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우려는 내년 은행권에 바젤Ⅲ가 전면 시행되면 현실로 다가올 상황이다.
은행들은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인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을 높이기 위해 자본확충에 꾸준히 나서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은행들은 대출 등을 줄여 자본을 늘릴 수밖에 없고, 특히 부실이 우려되는 중소기업대출 위주의 기업 여신을 줄여야 한다. 경기 악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자금난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BIS비율 무조건 높여라”
국내 은행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본을 늘리면서 국제 기준은 모두 충족하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난 1분기 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15.34%로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다. 신한‧하나‧경남‧광주은행은 16%대를 기록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금리 인상 등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에 대비해 내부 유보 등 적정 수준의 자본 확충을 지속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에 은행들은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속도를 내며, 자본 확충에 끊임없이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최근 2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중 상각형 조건부자본증권(후순위채)을 성공적으로 발행했고, 기업은행(3500억원)‧신한은행(2000억원)‧KEB하나은행(3000억원)‧KB국민은행(3000억원)도 자금조달에 나섰다.
하지만 은행들은 계속되는 자본확충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안정성 확보를 위한 자본확충은 좋지만, 계속되는 금융당국의 요구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보험사들이 IFRS17(국제회계기준) 도입을 앞두고 빚을 내서 무리하게 자본확충에 나선 것처럼 은행들이 느끼는 압박도 적지 않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암묵적으로 BIS비율을 14% 이상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며 “이미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14% 이상을 유지하는데도 불구하고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을 이유로 자본확충을 더 요구하는 것은 당국의 과도한 간섭”이라고 지적했다.
◆BIS비율 높이려다 기업 자금줄 끊길 우려
문제는 금융당국의 주문대로 BIS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더욱 높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발목을 잡고, 경기 부진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은 BIS비율을 크게 높였다. 10% 이내이던 BIS비율은 2009년 14.36%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BIS비율이 크게 오른 2009년을 기점으로 기업대출액은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기업대출 잔액의 연평균 증가율은 2003~2008년말 중 9.9%에 달했으나, 2009~2017년말 중에는 4.9%에 불과해 금융위기 이후 증가세가 큰 폭으로 둔화됐다. 이는 은행들이 BIS비율을 높이면서, 부실이 우려되는 기업대출을 줄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 기간 가계부문의 대출잔액 증가율이 금융위기 전후 각각 연평균 8.5%, 8.1%로 큰 차이가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기업의 자금조달 방법 중 대출과 채권의 비중이 7:3(2017년말 기준 대출금 1049조원, 채권 520조원)의 비중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자본확충을 위해 대출을 줄인다면 기업들로서는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말 60%가량이었던 대출 비중은 지난해말 70% 가까이 증가하면서, 기업의 대출을 통한 조달 의존도는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IT금융학부 교수는 “기업의 은행 대출 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미국‧유럽과 달리 BIS비율 기준을 8% 이하로 정부가 권고하기도 했다”며 “과도하게 높은 BIS 비율을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기업의 자금줄을 막는 등 부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에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