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대한 ‘무차별적 때리기’가 악명 높은 헤지펀드들의 소송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등 박근혜 정부 시절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던 사안들이 최근 다시 번복되며, 관련자들이 줄줄이 처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엘리엇과 메이슨 등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한 미국계 헤지펀드들이 잇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있다.
7일 금융가 등에 따르면 엘리엇이 이르면 이달 중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제기한다. ISD는 한미FTA에 반영된 투자자 분쟁 해소 절차다.
당시 엘리엇은 발표문을 통해 "한국 정부와 국민연금의 행위는 한미FTA를 위반한 것"이라며 "엘리엇에 대한 명백히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대우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합병을 둘러싼 스캔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형사 소추로 이어졌고, 법원에서는 삼성그룹 고위 임원,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형사 재판과 유죄 선고가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전 정권과 현 정권이 다르게 판단하면서 엘리엇 소송에 힘을 실어주게 된 것이다. 앞서 2015년 7월 합병 당시 삼성물산 지분의 7.12%를 보유하고 있던 엘리엇은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로 제시된 합병비율이 주주 입장에서 불공정하다며 문제제기를 해왔다. 하지만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지난해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왔다.
법무부가 공개한 엘리엇의 중재의향서를 보면 엘리엇은 6억7000만 달러(약 7200억원) 이상을 배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슨도 ISD 준비.. 지난달 8일 중재의향서 제출
엘리엇뿐만 아니라 메이슨도 최근 ISD를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달 8일 삼성물산 합병 건과 관련해 중재의향서를 한국 정부에 제출했다. 메이슨도 엘리엇의 주장과 유사하다.
메이슨은 "2015년 5월 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발표됐을 때 애널리스트들은 합병 조건이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게 책정하고,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게 책정해 삼성물산 주주에게 손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면서 "합리적인 삼성물산 주주라면 그런 조건의 합병은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중재의향서를 통해 밝혔다.
이 회사도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국민연금에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해 삼성 합병이 성사되도록 한 정황을 열거했다.
메이슨은 "복수의 체포와 형사소추, 유죄 선고는 문 전 장관을 포함한 박근혜 정부가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표결에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을 드러냈다"며 “한국정부의 불법행위로 메이슨이 삼성 투자에서 입은 손해는 1억7천500만 달러(약 1천88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강조했다.
◆아직 양사 승리 점치기 어려워... “손해액 객관적 증명 어려울 것”
하지만 엘리엇과 메이슨이 소송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손해액을 객관적으로 추산해 증명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합병 당시 코스피지수가 크게 하락하는 추세에 있는 등 변수가 많아 엘리엇과 메이슨이 소송전을 승리로 이끌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중재 전문가인 법무법인 광장의 임성우 변호사는 "정부가 어떤 방어논리를 펴며 대응해 나갈지는 구체적인 청구원인과 근거조약을 보지 않고서는 예단하기 어렵다"면서도 "정부가 모든 행위를 다 책임지는 게 아닌 만큼 다양한 각도로 항변할 논리를 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