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강해지던 주요국의 동반 성장세가 반전 조짐을 보이면서 침체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성장둔화 위기에 처한 지 오래인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동안 나홀로 성장세를 뽐낸 미국은 물론 가까스로 성장궤도로 복귀한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경제도 추진력을 잃고 있다.
미국발 무역전쟁,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들의 통화긴축 바람 등 장기적인 악재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처럼 강해진 동반 성장세에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다.
중국 경제가 흔들리면서 아시아지역 다른 신흥국 경제에도 비상이 걸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일제히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제조업 경기가 위축 국면에 진입했다는 의미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튄 결과다.
유로존 경제도 지난 3분기에 전 분기 대비 0.2% 성장하는 데 그쳤다. 한 분기 만에 성장률이 반 토막 났다. 독일과 이탈리아 등 주요국의 부진 탓이다. 경기회복세가 제법 탄탄해졌다는 판단 아래 올해 말 양적완화(자산을 매입해 시중에 돈을 푸는 경기부양책)를 중단하기로 한 유럽중앙은행(ECB)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세계 경제의 급작스러운 부침에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도 극적인 반전을 보였다. IMF는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전 세계가 2010년 이후 가장 강력한 동반 성장세를 누리고 있다며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3.9%로 제시했다. 지난해 10월 보고서에서 제시한 수치보다 0.2%포인트씩 높여 잡은 것이다.
IMF는 지난 7월 보고서에서도 같은 전망치를 고수했지만, 10월에는 이를 각각 3.7%로 하향조정했다. IMF가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건 2016년 7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IMF는 미·중 무역전쟁, 예상보다 급격한 연준의 금리인상 등을 문제삼았다.
블룸버그는 미국이 하강기류에 얼마나 저항하며 세계 경제를 떠받칠지가 관건이지만, 전문가들의 전망은 비관적이라고 전했다. 통신은 미국의 성장세가 보호무역, 고금리, 감세효과 약화 등의 여파로 내년에 시들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성장률은 지난 3분기 3.5%(전분기 대비 연율)로 2분기의 4.2%에 한참 못 미쳤다. 다만 금융위기 이후 성장률이 대개 2%안팎이었던 데 비하면, 올 1~2분기 성장세는 10년 만에 가장 강력했다.
블룸버그는 IHS마킷이 내는 주요국 PMI 역시 지난달 일제히 하향 추세를 나타냈다고 지적했다. 중국과 유로존의 PMI는 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앨런 러스킨 도이체방크 외환리서치 부문 글로벌 공동 책임자는 "최근 지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성장 사이클의 전성기가 이미 지났다는 우리의 견해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세계 경제의 반전이 금융시장에 공포감을 더해 연준을 비롯한 중앙은행을 압박할 수 있다고 봤다. 연준이 현재로서는 통화긴축 고삐를 풀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경기부양 기조에서 이탈하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연준이 금리인상 속도를 당초 예상보다 늦추면, 채무 부담이 큰 기업과 신흥시장이 부담을 덜 수 있다.
톰 올릭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무역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 중국이 성장둔화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할지 등이 내년 세계 경제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연준의 금리인상, 미·중 무역전쟁, 중국의 성장둔화 등 악재가 맞물리면서 글로벌 증시는 지난달 혹독한 홍역을 치렀다. 한 달 새 투매로 증발한 돈이 8조 달러에 이른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글로벌 증시가 20% 더 떨어지면 2019~2020년 선진국의 국내총생산(GDP) 평균치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선진국 경기가 성장둔화를 넘어 위축세로 완전히 돌아설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