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국 전 LG그룹 부사장이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별세 소식에 남다른 비통함과 소회를 담은 추모사를 남겼다.
정 전 부사장은 20일 구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골프를 칠 때 '제 2의 캐디'를 자처할 만큼 언제나 소탈하게 남을 먼저 배려하시던 구본무 회장님이 오늘 돌아가셨다"며 "그래서 오늘 나는 정말 많이 슬프다"고 회고했다. 다음은 정 부사장의 추모사 전문.
새를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시던 화담(和談) 구본무 회장 께서 불과 73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슬프다. 마음이 몹시 아프다.
내가 처음 구본무 회장님을 알게 된 것은 (주)럭키에 입사했던 1978년 무렵이다.
그때 구 회장은 수출본부에서 관리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대기업 그룹들의 규모가 지금처럼 크지 않기도 했지만, 특별히 무슨 한국 최대 재벌의 아들 같은 분위기도 전혀 없었다. 그저 보통 사람, 관리부장이었다.
특별히 잘 알고 지내지도 않았으며, 그 이후에도 구본무 부장에 대한 별다른 관심이나 인식 없이, 그저 나를 중심으로 바쁘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내가 다시 구 회장님을 가까이에서 뵙게 된 것은 1990년 1월, 당시 럭키금성 회장실 홍보팀 부장으로 승진 발령을 받고서부터다.
구 회장은 당시 럭키금성그룹의 부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때부터는 크고 작은 여러 일로 뵐 기회가 많았고, 나중에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2012년 말까지 23년을 업무적으로, 비업무적으로 가까이서 자주 뵙게 된다.
1995년, 럭키금성에서 LG로 CI를 바꾸고, 새로 출범하는 'LG그룹'의 50세 젊은 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구본무 회장은 ''우리 사회도 이제 바른 길로 기업 경영을 해야 한다''며 "정도경영(正道経営)을 통해 ㄧ等 LG를 달성하자"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신선한 주장이어서 반향이 크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 여건으로는 무리하다는 반응도 많았던게 사실이다. 특히 LG 내부 일선 영업 부서 등에서는 그동안의 관행과 현실적 어려움을 내세우며 다소의 편법은 아직 '필요악' 이라며 볼멘 소리를 했고, 그런 반발에 구본무 회장은 ''당당히 실력으로 1등을 하든지, 부정한 방법으로 일등을 할 거면 차라리 2등을 하라!''며 밀어부쳤다.
구본무 회장은, 크게 도움도 되지 않고 싹싹하지도 않은 나를, LG에서 35년이나 녹을 먹게 해 주신 참 고마운 분이지만 내게 엄청 잘해 주거나 하시지는 않았고, 실제로도 칭찬 받은 기억보다 야단 맞은 기억이 훨씬 더 많기도 하다.
또한 구 회장은 내가 일을 시원찮게 했을 때는 불같이 화를 내며 호되게 야단도 치셨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억울하다거나 이른바 '재벌의 갑질'이라는 식의 생각을 한 적은 없었으며, 늘 내가 잘못했고 누를 끼쳐드렸으며 미안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부하 직원이라고 해서 '이유 없이 함부로' 마구 대하지는 않으셨다.
게다가 화를 내고 나서는 시간이 지난 다음, 쑥스러워하며 이런 저런 방법으로 은근히 미안하다는 마음을 표현하시는 분이 또한 구본무 회장이다.
1995년 LG상남언론재단을 설립하며 나를 상임이사로 임명하고 이사진은 전원 외부의 언론인이나 관련 교수로 구성하면서 "앞으로 언론재단 일은 전적으로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저나 LG는 전혀 신경쓰지 마시고 최고의 언론재단으로 잘 운영해 주이소"라고 한 약속을 끝까지 지켜 최근까지도 일절 언론재단 일에 간섭하시지 않았다.
1998년 IMF 정국의 이른바 '반도체 빅딜' 때는 어쩔 수 없이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겨 주게 되지만, 마지막 순간 전광석화처럼 'LG LCD(액정표시장치)'를 설립해 당국과 현대의 허를 찌르며 이 땅에 디스플레이 산업의 초석을 다지는 결단을 내리셨던 구본무 회장.
가끔 공식적인 일로 외부 행사장에 모시고 갔을 때 보면, 결코 앞 줄에 나서지 않고 잘난 척하지도 않으며 조용히 뒤에 서 계시다가 행사가 끝난 직후에는 운전기사에게 직접 핸드폰으로 전화해 차를 나오라고 했고, 행사장 주차 공간이 복잡할 때는 도로 건너편 어디든 한가한 곳으로 차를 대라고 해서는 때로 지하도를 건너 차까지 걸어가 직접 차문을 열고 타시는, 그런 분이 구본무 회장이다.
당연히 그래서 구 회장은 나대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들을 '별로'로 여기셨다.
2000년대 초 무렵, 소위 '차떼기 사건'이 터졌을 때는 ''정도경영을 떠들던 내가 창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며 당시 TV에서 틀고 있던 '정도 경영, 사랑해요, LG' 광고를 바로 내리라고 지시했고, 그해 연말의 언론인 모임 송년 행사장에도 사람들 볼 낯이 없다며 참석하지 않으실 정도로 경우 있고 염치를 아시던 정말 양심적인 분이다.
2003년에는 우리나라 대기업그룹으로서는 최초로 지주회사체제를 도입해 한국 기업사의 과제였던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천해 오너는 지주회사 지분을 소유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혁신적인 자율경영 시스템을 앞장서 도입하기도 하셨다.
또한 GS, LS, LIG, LF로 계열분리를 할 때도 "좀 더 가진 사람이 양보하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며, 57년간 함께 동업하던 분들과의 관계를 아무 잡음 없이 잘 마무리해 당시 언론에서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런 사례는 없다며 "아름다운 동업, 아름다운 이별" 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회사를 그만둘 때는 충분히 오래 다녔음에도 섭섭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런 나의 소인배적 심사를 눈치 채셨는지, 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따로 불러 금일봉과 함께 따뜻한 위로의 말씀으로 격려해 주셨고, 나중에는 LG상남언론재단의 감사를 시켜 주기도 하셨다.
'부하 직원에게라도 혹시 내가 인간적으로 잘못하고 있지나 않은지'. 언제나 그런 것들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고 걱정하시던, '인간적인, 그야말로 인간적인' 분이 구본무 회장이다.
외부와의 약속은 물론, 내부 임직원과의 약속에도 언제나 15분 정도 먼저 도착해 손님을 맞고, 식당에 가서도 서빙하는 종업원들에게는 많은 돈은 아니어도 꼭 팁을 따로 챙겨 조그맣게 접어 손에 꼭 쥐어 주고는 하시던 인자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떤 모임에서나 좌중이 썰렁하기라도 하면 마치 당신의 책임이라도 한 듯 미리 준비해 온 다양한 유머와 마술, 그리고 우스개 소리로 여러 사람들을 편하고 즐겁게 웃겨 주시고, 누구를 만나도 먼저 명함을 건네며 "저 LG 구본무 입니다. 이거는 그냥 찌라십니다. 받아 두이소" 하시던 동네 아저씨 같던 구본무 회장.
골프를 칠 때는 '제 2의 캐디'를 자처하며, 그린의 경사도 봐주고 깃대도 들어 주며 언제나 소탈하게 남을 먼저 배려하시던 구본무 회장님이 오늘 돌아가셨다. 그래서 오늘 나는 정말 많이 슬프다.
함께 모시는 동안, 혼자 잘난 척하며 회장보다는 회사를 위한답시고 입바른 소리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여러 일들도 개코도 아무 것도 아닌 치기 어린 짓꺼리였으며, 이제 와 생각하니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그냥 뭐든지 하자시는대로 따르고 말씀드릴 것을. 지금 구본무 회장님과 웃으며 함께 찍은 사진을 본다. 하늘나라에서도 여러 사람들을 편하고 즐겁게 해 주고 계시는 회장님의 모습을 그려 본다.
구본무 회장님의 명복과 영생을 마음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