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정치인의 말과 행동

2018-09-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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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


한 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제목의 TV시사 프로그램이 화제였다. 군사 정권 시절 국가폭력 때문에 침묵을 강요당해야 했던 이들이 뒤늦게 당시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프로그램 내용은 아득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떠올린 이유가 있다. 엊그제 화제를 몰고 온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연설을 듣고 나서다. 필자도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장실 정무 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년을 회상해본다. 당시는 내 목소리가 없었다. 비서관(참모)는 자기를 드러내서는 안 되는 자리이다. 단지 보좌할 뿐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가슴에만 쌓아두었다. 더구나 국회의장은 중립 의무를 지닌 무소속이다. 그런 국회의장을 보좌하기에 눈멀고 귀먹고 말을 잃는 게 당연했다.

이제는 국회의장 비서관이란 족쇄가 풀렸다. 김성태 의원이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이후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열리는 원내 지도부 정례회동에서다. 협치를 중시한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은 정례회동을 제안했다. 자칫하면 야당 성토장이 된다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정세균 의장은 관철시켰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도 하고, 밥도 먹어야 거리를 좁힐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기억하기엔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언론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의장실 복도까지 꽉 채운 취재 열기는 새로운 한 주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김성태 원내대표의 어깃장은 한 주도 거르지 않았다. 기자들에게는 좋은 소재였겠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었다.
야당 원내대표로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국회운영에 쓴 소리를 하는 건 당연하다. 그게 야당이 존재하는 이유다. 하지만 지나쳤다. 때로는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만큼 김 대표의 언사는 화려했다. 어느 정권이나 집권하게 되면 야당에 대해 소홀하기 마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던 한 분 한 분이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했지만 야당 입장에서 서운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불과 2년여 전에 자신들이 망친 나라를 복원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서운할 일도 아니다. 비공개 회의로 전환되면 김 대표의 억지는 한층 강도를 더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와 대화는 논의라기보다는 일방적이었다. 사사건건 대립하고 비아냥으로 일관했다.

문제는 말의 품격이다. 나라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자, 제 1야당 원내대표로서 품격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켜본 기자들은 ‘초딩’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수준과 같은 급이다. 언젠가는 국회사무처 직원이 자신을 무시하고 인사도 하지 않는다며 회의 내내 불만을 늘어놓았다. 사무총장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또 해당 직원을 문책하라고 종용했다. 정당 원내대표 회의 자리인지 푸념자리인지 헷갈렸다. 아마 언론인들이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행태다. 그러나 비공개를 방패삼아 안건과는 무관한 일로 그날 회의를 망쳤다. 아마 상식적인 정치인이라면 설령 그런 일이 있어도 감췄을 것이다. 오죽하면 무시당했을까 싶은 반응이 돌아올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그 같은 언행을 숱하게 지켜봤기에 엊그제 대표연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김 대표는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하는데 대부분을 할애했다. 거기까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하면서 독설로 일관했다. 국민을 현혹하는 보이스피싱, 세금 뺑소니, 문워킹, 소득주도성장의 굿판, 세금중독 적폐 등 막말로 수를 놓았다. 김 대표는 스스로 연설에 취해 쾌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나아가 국민들로부터 환호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싸늘하다. 아니 경멸에 가깝다. 대한민국 제1야당 원내대표 연설이라기보다는 오염된 언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웬만해서는 얼굴을 붉히지 않는 정세균 의원이 나섰을까싶다. 정 의원은 “내 귀를 의심했다. 저잣거리에서 토해내는 울분에 찬 성토인지 혼란스러웠다”며 “정치인의 언어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고 훈수했다.

정치인에게 말은 무기다. 정치인은 말로 상대를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설득과 공감은 품위 있는 언어가 뒷받침될 때 힘을 발휘한다. 저주와 증오의 언어로는 상대를 설득시킬 수 없다. 공감대를 끌어 내지도 못한다. 독설과 증오는 배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 자신도 상처내고 상대는 마음의 문을 닫게 한다. 국회의장실에 근무할 때 연설문과 메시지를 작성했다. 그 때마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느라 파김치가 됐다. 그래도 느슨할 수 없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듬고 고쳐 쓰기를 반복했다. 국회의장이라고 해서 하고 싶은 말이 없을까. 하지만 불필요한 말로 상대를 자극하거나 판을 깨기보다는 배려하는 언어를 택하는 게 현명하다. 제1야당 원내대표 연설문도 그래야 옳다. 자극적이며 유치한 말보다는 품위 있는 언어를 고민해야 한다.

원내대표 연설은 국민을 상대로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수권정당으로서 능력을 확인받고 공감대를 얻는 자리다. 그러나 김성태 대표는 소중한 기회를 발로 찼다. 오히려 자신과 자유한국당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침몰하는 보수진영과 자유한국당에 김 대표는 도끼질을한 셈이다. 그런데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내게 용비어천가를 듣고 싶은 것이냐”고 반박한다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만년 야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서 김성태 의원은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 그래야 이제는 말 할 수 있다는 어줍지 않은 회고도 없을 것이다.

객원 논설위원(전 국회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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