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규모의 도서박람회 중 하나인 ‘홍콩 북 페어(Hong Kong Book Fair)’가 지난 18일부터 24일까지 홍콩컨벤션센터(Hong Kong Convention and Exhibition Centre)에서 개최됐다.
홍콩무역발전국(HKTDC)이 주최하는 홍콩 북 페어는 지난 1989년부터 개최돼 올해로 29회째를 맞았다. ‘박람회의 도시’라 불리는 홍콩에서도 손꼽히는 행사로 100만여 명의 방문객 수를 자랑하는 초대형 박람회다.
“로맨스 문학(Romance Literature)”을 주제로 개최된 올해 북 페어에서는 1990년대 전·후반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이를 기반으로 한 연극, 영화 상영 및 작가와의 세미나 등 310개의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렸다.
홍콩 북 페어는 시, 소설 등 순수 문학뿐만 아니라 전공서적, 참고서, 외국어 학습서 등 교육 관련 콘텐츠, 만화, 애니메이션 및 문구, 캐릭터 등 출판 산업과 2차 파생 산업을 총체적으로 망라하는 박람회다. 세계 각국이 자국 문화 상품 홍보를 위해 열띤 경쟁을 벌이는 ‘소리 없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올해 북 페어에는 39개국에서 680개의 기관 및 출판사들이 참가했으며, 세계 문화 교류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박람회장 내 ‘국제문화촌(International Cultural Village)’ 구역에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호주, 체코, 일본 등 33개국이 홍보 부스를 개설했다.
주홍콩대한민국총영사관은 올해 처음으로 박람회에 참가해 부스에 아동 도서 50권과 한국 관광 정보 등을 홍보했다. 또 지난 1월 개관한 주홍콩한국문화원과 매년 10월 홍콩에서 개최되는 한국문화제 홍보에 중점을 부고 부스를 운영했다. 주홍콩대한민국총영사관 측은 “이번 북 페어 기간 중 매일 3000명 이상이 한국관 부스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한국관 담당자인 재니스 리(Janice Lee)는 “방문객들이 특히 한국 문화 관련 도서와 지도 등 관광 자료에 큰 관심을 보였다”며 “(이번 북 페어 참가를 통해) 한국과 홍콩 간 문화예술교류를 활성화하고, 홍콩 출판 시장에서 한국 도서 브랜드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한국 출판 산업에 대한 인지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올해 북 페어의 한국 관련 도서는 현지 출판사가 출간한 여행도서와 한국어 교재가 대다수였다. 한국 소설이나 시 등 문학 관련 번역서나 원서 같은 ‘한국 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한국산 문구류와 캐릭터 용품 등이 홍콩에서 조금씩 저변을 넓혀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일본 관련 콘텐츠는 양과 질 모두에서 한국을 압도했다. 홍콩 문화 콘텐츠 산업 분야에서 일본은 한국의 경쟁자로 꼽힌다.
일본 관광국은 올해 북 페어에서 이와테, 오키나와 등 17개 현 정부와 협업을 통해 사상 최대 규모의 일본관을 운영했다. 일본관에서는 도서뿐만 아니라 만화 캐릭터 상품 판매, 가상 여행 체험 등 다양한 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국제도시로서 높은 문화적 개방성을 지닌 홍콩은 ‘한류(韓流)’라는 용어의 발상지로 알려졌다. 지난 1997년 홍콩의 유명 잡지인 ‘아주주간(亞洲週刊)’에서 한국 드라마 신드롬을 최초로 ‘한류’라 명명한 이래, ‘한류’라는 용어는 홍콩과 대만, 중국 본토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한국 문화 관련 콘텐츠는 아직도 케이팝(K-POP)과 드라마 등 대중문화 분야에 집중돼 있다. 한국 도서를 홍콩 등 중화권에 소개할 역량 있는 번역가 역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최근 주춤하는 중화권의 한류가 심도 있고 지속 가능한 문화 현상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소설, 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만의 독특하고 경쟁력 있는 문화 콘텐츠를 발굴해 내는 것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