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외식 프랜차이즈들이 자율(self·셀프) 배식·퇴식 제도를 도입했다. 서빙 등 홀에서 근무하는 인력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소비자들은 “뷔페까지 가서 일도 해야 하느냐”, “그렇다면 가격을 내려라”며 반발했다.
풀잎채는 자율 배·퇴식을 기본으로 하는 새 브랜드를 선보이고, 오히려 소비자 호응까지 이끌어냈다. 커피숍에서는 손님들이 스스로 음료를 주문하고 컵을 반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점에 착안했다.
◆커피숍 같은 한식당, 소비자-업체 ‘가성비’ 윈윈
'사월에 보리밥과 쭈꾸미'는 한 가지 메인 요리를 선택하면 나머지 3개의 곁들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주꾸미 정식을 주문하면 주꾸미 볶음, 고르곤졸라 피자, 수제 함흥 물냉면이 나온다. 가격대는 1만~1만5000원이다. 최근 가격대를 7500~9000원으로 대폭 낮춘 셀프형 매장을 선보이면서 매장 형태는 총 세 가지로 늘었다. 소비자는 음식을 주문한 후 진동벨이 울리면 가져오고, 보리밥과 다섯 가지 나물도 직접 가져다 무한대로 먹을 수 있다.
커피전문점과 닮아 있는 것은 진동벨 자율 시스템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투썸플레이스에서 우리가 주문하는 것은 즉석 제조음료인 커피이고, 진열돼 있는 것은 냉장보관해도 되는 병 음료나 케이크 등이다. '사월에 보리밥과 쭈꾸미' 역시 메인 요리는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어주고, 보리밥과 나물은 샐러드 바(bar)에 채워두는 식이다.
정 대표는 “'사월에 보리밥과 쭈꾸미'는 샐러드 바에서 간단하게 본인이 원하는 걸 가져와서 먹다가, 진동벨이 울리면 주문한 메인 음식은 우리가 가져다준다. 그러면 뷔페 즉석음식 코너에 주문해 바로 먹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지난 2월 NC백화점 경기 평택점에 선보였던 첫 번째 셀프 매장 반응이 좋아 지난 5일 서울 목동 행복한 백화점 풀잎채를 '사월에 보리밥과 쭈꾸미' 매장으로 교체했다. 생선구이 라인업을 보강한 ‘화덕 추가형’이다.
“따뜻한 건 따뜻하게, 차가운 건 차갑게 먹어야 좋지 않아요?”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풀잎채에서도 회전율이 높은 매장이 아니면 결코 쉽지 않다고 정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풀잎채는 음식을 준비해 둔 상태에서 손님이 선택해 먹는다. 그러다 보니 음식이 뜨거운 건 뜨겁지 않고, 차가운 건 차갑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매장이 아주 잘되면 계속 음식을 만들고 갖다 주면서 자연스럽게 즉석제조가 가능하지만 대한민국에 그런 매장이 과연 몇 개나 될까”라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기존 한식 뷔페와 알라카트(a la carte·일품요리) 방식을 절충한 '사월에 보리밥과 쭈꾸미'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인건비를 줄였다고 해서 제품 가짓수를 무조건 늘리는 것보다는 질을 높이기로 했다. 음식을 제공하는 시간과 온도를 유지해 더 맛있게 제공하는 것, 그렇지만 비싸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곁들임 음식은 셀프 배식을 통해 해결했다. 목동점도 풀잎채 간판을 우리 스스로 내리고 '사월에 보리밥과 쭈꾸미'를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라며 “주꾸미는 4월이 제철이다. 브랜드명처럼 항상 제철 음식을 공급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사월에 보리밥과 쭈꾸미' 매장은 개점 예정인 곳까지 현재 11개다. 셀프형 매장을 도입하면서 실제로 인건비가 최대 18%까지 줄었다. 가격 인상을 하지 않고도 비용 절감 효과를 본 셈이다.
◆8500원짜리 냉면에도 ‘제대로 주는’ 집
정 대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새 브랜드 ‘전복죽 주는 냉면(이하 전주냉)’을 선보인다. 곤드레나물 등 신선한 야채가 주를 이루는 풀잎채, 주꾸미 비빔밥이 맛있는 '사월에 보리밥과 쭈꾸미'처럼 전주냉도 정직하게 핵심 메뉴를 이름에 담았다.
기존 풀잎채 즉석 제조 냉면이 맛있기로 소문나자, 롯데백화점에서 푸드코트 재개장 공사 기간 동안 팝업스토어 개념으로 냉면집 운영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정 대표는 그냥 냉면만 주긴 밋밋하고, 이제껏 못 들어본 전복 냉면을 만들기로 했다. 전복 내장으로 죽을 만들어 공짜로 죽도 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실 롯데백화점 지하에서 5개월 정도 시범 전주냉을 운영했다. 당초 예상한 월 6000만~7000만원을 훌쩍 뛰어넘어 월 1억1000만~1억5000만원 매출을 올렸다. 재개장 공사가 끝난 후에도 소비자들로부터 “그 냉면집 어디 갔느냐”는 문의가 빗발쳤다.
“냉면 먹고 나면 뭐가 좀 아쉽잖아요. 그죠?”
잘 먹는 사람이 요리도 잘한다는 말이 있는데, 정 대표는 먹는 이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었다. 정 대표는 가격 대비 질과 심리적 만족을 모두 따지는 요즘 소비자들의 취향을 정확히 꿰뚫었다.
정 대표는 “주부들이 냉면 먹으러 왔는데, 애기한테 줄 게 없어 난감해하더라. 내가 전복죽을 주니까 애기는 전복죽을 먹고 엄마는 먹고 싶은 시원한 냉면을 먹어 둘이 동시에 만족했다. 일반 냉면 시킨 사람한테도 전복죽을 준다. ‘맛보기’ 식으로 조금 주는 게 아니고, 150g 정도에 전복도 씹힐 만큼 넣는다. 나는 또 주면 제대로 주는 스타일”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롯데는 풀잎채에 전주냉 정식 입점 계약을 제안했다. 롯데쇼핑에 일부 투자와 함께 백화점과 아울렛 등 쇼핑몰 등에 입점 시 임대료 인하 혜택을 준다. 대신 전주냉은 백화점의 경우 롯데에만 입점할 수 있다. 인테리어와 마케팅 단계부터 양측이 함께 기획 중이다.
지난 13일 잠실 롯데캐슬에 전주냉 1호점이 문 열었다. 이어 20일 부산 서면점, 창원 롯데백화점에 3호점이 오픈한다. 유통사와 외식업체가 정식 업무협약 한 첫 사례다.
올해 목표는 풀잎채, 사월에 보리밥과 쭈꾸미, 전주냉이 시너지를 내도록 안착시키는 것이다. 풀잎채 목동점을 사월에 보리밥과 쭈꾸미로 변경한 것처럼, 상권 상황에 따라 규모가 큰 풀잎채 매장은 사월에 보리밥과 쭈꾸미와 전주냉 두 개를 더한 매장으로 교체할 수도 있다. 풀잎채를 기반으로 레고 블록 조립하듯 브랜드를 유기적으로 디자인할 계획이다.
최근 외식 트렌드는 메뉴의 다양성이 아닌 카테고리의 특색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메뉴 집중에 중점을 두고 반찬만 늘리기보다는 일품요리 중심으로 가려고 한다”며 “하나를 먹어도 제대로 먹는 건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냉면 하나를 아주 맛있게 먹는 것도 좋지만 전복죽하고 먹으면 그것도 색다르지 않으냐. 카테고리에 어떤 것을 더하느냐의 싸움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전주냉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메뉴도 의외로 소비자 호평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보통 냉면에 갈비나 만두가 잘 어울린다고 해서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냉면에 나물비빔장과 칼국수도 먹을 수 있다. 면에 면을 더하면 이상할 것 같은데도 굉장히 반응이 좋다는 것을 확인했다. 주꾸미도 마찬가지다. 주꾸미 비빔밥에 고르곤졸라 피자나 물냉면, 비빔면을 함께 구성했다. 부조화 같지만 소비자들이 너무 좋아해 자신을 얻었다. 한 가지 집중하는 맛집이 아니면 이렇게 다양하게 주는 게 낫지 않으냐”고 되묻기도 했다.
끝으로 정 대표는 “전주냉, 사월에 보리밥과 쭈꾸미 이런 것들이 풀잎채와 앙상블을 이루며 가지를 뻗어나가 올해 초석을 이뤘으면 한다. 풀잎채는 성장에서 안정기로 접어들고, 나머지 두 개는 도입에서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한 기초공사를 하는 게 올해 소원이다. 그리고 수익을 많이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