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모두 웃은 '쌍용차 평택공장'
쌍용차는 지난 2일부터 평택공장 조립 1라인과 3라인에서 심야근무 없는 주간 연속 2교대(8+9시간)를 본격 시행했다. 쌍용차 노사는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정부 방침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이번 근무형태 변경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총 근무 시간도 줄어들었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늘게됐다. 주간 연속2교대를 통한 생산 라인 재배치와 유연성 확보를 통해서도 직원들의 삶의 질 자체가 높아진 것도 궁극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됐다. 실제 주야2교대 당시 총 71대이던 시간당 생산량은 74.4대로 약 7.6% 늘어날 전망이다.
자동차 무게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가스틸·마그네슘 강판
정정화 선생이 존경하던 어르신, 백범이 암살 당한 후, 세상은 친일파들의 것이 됐다. 그리고 6월 25일, 백범과 우사가 그토록 경고했던 동족상잔의 비극이 끝내 터지고야 말았다. 이승만은 서울을 사수한다는 거짓말을 남긴 채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줄행랑을 쳤다. 이승만을 믿었던 서울시민들은 꼼짝없이 갇혔다.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면서 중국에서의 동지들은 한반도에서 적이 되는 참담한 상황이 벌어진다. 인천 쪽에서 연일 함포사격의 굉음이 들리던 날, 건장한 청년들이 남편을 데리고 간다. 성엄 김의한은 그렇게 납북되었다. 소앙도, 우천 조완구도, 일파 엄항섭도 모두 그렇게 끌려갔다. 반평생을 이국땅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조국에 돌아와서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원망하지 않고 '민족구성원으로서 응당 떠맡아야할 책임'으로 여겼던 정정화 선생. 그런 그는 그때 비로소 조국에 하소연한다.
"왜 이다지 험하기만 할까? 왜 이다지 매정할까? 잘못이 내게 있다면 나를 처벌하라고. 내가 더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나를 부르라고... 그러나 조국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36년이 덧없이 흘렀다. 어찌 나 하나뿐이겠는가. 특히 성엄은 외아들인 자동이를 무척 아끼고 애지중지했다. 그러나 그가 지금껏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정신적인 부담이 더 크리라고 본다. 만약 성엄이, 자동이의 아버지가, 내 남편인 그가 살아 있다면 말이다. 나는 이제 구십 수를 바라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