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운업계가 다소 개선된 업황에도 불구하고 좀체 살아나지 못하면서 이번에 출범한 해운진흥공사가 자산부채이전(P&A) 방식을 통한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우량 자산을 한 곳에 모아 '국적원양선사'를 운영하는 것이 각사에 수조원을 쏟아붓는 것보다 시간, 비용면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P&A 방식까지 거론되는 것은 우리나라도 경쟁국들처럼 '1국1라인'체제로 가야한다는 당위성 때문이다.
◆국내 해운사 실적 여전히 제자리걸음
5일 한국선주협회에 따르면 2017년도 국내 주요 국적 원양선사들의 실적은 순손실이거나 소폭 감소하는 등 개선되지 않았다.
이 기간 국내 최대 선복량을 보유한 현대상선의 경우 영업손실이 4067억원에 이르렀다.
고려해운(459억원), SK해운(897억원), 장금상선(312억원), 대한해운(800억원), 대한상선(503억원), SM상선(352억원) 등이 최대 900억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이는 2016년과 비교할 때 비슷하거나 줄어든 수준이다. 흥아해운의 경우 186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는 2017년에 컨테이너선 업황이 다소 개선된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당시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의 경기 회복과 교역 증대로 물동량이 큰 폭으로 늘어난 바 있다. 해운사 입장에선 물동량이 늘면 수익도 증가한다.
이를 두고 각 해운사들이 상생보다는 각자도생을 통해 출혈 경쟁을 한 것이 주된 원인이란 해석이 나왔다.
지난해 말 국적선사 14곳이 한국해운연합(KSP)을 결성하고 운송 효율 극대화, 항로 합리화 등 협력에 나선 배경이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도 국내에는 'HMM+K2'(현대상선 장금상선 흥아해운의 협력체) 등 일부 선사들이 해운동맹을 결성한 바 있지만, 이같이 대규모로 결성한 것은 처음이다"면서 "그만큼 업계가 어려우니 다같이 힘을 합치자는 의미가 강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상황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해운동맹 와해' 얘기가 나오는 데다, 글로벌 선사들이 초대형 선박 발주를 늘려 공급 과잉이 심해질 것으로 우려돼서다.
실제 컨테이너선 부문을 통합하기로 한 흥아해운과 장금상선은 논의 초기부터 난항에 부딪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세계 해운 시장의 공급과잉이 여전히 심한 상태로, 해소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일 소요될 것"이라며 "본격적인 시황회복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짚었다.
◆탄력받는 '교통정리론'
이런 이유로 해운업계에선 공멸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덩달아 해양진흥공사가 P&A 방식을 통해 업계를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P&A란 우량기업이 부실기업을 인수합병(M&A)했을 때 함께 부실화할 것을 우려해 부실자산이나 부채부분을 따로 떼어내고 정상적인 자산 및 부채만을 인수하는 방법을 말한다. 쉽게 말해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그렇지 않은 부분만 사들이는 것이다.
해양진흥공사가 P&A에 나설 경우 각사들의 우량 자산 및 인력을 한데 모아 반대급부로 주식을 교부하는 방식 등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앞서 해양진흥공사는 '해운산업의 성장에 필요한 서비스 제공으로 해운경쟁력을 강화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적 아래 이날 출범했다.
업계에선 이 설립 근거가 해양진흥공사가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운동맹처럼 업계 자율에만 맡기는 데도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해양진흥공사가 단순히 유동성 및 보증을 제공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한국선박해양은 이전에 1조원을 해운업계에 투입했으나, 부실화를 막지 못한 전례가 있다.
이에 대해 해운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재 너무 많은 해운사들이 연근해에서 경쟁을 하다보니, 단일화·대형화하는 세계적인 트렌드에서 뒤처져 있다"면서 "또한 한진해운 파산 이후 원양 네트워크 재건이라는 목표들도 요원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계속 시장에, 민간에 자율로 맡기기보다 정부가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업에 관여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P&A를 통해 국적원양선사들이 한 곳에 모든 역량을 집결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