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사람들은 인심이 후해 농토에 벼베기가 끝나면 농토가 없는 이웃에게 농토를 무료로 내어줘 보리를 심어 거두게 한다”고 했다. ‘유배지이지만 사람 살 만한 곳’ 수준의 대답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가치 확산과 공유경제를 실천하는 살 만한 곳’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면 억지일까? 공유 인프라(농토)를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특정 사업(보리 경작)을 함으로써 기업(지주)의 수익 증진뿐 아니라 사회 전체(지역)의 이익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오늘날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와 다를 바 없다. 200년 전 강진 사람들의 생각은 지금 우리에게 큰 의미를 던져준다.
동주공제 풍우동주(同舟共濟 風雨同舟). 비바람 속에서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는 뜻이다.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과 후한서(後漢書) 주목전(朱穆傳)에서 유래한다. 손자(孫子)의 구지(九地) 편에도 등장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4월 1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재계 인사들과의 좌담회에서 시 주석에게 이 고사를 화두로 던진다. SK그룹의 새로운 경영전략인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가 ‘사회적 가치의 확산’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SK의 사회적 가치 확산이 시 주석의 국가 비전인 '인류운명공동체'와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주유소 등 대기업 보유 자산을 스타트업·중소기업과 공유하고 사회적 기업 생태계를 육성하는 것도 '인류운명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의미 있는 실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공유경제라는 표현은 2008년 로런스 레식 하버드대 교수가 처음 사용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서로 공유하는 활동을 말한다. 유형과 무형을 모두 포함하며 거래 형태에 따라 셰어링, 물물교환, 협력적 커뮤니티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셰어링은 사용자들이 제품 혹은 서비스를 소유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카셰어링이 대표적이다. 물물교환은 필요하지 않은 제품을 필요한 사람에게 재분배하는 방식이며, 협력적 커뮤니티는 특정한 커뮤니티 내부의 사용자 사이의 협력을 통한 형태다.
지난 5월 최 회장은 중국 상하이포럼에서도 “SK의 보유자산을 소비자와 사회공동체 등과 나눠 공유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 SK에너지의 주유소 3600여곳을 공유 인프라로 제공하고 있다. SK텔레콤 유통망도 공유 인프라로 제공된다. 3000개가 넘는 유통망(대리점)도 새로운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 확산과 공유경제에 대해 그는 오래전부터 숙고해왔다. 2009년 연세대에서 열린 ‘사회적 기업 국제포럼’ 참석을 계기로 기업 생태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사회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인식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4년 수형생활 중에는 사회적 기업에 관한 책까지 썼다. 컴퓨터도 없고 메모지나 엽서에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당시 상황에서 책을 썼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1월 그는 ‘동남아판 우버’로 불리는 그랩의 앤서니 탄 대표와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만나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계) 서비스 플랫폼에 대한 미래 비전을 공유했다. 이는 SK그룹 주요 계열사의 공유 인프라 전략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9월 SK이노베이션은 국내 기업 최초로 임금인상률을 물가에 연동하기로 노사 합의를 했다. 공유경제, 기업의 사회적 가치의 근간이 되는 기업과 사회의 동반성장이 임금 및 단체협약에 반영된 것이다. 최근 SK㈜가 합작법인 쏘카 말레이시아를 출범하고 차량공유 서비스(카셰어링)를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룬 순다라라잔 뉴욕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공유경제’라는 저서에서 “누군가 자본주의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공유경제를 보라”고 말했다. 공유경제는 모바일 생태계 덕분에 지난 10년간 가장 비약적으로 발전한 경제모델이다.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을 둔다.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상위 5위권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등 플랫폼 기업이 이미 점령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언론에 많이 등장한 단어는 '성장'이었다. 기존의 성장과도 상이하고 분배와도 다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부자와 서민이 같이하는 공생 발전이다. 소득주도 성장과 궤를 함께한다. 이젠 SK그룹의 경영이념도 ‘이해 관계자의 행복 극대화’다. 그는 오늘도 '모든 기업의 사회적 기업화'라는 꿈을 향해 '사회적 가치'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최태원 회장과 SK그룹의 대담한 도전과 혁신적 변화를 환영하고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