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9일 개봉하는 영화 ‘당신의 부탁’(감독 이동은)은 배우 임수정(39)에게도 새로운 변화였다. 2년 전 사고로 남편을 잃은 32살 효진(임수정 분)이 죽은 남편의 아들인 사춘기 소년 종욱(윤찬영 분)을 맡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이 작품에서 임수정은 죽은 남편이 남기고 간 아들의 법적 엄마 효진 역을 맡아 이전과는 다른 연기 결과 캐릭터를 선보였다. 그녀의 첫 엄마 역할이라는 것 또한 세간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첫 엄마 역할이긴 하지만 어렵거나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만약 효진이 낳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어려웠을 수 있겠는데요. 효진은 32세의 젊은 여성이고 난데없이 남편의 아들을 맡아 엄마가 되어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그가 가진 난감함과 당혹스러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죠. 접근할 때도 어렵지 않았어요. 큰 부담 없이 연기할 수 있었죠.”
엄마 역할을 맡게 된 것에 대해서도 임수정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몇 년 전부터 엄마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해왔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입장이었다.
‘당신의 부탁’은 다양한 엄마들이 등장한다. 초보 엄마인 미란(이상희 분)부터, 딸 걱정에 잔소리만 늘어놓는 효진의 엄마 명자(오미연 분), 생각지도 못한 임신으로 아이를 입양 보내기로 한 종욱의 친구 주미(서신애 분), 엄마가 되고 싶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어 주미의 아이를 키우기로 한 서영(서정연 분)까지. 함께 사는 다양한 엄마들이 등장, 일반적인 혈육 관계부터 더 넓은 의미에 대한 엄마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임수정 역시 엄마라는 존재를 환기하고 실제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작업이었을 터.
“효진을 연기하면서 엄마를 많이 생각했어요. 저와 남동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역할을 주로 하셨죠. 우리 영화를 보면서 ‘엄마라는 건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꼭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엄마가 될 수 있고, 엄마라고 부를 수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는 작업이기도 했죠.”
영화 ‘당신의 부탁’은 피가 섞이지 않은 종욱과 효진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영화 전반에 리얼리티라는 베이스를 깔아두었기 때문에, 임수정 역시 캐릭터와 상황 설정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고. 특히 종욱이 효진의 집에 오게 되는 과정은 현실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거들었다.
“종욱이 효진의 집에 오는 상황이 납득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무너지면 관객들이 (영화 전반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고 효진의 심리 상태를 깊이 파고들었어요. 극 초반, 남편을 잃고 상실감·우울감에 빠진 효진이 친구인 미란에게 ‘어릴 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오빠 모습이 보이더라’고 말하잖아요? 쉽사리 종욱을 떨쳐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해요. 거기다 (효진의 행동이) 우울증의 증상이기도 한데 심사숙고하지 못하고 결정해버리는 단편적인 면을 보여준 거기도 하고요. 종욱을 데려오면서도 엄마가 되어야겠다거나 그가 엄마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좋겠다는 등의 생각도 없었을 거예요. 남편의 아이고 홀로 지내게 되었고 나 역시 혼자니 그냥 우리 집으로 오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젊은 새엄마와 사춘기 아들. 듣기만 해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관계는 캐릭터를 넘어 임수정과 윤찬영에게도 미묘한 거리감(?)을 만들었다고.
“아직도 호칭이 없어요. 하하하. 누나라고 부르라기엔 너무 부끄럽고 오글거려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요. 엄마와 누나 사이에 있는데 선배는 너무 거리감 느껴지고….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서로가 규정짓지 않고 지내는 것 같아요. 그런 관계가 (연기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억지로 가까워지려 하거나 둘 사이에 침묵이 생겨도 굳이 메우려고 하지 않았어요. 찬영군도 그 침묵을 묵묵히 잘 견디고 편안 해하더라고요. 감독님께도 ‘우리가 이렇게 같이 있다 보니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만 편안하게 느껴지는 공기가 만들어진다. 영화 초반에 담겼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감독님도 이에 동의했고 극의 흐름대로 천천히 친해지려고 했죠. 자연스럽게 영화에 담긴 것 같아요.”
이번 작품, 효진의 캐릭터는 임수정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 작품이다. “온몸의 힘을 빼고 연기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성장하고 확장되었다”는 느낌을 선물한 것이다.
“힘을 쭉 빼고 연기를 하는 게 효진답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어떤 부분은 더 잘 표현되기도 하더라고요. 연기로 더 리얼해지고 깊은 감정도 한 단계 성장했다고 보고 다른 측면에서도 성장하고 확장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전의 연기와는 또 다른 느낌, 다른 깊이감을 표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소중한 경험이죠.”
영화 ‘김종욱 찾기’, ‘전우치’, ‘내 아내의 모든 것’ 등 상업영화에서 활약해온 임수정은 최근 ‘더 테이블’에 이어 ‘당신의 부탁’까지 저예산 독립영화에 연달아 출연하게 됐다.
“본의 아니었지만 최근 영화 두 편이 모두 인디 영화였네요. 인디 영화·독립영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몇 년 전이었어요. 크고 작은 영화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진지하게 저예산 영화들을 보기 시작했거든요. 수준이 너무 높고 다양한 소재와 개성 있는 이야기들, 인재들이 좋더라고요. 배우들도 훌륭하고요! 이런 영화들이 한국영화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관객들이 자주 접하고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다가 상업영화에서 활동 중인 감독, 배우, 제작사가 눈을 돌려서 인디와 협업한다면 대중들이 더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좋은 제안이 오면 선뜻 참여하게 된 거죠.”
임수정은 앞으로 더 “천천히 가고 싶다”고. 영화 작업을 진행할수록 더더욱 선명하고 분명해지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작품들을 천천히 해야 만족하고, 선보일 때도 대중이 좋아할 거로 생각해요. 저의 작품목록 중에도 시행착오가 분명 있었거든요. 기대만큼 결과가 안 나오기도 하고 당시에는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잘 어울리지 않았던 작품도 있었어요. 자기검열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라는 배우를 냉철하게 보게 되었어요. 몇 번의 실패로 하여금 다른 시선으로 작품에 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