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에서 보안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정부가 철저하게 챙길 것이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17일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개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화웨이 장비는 에릭슨이나 노키아 등은 물론 국내 업체인 삼성전자의 장비에 비해 가격은 최대 30% 가량 싸면서도 기술 수준은 한분기 가량 앞선다는 게 업계 안팎의 평이다.
5G 초기 상용화를 위한 네트워크 비용이 총 20조원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업계가 화웨이 장비를 도입할 경우 많게는 6조원 가까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이윤 추구가 최대 목적인 기업 입장에서 이를 안쓸 이유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정작 업계의 셈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로 전세계 5G 시장의 테스트베드란 점을 감안할 때 정무적인 변수가 개입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염두해 두고 화웨이 장비 사용을 보안문제를 명분으로 사실상 금지한 상태다. 미국과의 무역 의존도가 큰 우리나라의 경우 이같은 상황을 무시하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최근엔 호주 정부도 같은 이유로 화웨이 장비 입찰 참여를 차단, 미국쪽 진영에 합류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정부의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경제적인 변수만을 고려해 화웨이 장비를 선택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외산 장비로 세계 최초의 5G 상용화를 할 경우 상징성이 떨어질 수 있는 우려도 나온다. 사실 이 문제는 정부가 신경 쓸 문제지 민간 기업이 고려할 변수는 아니란 비판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업계는 정부의 원론적인 공식 입장과 상관없이 미국 정부의 입김을 우려하고, 우리 정부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정부의 원론적 입장은 유영민 장관의 말처럼 화웨이든 삼성전자든 보안문제의 검증에 철저히 임하겠다는 것이다.
틀릴 게 없는 말이다. 문제는 업계가 지나치게 정부의 눈치를 본 결과이든, 정부가 실제로 업계가 알아서 기도록 무언의 압박을 가한 것이든 이통 3사는 장비 선택 문제에 있어 정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영민 장관이 보안 문제를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한 발언을 두고 일각에선 정부가 보안 문제에 대한 기술적 검증에 나선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실제 이날 일부 언론에선 이같은 보도가 나왔다.
이후 과기정통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민간 통신사에서 도입하는 장비의 보안성 검증은 장비를 도입하는 통신사가 자기 책임 하에 직접 수행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과기정통부가 5G 보안문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것은, 5G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보안정책 수립, 기술・인력 개발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학폭(학교폭력) 문제에 떠는 학생에게 '자기방어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며 학교는 관련된 모니터링을 철저히 하겠다'고 한 것과 뭐가 다르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업계의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 선에서 마무리된 간담회였다"며 "정부와 업계 수장이 모여서 무엇을 한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