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석포제련소 논란, 물을 정치화하지 마라

2018-07-1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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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석 번역가.

송나라 철학자 진덕수가 쓴 ‘대학연의’(大學衍義)라는 책에는 고대 중국의 우(禹) 임금이 치수(治水)를 통해 국민들의 삶을 낫게 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 임금의 아버지는 곤(鲧)이라는 인물로 치수를 잘못해 순(舜)임금에게 처벌을 받은 관리였다. 곤은 홍수를 막기 위해 9년간 둑과 제방을 건설하는 데만 집중했다. 물을 막음으로써 홍수에 대비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수위는 계속 올라가고 민중들의 피해는 끊이지 않았다. 순 임금은 결국 곤을 치수 책임자의 직위에서 해임하고 그 아들 우(禹)를 내세워 치수를 담당하게 했다. 우는 아버지와 정반대로 물 문제에 접근했다. 부하들과 함께 방방곡곡을 다니며 지형을 관찰하고 물길을 파악했다. 그리고 강바닥을 적절히 파내 물길을 여러 바다로 흐르게 했다. 우가 13년 동안 이 일을 계속하자 황하 일대의 홍수가 안정되었고 순 임금은 훗날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고대 중국의 이 일화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복합적이다. 물 문제가 우리의 삶을 좌우할 만큼 매우 중요한 현안이라는 것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물 문제는 매우 정치적이기도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우와 곤의 치수 방식이 달랐던 것은 단순히 개인의 견해차이에서 비롯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물 문제에 접근하는 통치 집단 내 관점의 차이, 이해관계의 차이가 정책의 변화로 이어진 사건일 수 있는 것이다.

집단에 따라 서로 다른 물에 대한 관점을 고민하다 보니 낙동강 상류에 있는 한 공장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어진 지 50년이 다 되어가는 영풍 석포제련소다. 최근 5년간 이 공장은 환경단체들로부터 낙동강 상류 환경오염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처음에는 봉화 일대 환경운동가들이 주장하는 국지적인 이슈였다가, 안동호로 프레임이 확장되더니 이제는 대구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까지 나섰다. 여차하면 낙동강 하류인 부산과 마산, 창원, 진해 일대로도 범위가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운동가들이 주장하는 프레임은 매우 단순하다. “안동호 주변에서 왜가리와 물고기가 폐사한 원인은 중금속 때문이며, 여기에는 호수로부터 100킬로미터 떨어진 영풍 석포제련소의 배출물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자원공사가 지난해 8월 내놓은 레포트에 따르면 안동호에는 매우 큰 규모의 하천부지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규모는 약 76만평. 축구장 220배 크기 이상 되는 어마어마한 공간이다. 그 중 48만 평은 불법 경작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수몰민들을 배려하기 위해 이루어졌던 하천 내 경작 허가가 점점 확대되어 대규모 영농으로까지 이어지게 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생기는 야만 행위다. 시비, 퇴비 등을 무더기로 하천변에 쌓아 놓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강으로 휩쓸려 가도 아무런 제재가 없는 형편이다. 부영양화(富營養化)는 이런 오염물질들이 과도하게 강으로 유입되어 물을 탁하게 만들고, 그 주변의 물고기들과 새들이 죽어 나가게 하는 과정이다.

안타깝게도 환경단체는 안동호 농업오염 문제에는 침묵한다. 하기사 4대강에 보가 만들어 질 당시 하천부지 경작이 외려 “농업 국산화율을 높여주는 행위”라고 추켜세웠던 것이 환경단체 관계자들이다. 지금 영풍 제련소 문제를 맹렬하게 공박하고 있는 대구환경운동연합의 모 관계자는 과거 하천부지 경작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4대강 주변에는 어마어마한 하천부지들이 남아 있고, 여기서 흘러내린 비료, 퇴비에 포함된 중금속과 각종 오염물질들이 강을 썩어 들어가게 하고 있다. 보로 인해 유속이 느려졌다고 욕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그치지 않는다. 강 주변에 쌓인 숱한 하천부지의 동물 분뇨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 녹조라떼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동호로부터 100 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고, 중간에 소수력 발전소가 두 군데나 있는 상황에 놓인 영풍 제련소가 ‘낙동강 환경 오염 주범’이라고 찍힌 사태는 참으로 개탄스럽다.

‘대학연의’는 치수를 포함한 농업 현안을 이른바 ‘농용팔정’(農用八政)이라고 표현한다. 농업은 먹는 것뿐만 아니라 재화, 공동체 의식을 위한 제사, 토목과 건설, 교육, 치안, 외교, 군사 등 매우 방대한 일과 연관된 종합 예술이라는 것이다. 물 문제를 단순히 특정 지점의 수질 이슈로 국한시켜 정치화하다 보면 애꿎은 사람들만 다칠 위험이 크다.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가 그렇다. 낙동강 환경 오염의 본질을 회피한 채 석포 주민들만 잡을 공산이 큰 ‘정치운동’은 자제되어야 한다.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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