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어 호주도 안보 위협을 이유로 중국 화웨이의 통신장비 입찰 금지를 추진하면서, 최근 5G 주파수 할당을 마무리하고 통신장비 구축에 나설 예정인 한국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화웨이 장비로 인한 안보‧보안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 아니어서 상황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저변에는 중국과의 외교‧무역 마찰로 번질 것이란 우려가 깔려있다.
19일(현지시간) 호주 파이낸셜 리뷰 등에 따르면 호주 정부는 자국의 이동통신사들이 5G 망 구축 과정에서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도입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화웨이가 통신장비에 백도어(Backdoor) 프로그램을 설치해 자국으로 데이터를 빼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맬컴 턴불 호주 총리가 올해 초 미국을 방문해 국가안보국(NSA)과 국토안보국(DHS) 관계자를 만나 화웨이 5G 장비 위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호주 정부는 2012년 국가보안정보기구(AISO) 권고에 따라 화웨이가 국가 광대역 망 구축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 바 있다.
미국 의회는 2013년 화웨이와 ZTE가 자사의 네트워크 장비로 미국 내 정보를 무단으로 반출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화웨이는 미국 의회가 제기한 보안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판단하고 그해 12월 미국 통신장비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했다.
우리 정부는 화웨이 통신장비 관련 논란은 아직 의혹 제기 단계라서 상황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LG유플러스는 2013년 LTE 단계에서 이미 화웨이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으나, 아직 보안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는 상태여서 특별히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현행법상 정부가 특정 해외 기업의 장비 도입을 막을 규정은 없다. 국제무역 질서를 위배하는 행위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미국과 호주와 같이 의혹 단계에서 화웨이 장비 도입을 막는 것은 자칫 중국과의 외교‧무역 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 기업의 국내 진출을 불명확한 보안 문제 등으로 막다가는 거대 시장에 진출할 기회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의 ‘5월 ICT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ICT 중국(홍콩 포함) 수출 규모는 104억 달러로, 전체 ICT 수출의 56%를 차지한다. 이 중 반도체 수출만 75억2000만 달러에 달한다. 무턱대고 화웨이의 통신장비 입찰을 막으면 잃을 것이 더 많은 셈이다.
미국이 화웨이 장비를 배척하면서 자국 시장을 보호한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 통신장비사도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호주 또한 같은 상황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보안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이 없는 상황에서 화웨이 장비를 배척한다면 중국에 중화권까지 더한 시장에 우리 기업이 진출할 기회를 상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화웨이의 통신장비는 경쟁사 대비 20%에서 30%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연구개발(R&D)에 집중, 3.5㎓ 대역의 장비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