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어(語)?] '착하다'는 말이 부활한 까닭

2018-05-3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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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하다'는 말의 이상한 부활에 대한 우려들

국어학자 임지룡 교수(경북대)는 <'착하다'의 의미 확장 양상과 의의>라는 논문(2014년)을 발표했다. 그는 최근 10여년간 '착하다'라는 말이 '사람'에서 '사물'로 의미 확장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면서, 구체적 양상을 탐색하고 있다.

착한 과자, 착한 원두커피, 착한 생닭, 착한 가슴, 착한 뇌, 착한 유전자, 착한 식당, 착한 운전, 착한 드라마, 착한 댓글, 착한 소비, 착한 설탕, 착한 여행, 착한 기업, 착한 가게, 착한 결혼식, 착한 행정, 착한 MT, 착한 도서관, 착한 목소리, 착한 그림전, 착한 콜레스테롤, 착한 지방, 착한 비타민, 착한 건물, 착한 에너지숲, 착한 육식, 착한 식용유, 착한 와인, 착한 쓰레기배출, 착한 책, 착한 수학, 착한 공부, 착한 연비, 착한 글, 착한 다이어트, 착한 요리실력, 착한 그림실력, 착한 가격, 착한 분양가, 착한 휴가, 착한 집밥, 착한 점심, 착한 정비, 착한 대리, 착한 몸매, 착한 머리, 착한 눈, 착한 입술, 착한 가슴, 착한 복근, 착한 다리, 착한 각선미, 착한 뒤태, 착한 영화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이런 표현 사례들은 주로 2010년 이후에 채집된 것이다.
 

[교보문고의 '착한 배송' 홍보.]



이런 표현 확장(혹은 의미 확장)에 대해서, 많은 지식인들이 우려를 표현하고 있다.

'착한 설탕' '착한 고기' '착한 밥상'이란 말은 도덕적으로 행동하거나 도덕적인 마음씨를 가진 고기나 설탕, 밥상 등이 되어 우리나라 사람들의 언어생활에서 혼란의 요인이 될 수 있다.'(한겨레 2009.6.3, 이강빈 교사)

'더욱 우려스러운(?) 표현이 나왔다. '착한 가슴' '착한 몸매'다. '착한'이라는 어휘에 의지해 민망함을 피해 가는 고도의 기술로도 판단되지만 성립되지 않는 말로, 언어체계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착한 가슴'이나 '착한 몸매'는 없다. '풍만한 가슴' '매력적인 몸매' 등이 적절한 표현이다.'(중앙일보 2009.11.15. 배상복 기자)

'우리 모두 무늬만 '착한'에 더 이상 중독되지 않기를 바란다.'(경향신문 2010.2,28. 박미현 시민단체 활동가)

''착한'이라는 형용사가 쓰여야 할 때와 쓰이면 안될 때를 가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쓰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사람의 몸매에 '착한'이라는 형용사를 가져다 붙이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의 상품에 '착한'이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사춘기 국어교과서'(작은숲 출판) 김보일과 고흥준)

# 왜 지식인들이 언어의 심판관 노릇을 하려 하는가

'착하다'는 형용사의 의미가 확장되는 것이 언어 오남용이라고 보는 시선들이다. 이에 대해 임지룡 교수는 옥스퍼드대 언어학자 진 애치슨(Jean Aitchison, 2008년 방한했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반박한다.

"언어의 체계적인 연구인 언어학은 규범적(prescriptive)인 것이 아니라 기술적(descriptive)인 것이다. 언어학자는 말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말해진 것에 관심을 둬야 하며, 심판관이 아닌 관찰자 혹은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새로운 낱말 또는 의미 확장을 타락과 부패의 표시로 간주하며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연속적인 언어 변화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

언어학자나 지식인이 언어에 대해 심판관 노릇을 하려는 것은, 꽤 흔한 풍경이다. 기존의 언어체계가 대중의 부박해보이는 습관이나 취향, 혹은 오류 따위로 허물어지거나 뒤바뀌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리가 있는 듯하다. 언어는 문법책 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준수하는 소통의 질료가 아니라, 그 자체가 세상과 관계와 삶 속에서 살아움직이는 활어이며 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노엄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이나 인지언어학 개론에서 들었던 '말'들이다.

애치슨 교수가 말한 것처럼 '언어는 이래야 한다'고 미리 적어놓지(prescriptive) 말고, '언어가 이렇게 바뀌었는데 이렇게 정리해 기록해야(descriptive) 한다는 입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착하다'라는 뜻은 원래 이게 아닌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틀렸다는 게, 언어학적인 태도가 아니며, '착하다'는 뜻은 원래 이게 아니었으나 이렇게 말하는 방식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겸허하게 받아적으며 그 용례들을 분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지역의 한 식당]



# '착하다'의 변용은 타락도 아니며 비문법적 현상도 아니다

임 교수는 그런 관점을 빌려, 자신의 주장을 조심스럽게 피력한다. "'착하다'에 나타난 이 현상은 자연스러운 언어 생태로서 결코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으며, 오류와 타락이라고 하여 규범의 잣대로 되돌릴 수 없으며, 비문법적 현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언어를 폐쇄적이고 정적인 규칙의 체계로 보지 않고, 실제 사용 맥락을 분석해 '정착도'와 '관용도'(어느 정도로 어떻게 쓰이는지)의 관점에서 변화를 규정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논문에서 '착하다'는 말이 의미가 확장되어 쓰이고 있는 실태를 나름으로 분석했다. 공을 들인 연구 결과이나 나의 지금 관심사는 아니다. (그는 '착하다'의 개념상 주어(주체)가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식물, 무생물 같은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 착하다는 말에 대한 경멸이, 그 말을 뒤틀기 시작했다

'착하다'라는 말이 새롭게 변용되어온 까닭은, 사실상 그 말의 정상적인 의미나 쓰임새의 효용이 수명을 다해가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이런 본질적인 문제에는 접근하지 않았다. 유교적 질서 체계는 제왕권력의 통치를 위한 기획이었고, '착하다'는 말은, 제왕권력이 영원한 '을'인, 백성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격려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제왕권력은 가정에선 가부장적 권력, 학교에선 스승의 권력이며, 직장에선 상사의 권력으로 '번역'될 수 있다. '착하다'의 시스템이 작동했던 것은, 조선시대를 지나 대한민국이라는 근대국가가 형성되고 정착되는 기간 동안이었다.

근대를 거치면서 점차 활발해진, 민주화는 국민이 반드시 '을'이 아니라, 국가지도자를 선택하고 국정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형식상의 '갑'이 될 수 있는 국가(민주공화국)로의 이행을 가능케했다. 국가의 제왕권력이 탈바꿈한 것과 더불어, 가정에서도 아버지 권력이나 어른 권력이 해체되었고, 학교의 스승 권력도 마찬가지였다. 국민도 자식도 학생도 '을'이 아니라, 대등한 인격적 지위를 보장받는 사회로 나아가면서, '착해야 하는 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착해야 하는 것은 '을'이 아니라, '갑'도 지켜야 할 일이며, 그것을 갑이 을을 평가할 일도 아니게 됐다. 누가 누구를 착하다고 말할 '지위'나 '권력'을 갖지 않게 된 사회가, 이 말을 서서히 '사어(死語)'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흥부전'에서도 슬쩍 비쳤던, 착함의 대책 없음과 사회생활의 젬병에 대한 조롱은, 이제 '착함'의 의미 속에 노골적으로 스며들었다. 그런 가운데 누군가가 죽어가던 말인 '착한'을 살려내, 새롭게 의미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의미구조에 대한 공감과 애호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유행어처럼 번지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이 점이 중요하다.

# 자본주의는 착하지 않다? 그래서 착한 호소가 필요했다

'착하다'라는 의미확장의 지점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정확하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약점을 건드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사회를 이룬 자본주의는 문명 전체를 어마어마하게 변화시켰고 우리 삶의 현재 양상을 만들어왔지만, 그것이 지닌 문제점을 소박하게 한 마디로 정의하면 '착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상품 생산이 이뤄진다는 점, 노동이 상품화된다는 점, 노동 없이 자본 자체만으로도 수익이 가능하다는 점, 부당한 경쟁을 낳기 쉽고 빈익빈 부익부가 조장되기 쉽다는 점 등등의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적 규정과 비판들은, 인성의 윤리를 바탕으로 사회를 작동하고자 했던 전시대의 기획들과는 사뭇 다른 '착하지 않은(특히 타인에게 냉혹하고 관계에 있어서 비정한) 세상'을 만들어낸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생리와는 배치되나 전시대의 '착함'과는 닮아있는 것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 착한 가격은 비자본주의적인 선택이다?

'착한 가격'은, 가격 전략이라는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선택이,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윤리적 접근으로 이뤄졌다는 의미다. 즉 서민들을 생각한 결정이 가격 인하에 숨어들어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착한 규제'는 골목상권을 지키는 규제인데, 이 또한 규제가 자본주의의 자유로운 작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영세상인을 살린다는 윤리성이 강조되면서 '규제'의 의미를 180도 바꾼 수사법이다.

1993년 북한 평양소주의 뚜껑 옆면에 적혀있었다는 '순하고 착한 술'은, 술이란 상품의 제조과정이나 소비자에 대한 태도가 윤리적이었다는 것에 대한 강조였을 것이다.

착한 식당, 착한 소비, 착한 여행(봉사여행), 착한 드라마(막장드라마로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비윤리적으로 경쟁을 펼치던 드라마가 시청자를 위한 소재로 바뀌었다는 의미), 착한 소비(수익금 일부를 사회환원), 착한 도서관(시각장애아를 위해 건립한 도서관, 소외자에 대한 배려), 착한 건물(탄소 제로로 친환경적) 등, '착함'은 자본주의의 약점을 극복한 나눔과 베품과 배려를 강조한 말이다.
 

[착한거리]



# '착하다'의 확장 유행

'착한'이란 표현이, 새롭게 쓰이면서 비정한 자본세상의 따뜻한 대안으로 등장하면서, 그 온기를 쬐려는 유행어들이 생겨난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무심하게 여겼는데 사실은 좋은 면이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착한'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착한 콜레스테롤, 착한 육식, 착한 식용유, 착한 쓰레기배출 따위가 그것이다. 투입 대비 성과가 정확하거나 획기적으로 큰 것(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적 관념에는, 뼈 빠지게 일하는데도 늘 가난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있다)에 대한 표현으로도 확장된다. '착한 수학' '착한 공부' '착한 연비(연료에 비해 더 멀리 달리는 차는 착하다)' '착한 다이어트(몸을 망치지 않고 건강한 다이어트)' 등이다.

# '착한'이, '내실 있는' '진정한'의 의미로

'착한'이 성적인 은유에 끼어들면서, '신체의 매력이 제 구실을 다하는, 내실이 있는'이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착한 몸매, 착한 글래머, 착한 가슴, 착한 복근, 착한 각선미, 착한 뒤태와 같은 말이 나온다. '착한'이 지니고 있는 정직함의 의미가 신체 부위의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일치로 은유되고 있는 셈이다.

'착하다'의 의미 확장은, 정확하게 말하면 폐기 처분될 위기에 있던 '착하다'는 말이 시대적 정서에 알맞은 참신한 뉘앙스를 지니면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자본주의에 대한 '보정'을 착하다고 표현한 솜씨는, 시대의 공기를 포착한 대한민국 누군가의 날렵한 센스로 봐도 좋으리라. '착하다'는 말 속에, 우리 사회의 숨가쁜 역사가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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