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구본무 LG 회장의 역할이 그룹 내에서 큰 것은 사실이나, 그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여전히 안정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20일 구 회장의 타계 소식을 전해들은 재계 한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업계에서 국내 4대 그룹의 하나인 LG의 구심점(구 회장) 부재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그는 “LG그룹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얘기”라며 이같이 밝혔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으로 안정적인 시스템 갖춰
무엇보다 LG그룹의 전문경영인 경영 방식은 오너 부재 시에도 흔들림 없는 경영의 안정성을 높이는 핵심 비결로 꼽힌다. LG그룹은 LG(하현회 부회장)·LG전자(조성진 부회장)·LG유플러스(권영수 부회장)·LG화학(박진수 부회장)·LG디스플레이(한상범 부회장)·LG생활건강(차석용 부회장) 등 주요 계열사에 전문경영인을 두고 각자 경영을 펼쳐왔다.
LG그룹 관계자는 "LG그룹은 워낙 경험 많고 연륜 있는 전문경영인들에 계열사를 맡기는 LG 특유의 책임경영을 펼쳐왔던 만큼, (세대교체라는) 변화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광모 역할론도 커져
이와 함께 그룹 내부에서는 'LG가(家) 4세'인 구광모 LG전자 B2B(기업 간 거래) 사업본부 정보디스플레이(ID) 사업부장(상무)에 대한 기대감도 나오는 상황이다.
구 상무는 구 회장의 외아들이다. 친부는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전자 회장으로, 2004년 장남 승계 원칙이라는 LG그룹 전통에 따라 구 회장의 양자로 입적했다.
LG그룹 내에서 이미 구 상무에 대한 후계구도 대비의 시동이 걸렸다. LG㈜는 오는 6월 29일 이사회를 열어 구 상무를 등기이사로 추천하는 안건을 의결하며, 구 상무는 LG㈜ 이사회의 정식 멤버로 참여하게 된다.
다만 일각에선 올해 40세인 구 상무의 '젊은 나이' 때문에 당분간은 구본준 부회장이 실질적 그룹 경영을 책임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구 부회장이 한동안 그룹 경영을 맡다가 구 상무가 일정 나이가 되면 경영권을 물려준다는 이른바 '징검다리 승계론'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는 LG그룹의 전통인 장남 승계 원칙과 거리가 있는 방식이어서 현실화 가능성에 물음표를 찍는 시각도 많다. 최근 LG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을 살펴봐도 향후 그룹 경영 안정성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먼저 LG전자의 경우 지난해 연간으로 매출액 61조4024억원을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연간 매출 60조원 시대를 열었고, 영업이익도 2조4685억원으로 사상 최대였던 2009년(2조6807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벌어들였다.
LG화학은 지난해 매출 25조6980억원, 영업이익 2조9285억원을 달성해 창사 이래 최대 경영실적을 보였다.
LG생활건강도 작년에 중국과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갈등으로 인한 관광객 급감 등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사상 최대의 연간 실적(영업이익 9303억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최근 수년간의 호실적이 각 계열사의 전문경영인 체제 속에서 나왔다는 점은 총수 세대교체에도 불구하고 당장 큰 경영 방식이나 시스템의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스마트폰 등은 과제로
물론 일부 예상되는 어려움도 있다. LG그룹 핵심 계열사인 LG전자에서 스마트폰 등을 담당하는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스) 사업본부는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영업손실을 내는 등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2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냈으나 올해 1분기에는 6년 만에 첫 영업적자를 기록한 상태다. 더욱이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가격 하락세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부분적이나마 악화된 실적은 경영권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이는 4세 경영의 바통을 이어받은 구 상무 오너 체제에는 과제이자 도전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거세진 미국발(發) 통상압박 역시 리스크 요인이다.
업계에서는 LG그룹의 핵심 계열사들이 떠안은 이런 요인들을 고려해, 구 상무가 본격적으로 그룹 경영권을 잡으면 핵심사업 중심으로 사업 개편을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