국까지 제치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서방 세계의 심기를 건드렸다.

미국도 글로벌 경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의 굴기를 막는 게 중요해졌다.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최전선은 반도체, 美 공세에 답답한 中

전 세계인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은 수많은 반도체의 집합체다.

저장장치인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등 시스템반도체가 다양하게 사용된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자국 시장을 석권한 데 이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2위 화웨이를 필두로 과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자급률은 10%대 초반에 그친다.

스마트폰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퀄컴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배만 불려주는 형국이다.

다른 첨단 제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핵심 기술과 부품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단순 조립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이 반도체 자급 달성을 목표로 설정한 배경이다. 국유 기업인 푸젠진화와 허페이창신이 D램, 칭화유니 계열의 창장메모리(YMTC)가 낸드플래시 양산 임무를 맡았다.

중국은 2014년 이후 정부 주도로 50조원 규모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했다. 언뜻 엄청난 금액으로 보이지만 삼성전자의 경우 최신 생산라인 1기를 짓는데 12조~15조원 정도를 투자한다. 자금력 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한다.

이런 가운데 미국 상무부가 푸젠진화에 대해 '기술 훔치기' 의혹을 제기하며 제재를 가했다.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했는데,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내년 D램 양산을 준비하던 푸젠진화는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됐다. 지난 4월 중국 2위의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ZTE가 미국의 제재로 도산 위기까지 내몰렸던 기억의 반복이다.

미국과 한국 등이 장악한 기존 반도체 시장에서 반전을 이루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판단은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아직 시장 판도가 유동적인 분야에 집중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갓 걸음마를 뗀 중국 국유 기업과 달리 알리바바와 텐센트, 바이두, 화웨이 등 민영 기업은 이미 확보한 기술 역량을 토대로 AI반도체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 시장 역시 최대 경쟁자는 인텔과 IBM, 구글, 애플, 퀄컴 등 미국 기업들이다. 중국 기업이 정부의 지원 없이 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압박에도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를 축소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이다.

◆'퍼스트 무버' 꿈꾸는 中, 현실 가능성은?

중국 개혁개방의 심장으로 불리는 선전은 연말까지 시내 2만여대 택시를 모두 전기차로 교체한다. 버스는 모두 전기차로 교체됐다. 세계 최초로 대중교통 수단 전량을 친환경 전기차로 운영하는 도시가 될 날이 임박했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이 됐다. 연간 100만대 이상이 팔린다. BYD(전기차 제조)와 CATL(전기차 배터리 제조) 등 세계적 수준의 기업도 등장했다.

전기차 산업 육성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삼성·LG 등 외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은 보조 대상에서 제외하는 모순된 정책까지 동원해 얻어낸 성과다.

미국 CNN은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을 보유한 유럽이 (전기차 등) 미래 경쟁에서 중국에 뒤지고 있다"며 "중국이 이 산업의 원동력이며 유럽이 따라잡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자신감을 갖게 된 중국은 오는 2020년 하반기께 전기차 보조금 지원을 중단할 예정이다.

BYD처럼 선전에 본사를 둔 DJI는 세계 최초로 일체형 드론을 선보인 기업이다. 글로벌 드론 시장의 70%를 장악한 DJI의 지난해 매출은 180억 위안(약 2조9400억원)으로 추산된다.

DJI는 중국 기업으로는 드물게 스스로 시장을 창출하고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제조 2025'의 액션 플랜인 10대 전략산업 육성책의 효과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차상균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원장은 "빅데이터와 AI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로 모든 산업과 학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중국의 빅데이터와 AI 경쟁력은 미국도 두려워할 정도"라고 말했다.

차 원장은 "공산당을 중심으로 민·관·학이 한몸처럼 움직이며 산업 발전을 이끄는 구조가 막강하다"며 경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느낀 위기감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를 넘어 퍼스트 무버를 꿈꾸는 중국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항공 굴기'로 확인한 中 애매한 위치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시 주석은 41조원 규모의 보잉 항공기 300대를 구매하기로 약속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엄지를 치켜들었다.

당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와 달리 미국은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를 통해 중국을 "미국의 안보와 주권을 침해하는 경제적 경쟁자"로 규정하기 직전이었다.

중국도 '중국제조 2025'에 따라 자국 내 민간 항공기 시장의 10%, 세계 소형 제트기 시장의 10~20%를 차지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중이었다.

최근 중국은 광둥성 주하이에서 열린 '2018 주하이 에어쇼'에서 독자 개발한 스텔스 전투기 '젠(殲·J)-20'이 미사일을 싣고 비행하는 모습을 최초로 공개했다.

개방된 무장창에는 미사일 4기가 실렸고, 양쪽 측면에 각각 미사일 1기가 탑재됐다.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는 미국 스텔스 전투기 F-22와 F-35도 무장창을 개방한 채 비행한 바 있다.

중국의 최신예 전투기가 미국 전투기에 뒤지지 않는 성능을 갖췄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조치였지만, 의도와 달리 중국 전문가들 조차도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의 제트 엔진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가 개방 중인 174석 규모의 여객기 C919의 사례도 유사하다. 세계 최대 규모로 성장한 항공기 내수 시장을 겨냥한 프로젝트지만 올 상반기 기체 결함이 발견된 이후 시험 비행이 중단된 상태다.

무역전쟁 발발 이후 GE 등 미국 기업들과 기술 협력을 도모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항공기 관련 기술을 탈취하려던 중국인 산업스파이 10명이 미국 사법당국에 의해 무더기로 기소되는 사건까지 터졌다.

중국 항공기 산업의 현실은 '첨단 굴기'와 '중국제조 2025'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중국이 발을 딛고 있는 곳은 경제 구조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되는 과정의 그 어디 혹은 제조 대국에서 제조 강국으로 넘어가는 여정의 그 어디일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더 앞으로 나아가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태세다. 중국은 현 시점의 애매한 위치에서 벗어나 도약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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