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에어컨 기업인 중국 거리전기(格力電器)도 직접 에어컨 전용 반도체 칩 개발에 나섰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기술봉쇄가 중국 기업들의 핵심 기술 개발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거리전기가 최근 주하이링벤제(珠海零邊界)집적회로유한공사(이하 주하이링벤제)라는 자회사를 거리전기 본사가 소재한 광둥성 주하이에 직접 설립했다고 중국 온라인매체 펑파이신문(澎湃新聞)이 22일 보도했다.
주하이링벤제는 주로 ▲반도체·집적회로·칩·전자부품·전자제품 설계 및 판매 ▲통신·사물인터넷(IoT)·내장형 소프트웨어·컴퓨터 소프트웨어·모바일장비·소프트웨어 개발 및 판매 ▲기술서비스 제공 및 컨설팅을 담당한다. 특히 에어콘에 필요한 반도체 칩·부품과 소프트웨어를 만드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거리전기의 반도체 칩 개발은 사실 지난해부터 예견됐다. 지난해 회사 매출, 순익이 모두 큰폭 증가했는데도 주주들에게 배당을 하지 않은 이유로 둥밍주 회장이 직접 반도체 칩 연구개발(R&D)에 주력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둥 회장은 회사가 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핵심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며 500억 위안(약 9조원)을 투자해서라도 반도체 칩 개발에 성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리전기는 에어컨 내부 대다수 반도체는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있지만, 인버터·메인보드 등에 쓰이는 고성능 반도체는 대부분 수입하고 있다. 여기에 쏟아붓는 비용만 매년 40억 위안에 달한다.
앞으로 거리전기는 자체 기술로 반도체 칩을 직접 개발해 부품 자급률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에어컨용 고성능 반도체칩을 납품하는 기업은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유럽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일본 르네사스 등 정도다.
거리전기가 자체 반도체 칩 핵심 기술 개발에 나선 것은 올 들어 발발한 'ZTE 사태'가 자극이 됐다는 분석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에 대해 미국기업과의 거래를 중단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미국산 반도체 부품을 조달받지 못한 ZTE는 제품 생산 영업이 몇달째 마비돼 커다란 타격을 입은 바 있다.
특히 중국 하이테크 산업 발전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기술 봉쇄가 점차 심해질 것이 우려되면서 중국 정부가 나서서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는데 힘쓰고 있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을 가지고 있지만, 반도체 자급률은 20% 남짓에 그친다. 반도체 핵심기술이 부족한 중국은 통신장비, 스마트폰, 로봇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현재 중국은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니광난(倪光南) 중국공정원 원사는 "올해 ZTE 사태가 중국 기업에 경종을 울렸다"며 "이로써 반도체 칩 자주 연구개발이 이전보다 더욱 중요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거리전기가 자체 반도체 칩 설계하는 건 문제 없지만 전체 반도체 설계에서부터 제조·조립·테스트까지 다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ZTE 사태 발발 이후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도 산하 연구기관 달마원(達摩院·다모 아카데미)을 통해 신경망 칩인 '알리(Ali)-NPU'를 연구개발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도 이미 자회사 하이쓰(海思·하이실리콘)를 통해 세계 첫 모바일 AI칩 '기린970'을 개발하는 등 핵심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1991년 중국 광둥성 주하이에서 직원 20명으로 에어컨 생산을 시작한 거리전기는 지난 2012년 세계 1위 에어컨 기업으로 올라선 이후 수 년째 1위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