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당시 정갑손(1396~1451)은 전라도와 함경도 관찰사, 대사헌을 지냈다. 그는 자신이 부재중에 치러진 향시(鄕試)에서 아들이 합격한 것을 알고 분노했다. 정갑손은 “내 아들이 아직 공부가 부족한 것을 잘 안다. 그런데 내게 아부하기 위해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며 해당 관리를 파면했다. 그리고 아들 이름을 지웠다. 그 아들은 합당한 실력을 갖췄지만 정갑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들도 흔연하게 아버지 결정에 따랐다. 고용 세습 의혹으로 시끄러운 와중에 정갑손을 떠올린다. 그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친다. 나아가 사회지도층이라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일깨운다. 끼리끼리 어깨를 두르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대한민국에 대한 가르침이다.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은 22일 국정조사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비리는 현대판 ‘음서제’나 다름없다. 올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된 1285명 가운데 108명이 재직 중인 직원 자녀와 친인척으로 알려진다. 이 가운데 3급 이상 고위직 자녀와 친인척 비율은 24%에 달한다.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제기된다. 지금까지 거론된 기관만 가스공사, 도로공사, 국립공원관리공단,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13곳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국민들 공분은 극에 달했다.
기업에 다니는 선후배들이 만날 때마다 빼놓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소외와 차별이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 했던 서러운 개인사다. 특정지역 출신, 특정대학 졸업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겪은 경험담이다. 부당한 차별과 인사 불이익이 주를 이룬다. 나와 지인들은 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 학교를 다녔다. 1980년대 대학가는 연일 매캐한 최루가스가 교정을 덮고 깨진 벽돌이 날아다녔다. 강의실은 텅 비고 결강은 일상적이었다. 그래도 취업시장은 호황이었다. 지금처럼 청년실업이 심각하지 않았다. 3저(低, 유가·환율·금리) 덕분이다.
무엇보다 공기업 입사 과정은 공정했다. 지방 국립대학 출신도 노력하면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에도 대기업은 입사 희망 1순위였다. 그러나 지방대생에게는 먼 길이었다. 대기업 추천장이 배정되지 않거나 극소수였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우회한 돌파구가 공기업이었다. 대기업과 달리 공기업은 100% 시험 성적으로 뽑았다. 그래서 학벌에 기대지 않더라도 실력만 있으면 입사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지방대생들은 대기업보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에 더 들어갔다. 상당수는 임원까지 올랐다. 공정한 경쟁만 보장된다면 학벌도, 배경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최근 서울교통공사 고용세습 의혹은 이러한 희망 사다리를 접게 한다.
어떤 복지보다 앞서는 게 일자리다. 한창 일해야 할 청년들이 그늘진 얼굴로 거리를 배회하는 사회는 우울하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 인식은 안일하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아니면 말고 식 보도를 갖고 국정조사를 할 수 없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한 다음 필요하다면 응하겠다”고 거리를 두었다. 박원순 시장은 “을과 을 싸움을 조장하고 있다”고 했다. 무책임하며 국민 정서와 동떨어졌다. 이미 고용 승계 사례가 봇물처럼 쏟아지는데 궁색하다. 오히려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정조사는 물론이고 전수조사 대상을 공공기관 전반으로 넓히는 게 맞는다. 그것이 공정과 정의를 지향하는 집권여당으로서 합당한 모습이다.
덧붙여 국정조사는 정치 선전도구가 아니다. 그런데 한국당은 정쟁 수단으로 삼고 있다. ‘약탈’, ‘탈취’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정권 차원의 비리로 몰아가고 있다. 자신들 집권 시절부터 누적된 적폐를 간과한 행태다. 장외 시위를 벌이고 남 탓하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그 의도가 불순하다. 청년들 좌절과 분노, 절망을 정쟁에 악용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야를 떠나 부끄러움을 알고 공정한 경쟁 마당을 만들기 위해 고민할 때다. 적어도 힘없는 부모를 뒀다는 이유로 경쟁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설움은 없애야 한다. 흙 수저든 금 수저든 공정한 기회는 상식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평등이고 공정이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정의라고 부른다. 정갑손이 주는 교훈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