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즐거움] 일본전산, 밥 빨리 먹는 직원 뽑는 괴물회사의 비밀

2018-10-2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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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 무식한(?) 경영이 그토록 갈채 받는가, 나가모리 경영신화

# 인생패배자를 기업 재건의 핵심으로 만든 사건

최근 '일본전산의 독한 경영수업'(더퀘스트, 2018년 8월출간)이란 책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을 쓴 분은 닛산자동차에서 근무하다가 1998년 일본전산에 스카우트 되어 M&A 담당 임원으로 활약했던 가와가쓰 노리아키다. 2007년에 단토쓰컨설팅을 창업했으니 일본전산 재직 기간은 9년 정도이다. 이 책은 일본전산 창업자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와 함께 일하며 생생하게 목격하고 체험했던 이 '괴물회사'의 풍경을 담아냈다.
 

[나가모리 시게노부 일본전산 창업자.]


노리아키의 열광은, 그가 막 채용되었을 때의 놀라움으로부터 시작된다. 닛산자동차에서 근무하며 쇄신을 주장했다가 찍혀서 시간만 보내려고 작심하고 있던 이 분은, 남아프리카지사로 전근을 간 상태에서 일본전산에 전격 채용된다.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은, 이 인생패배자를 어떻게 일본전산의 재건 영웅으로 만들었는가. 그것이 독한 경영수업의 내용일 것이다.

# 소설보다 찡한 기업스토리 '일본전산 이야기'

나는 저 책을 읽는 대신에, 2009년에 출간된 '일본전산 이야기'(쌤앤파커스)를 택했다. 일본대학교를 나온 김성호라는 분이 쓴 것으로 '일본전산 바람'을 일으킨 원조격이다. 그는 나가모리 시게노부가 쓴 여러 권의 책(기적의 인재육성법,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 정열 열의 집념의 경영)을 읽었고, 일본경제신문이 펴낸 일본전산에 관한 책도 섭렵했고, 일본 언론들의 각종 기사와 일본전산 사내자료까지 참고해서 글을 썼다.

이 책은 사람을 실실 웃게 만들다가 어느 순간 코끝이 찡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을 뺨치는 이야기들을 곳곳에 숨겨두고 있다. 내 마음을 건드린 몇 가지를 추려본다.

먼저, 이 회사의 희한한 채용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전산은 1973년에 창업해서 2년뒤인 1975년 첫 공채를 했다. 취업 설명회 공고를 내고 설마 20명은 오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초밥 20인분을 준비한다. 설명회 시간인 9시를 세 시간 넘긴 뒤 나가모리 사장은, 직원들에게 "이거 우리나 먹자"고 초밥 파티를 한다. 이후 몇 차례 설명회도 똑 같은 풍경이었다. 다른 기업들이 공채를 다 마칠 무렵에 연 설명회에서 대여섯명의 졸업예정자들이 들어와 앉는다. 한 눈에 보기에도 '어느 기업도 뽑지 않게 생긴' 친구들.
 

[나가모리 경영신화를 다룬 '일본전산 이야기']


# 밥 빨리 먹는 순서대로 33명을 뽑다

나가모리 사장은 인재를 구하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줄 몰랐다며 자탄하고 있었는데, 장인이 다가와 이런 말을 한다. "머리가 안좋아도 일처리를 똑부러지게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네. 밥 빨리 먹고 용변 빨리 보고 빨리 씻는사람을 뽑아보게." 나가모리는 이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뜨였다고 한다. 

1978년 일본전산 면접 공고엔 "응시자에게 점심을 제공한다"는 말이 들어있었다. 이 말 때문인지 지원자가 160명이나 몰렸다. 면접장에 준비된 도시락에는 말린 오징어와 멸치볶음, 콩자반 같은 반찬 밖에 없었다. 응시자들은 투덜댔다. "돈 좀 아껴보겠다고 이런 부실한 음식을..." 식사가 끝난 뒤 면접을 기다렸던 응시자들은 깜짝 놀랐다. 면접이 끝났다고 돌아가라는 것이다.

회사는, 밥을 빨리 먹은 사람 순서대로, 직원을 채용한다. 10분 내에 밥을 먹은 33명이 합격됐다. 이런 희한한 입사전형에 지역언론들이 조롱과 비판을 퍼붓기도 한다. 나가모리 사장은 당당하게 이 시험의 의미를 설명한다.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은 소화력도 좋고 일처리도 빠르다."

그외에도 화장실청소 시험, 큰소리로 말하기 시험, 오래달리기 시험으로 사람을 뽑았다. 일본전산은 유능한 사람을 뽑지 않았다. 그들에게 강한 놈이 아니라 빠른 놈이 이긴다고 가르쳤다. 일본전산은 쉬운 일을 하지 않는다. 요구사항이 많고 까다로운 일에 관심을 가졌다.

# 모터 크기를 석달내 절반으로 줄이라고?

유가폭등으로 세계경제가 어려웠던 1973년에 시작한 일본전산은 모터 전문기업으로 출발했다. 안그래도 시장이 쪼그라드는 판에 신생사의 모터를 거래할 기업이 없었다.

하도 들이대며 '고민거리를 다 해결해주겠다'고 덤비니 한 기업의 담당자가 "정 그렇다면 우리 연구소에 한번 가보라, 거기선 시제품 만들려고 밤새 실험하고 있을테니 일거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나가모리 사장이 그곳에 갔더니, 연구소의 담당자가 대뜸 말한다. "이 모터의 크기를 석달내로 반으로 줄여달라, 그럼 거래를 하겠다." 그는 "반으로 줄이라고요? 알겠습니다."라고 꾸벅 절하고 나왔다.

첫 연구에 전직원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터 절반 줄이기에 매달린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일리 없었다. 고심참담 끝에 15% 정도를 줄였지만 절반은 어림없었다. 미친 듯이 일했지만 시간만 촉박해왔다. 나가모리 사장은 이러다가 직원들만 다 망가지겠다고 생각했다. 연구소 담당자를 찾아갔다.

못하겠다고 말할 심산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복도에서 담당자를 만난다. "나가모리 사장, 웬일인가? 일전에 부탁한 것 못하겠다고 찾아온 것 아닌가? 잘 생각했어. 사실 더 큰 다른 회사들도 두 손 든 거야. 자네들도 그렇지?"
 

[나가모리 일본전산 창업자.]



# 기뻐해라, 딴 놈들은 다 나가떨어졌다

나가모리 사장의 입에선 다른 말이 나왔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중간에 포기할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지금 중간보고를 하러 온 거예요." 이렇게 얼버무리고는 돌아온다. 직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기뻐해라. 딴 놈들은 다 나가떨어졌대. 우리만 남은 거야. 승산이 더 높아졌어. 아직 15일 남았으니 한번 끝까지 해보자."

다시 그들은 미친 듯 모터를 줄이고 줄였으나, 약속한 절반은 나오지 않았다. 겨우 18%를 줄였을 뿐이었다. 줄인 모터를 들고, 담당자를 찾아가 애썼지만 목표를 채우지 못한 것을 사과했다. 그때 담당자의 말.

"18%라고? 이건 기적이야. 석달새 18%를 줄였다니, 기대도 안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발주를 받는다. 일본전산이 대기업과 이룬 첫 거래였다. 이 대목에서 나는 울컥하고 말았다.

# 납품사 '일본전산' 2년차 사원이 전화를 받다

길어졌지만 하나만 더 얘기하고 싶다.

1990년대 중반, 대기업 공장에서 생산라인이 멈춰섰다. 원인이 모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났고, 담당직원이 모터납품사에 전화를 건다. 가장 모터 납품이 많던 대기업에 전화를 했더니, "우리 모터엔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없다, 다시 차근차근 점검해보라"고 훈수를 뒀다. 두번째 회사.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느냐"고 묻더니, "오늘은 금요일이라 지금 출발해도 늦으니, 월요일 출발하면 점심 무렵에 도착할 것 같다"고 말한다. 월요일까지 공장을 방치할 수 없었던 담당자는, 모터 겨우 몇개를 넣은 회사인 일본전산에 전화를 한다.

2년차 사원이 전화를 받았다. 담당자는 사원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뚝 끊어졌다. "이런, 예의도 없는 회사라니..."그는 화가 나서 다시 전화를 했지만 다시 받지도 않았다. 일본전산 직원의 전화가 끊어진 것은, 상사에게 돌리려다 실수로 끊긴 것이었다.

# 두 시간만에 현장 달려온 저 사원

이날 공장 가동중단 사태에 대기업에선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로선 아무런 대책이 없으니, 월요일날 공장을 재개하자는 결론을 내고 있을 때였다. 아까 통화했던 일본전산 직원이 현장에 나타난다. 전화가 끊긴 지 두 시간만에 헐레벌떡 달려온 것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일본전산의 연구담당자, 납품경력이 있는 선배, 설계담당자, 시제품 담당자 등과 계속 통화를 했다. 메모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팩스도 보냈다. 일본전산 직원의 귀와 입을 통해 노하우가 전달됐고 대기업의 기술진들이 그것을 조치하면서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놀라운 순간이었다. 이 일본전산 직원은 이튿날까지 그 현장을 지키며 모터 교체 등을 지켜봤다.

사태가 끝난 토요일 오전, 대기업 사장이 현장에 와서 거기 서있던 일본전산 직원을 불러 이렇게 말한다. "모터 잔량을 일본전산 신제품으로 교체해주세요." 이 회사는 이후 일본전산 모터만을 쓰게 된다.

저 2년차 직원은, 일본전산이 만든 것일까. 아니면, 그의 내재된 열정이었을까. 그는 밥 빨리 먹기에서 뽑힌 어느 스피드맨이었을까. 이 장면을 잊지 못하겠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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