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홍콩 정부가 대규모 인공섬 건설 계획을 발표하자 이에 반대하는 1만여명의 홍콩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지난 10일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연례 시정보고에서 ‘란타우 투모로우 비전(Lantau Tomorrow Vision)’이라는 이름의 인공섬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홍콩 정부는 란타우섬(大嶼山, Lantau Island) 북쪽 해안을 간척해 약 1700ha 규모의 인공 섬을 건설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홍콩 정부의 인공섬 계획에 많은 시민은 “인공섬은 홍콩의 미래를 집어삼킬 ‘하얀 코끼리’가 될 것”이라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민들이 정부 계획에 이처럼 분노를 쏟아내는 데에는 지리, 경제, 환경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먼저 인공섬이 건설될 란타우섬 주변 해안은 갯벌이 거의 없고 수심이 깊어 간척에 적합하지 않다.
지난 1998년 란타우섬 북부의 암초와 작은 섬 사이를 메워 건설된 첵랍콕(Chek Lap Kok) 국제공항 역시 당시 금액으로 20억 달러(약 2조2700억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이 들었다.
홍콩 정부는 예비비의 절반에 달하는 5000억 홍콩달러가 인공섬 계획에 투입될 것이라 발표했지만, 학계에서는 정부 예측의 2배인 최대 1조 홍콩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했다. 말 그대로 정부의 ‘곳간’을 모두 털어 인공섬을 건설하게 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란타우섬은 자연경관이 잘 보존돼 있고 멸종 위기종인 분홍돌고래와 야생 물소 등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지역으로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번 시위를 주최한 ‘란타우 수호연맹(守護大嶼聯盟)’ 측은 성명을 통해 “인공섬 계획은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의 영향을 무시하고 있다”면서 “주변 자연환경을 파괴해 홍콩 시민들의 미래를 희생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맹 측은 아울러 “홍콩의 토지 부족 문제는 기본적으로 부동산이 부유층에게 집중돼 불균형적으로 분배된 것이 원인”이라며 “외곽 지역에 있는 재활용품 처리장이나 유휴지, 농경지 등 개발을 통해 토지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위대는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Causeway Bay)부터 애드미럴티(Admiralty)에 위치한 정부 청사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홍콩 언론들은 약 1만여명(경찰 추산 최고 5800명)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보도했다.
정치적 이슈에 대체로 무관심한 홍콩 시민들이 정부가 간척 계획을 발표한 지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대규모 시위에 참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시민들이 캐리 람 행정장관의 독선적인 정부 운영에 경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초이치켕(蔡子强) 중문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부교수는 애플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홍콩 독립이나 행정장관 직선제 등 정치 민주화 관련 이슈가 중국 중앙 정부에 의해 철저히 봉쇄된 현 상황에서 인공섬 건설 문제는 정치 민주화와 달리 중앙 정부가 강제적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할만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시민들 자신들의 힘으로 정책의 바꿀 수 있기를 희망하며 시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초이 부교수는 또한 “(간척 문제는) 다음 세대 홍콩 시민들의 복지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즉각적으로 시위에 참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콩 정부는 아직 정책 추진에 대해 완고한 태도를 고수 중이다. 홍콩 정부는 올해 4월 ‘토지 공급에 대한 태스크포스’를 조직해 5개월간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토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자문을 실시했고, 조사 결과를 종합한 최종 보고서가 11월경 정부에 제출될 예정이었다.
그런데도 이처럼 급작스럽게 이번 인공섬 건설 계획을 발표한 것은 캐리 람 장관, 나아가 중국 중앙 정부의 ‘복심(腹心)’이 이미 인공 섬 건설 쪽으로 기운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는 “(인공섬 문제에 대한) 사회 각계의 관심을 이해한다”면서도 “생태적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곳을 골라 간척하겠다”며 “2025년까지 먼저 1000ha 규모의 인공섬 건설을 완료하는 것이 1차 목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