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보기술(IT) 굴기가 보안 이슈에 제동이 걸렸다. 세계 1위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의 5G(5세대) 통신 장비가 보안 문제를 이유로 미국과 호주에 이어 영국에서도 제동이 걸린 상태다.
23일 글로벌 컨설팅기업 SNL케이건에 따르면 중국 최대 이동통신사 차이나모바일은 올해 상하이와 항저우, 광저우, 쑤저우, 우한 등 5개 도시에서 각각 100개의 5G 기지국을 설치하고 5G 통신 시험에 나설 계획이다. 주요 시험망은 주파수 3.5㎓ 대역이다. 3.5㎓ 대역은 우리나라에서도 5G 전국망으로 활용돼 산업적으로 가치가 큰 대역이다. 차이나모바일은 베이징과 선전 등 다른 12개 도시에는 소규모로 5G 관련 응용프로그램을 시험한다.
효율적인 망 투자를 위해 중국 이동통신사는 힘을 모았다. 차이나모바일과 다른 중국 내 이동통신사인 차이나유니콤, 차이나텔레콤은 2014년 합작한 통신 인프라 투자 회사인 ‘차이나 타워’를 중심으로 5G 망을 공유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미국 월가의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 리서치는 “조밀한 설비 구축이 필수인 5G 시대에 비용을 최소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이동통신사들은 글로벌 이동통신 표준화 기술협력 기구인 3GPP의 5G 독립 표준(5G SA)이 완성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차이나모바일은 지난해 ZTE, 퀄컴 등과 함께 5G 무선 접속 망 표준 기술인 ‘5G 뉴 라디오(NR)’ 시험운영에 성공했다.
중국 산업정보기술부는 3~4㎓ 대역에서 100~200㎒ 대역폭을 5G용으로 지정했고, 이를 각 이동통신사에 할당할 계획이다. 안정적인 통신 설비 구축을 위해 향후 3년간 전파사용료도 면제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5G 산업 주도를 위한 중요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중국이 5G에 목을 매는 이유는 과거 3G 시장에 뒤늦게 진출해 기술 표준과 그로 인한 산업적 파급효과에서 철저히 배제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통신 기술 역량 부족은 통신장비와 단말 등 통신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그 사이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4G LTE 시장까지 선두사업자로 큰 수혜를 누렸다. 중국 내 이동통신사들의 5G 선제적 투자와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5G 기술 글로벌 주도권을 더는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5G는 특히 통신 속도 향상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는 점도 동기 부여가 된다. 5G는 4G에 비해 △20배 빠른 데이터 전송 속도 △10배 이상 빠른 반응 속도 △100만개 기기 동시 접속 등의 특성을 갖춰 스마트시티, 원격 의료, 자율주행차 등 각종 산업의 합종연횡의 장을 여는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 정보통신연구원 ‘5G 경제사회영향 백서'에 따르면 5G 상용화의 경제적 효과는 2030년까지 6조3000억 위안(약 1043조원)에 달한다. 간접적 영향까지 더하면 총 10조6000억 위안 규모의 경제 효과와 부가가치는 3조6000억 위안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5G 기술 선점부터 관련 장비의 글로벌 시장 진출까지 겨냥하고 있으나 자국의 1위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가 글로벌 시장에서 보안 문제로 뭇매를 맞으면서 기세가 한풀 꺾인 모양새다.
영국 정보통신본부(GCHQ)와 정보보안기관 등이 참여한 ‘화웨이 사이버 보안평가센터’는 19일(이하 현지시간) 보고서를 통해 “중국 화웨이의 모바일 광대역 장비의 엔지니어링 프로세스에 결함이 발견됐으며 영국 통신 네트워크에 새로운 안보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화웨이의 장비 보안 문제를 지적한 국가는 영국이 세 번째다. 미국 의회는 2013년 화웨이와 ZTE가 자사의 네트워크 장비로 미국 내 정보를 무단으로 반출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그해 12월 화웨이는 미국 통신장비 시장에서 철수했다.
호주 정부는 지난달 21일 화웨이가 통신장비에 백도어(Backdoor) 프로그램을 설치해 자국으로 데이터를 빼낼 것을 우려, 자국의 이동통신사들이 5G 망 구축 과정에서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도입하지 못하도록 압박했다.
화웨이 대변인은 이번 사태에 대해 “보안은 화웨이의 최우선 과제다. 엔지니어링 프로세스와 리스크 관리 시스템 등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