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머니백’(감독 허준형)은 더럽게 운 없는 남자 민재의 ‘운수 좋은 날’이다. 각기 다른 사정을 가진 7명의 남자가 하나의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뺏고, 달리고, 쫓기는 추격전을 담고 있다.
지난해 영화 ‘대립군’부터 ‘기억의 밤’, 드라마 ‘나쁜 녀석들’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배우 김무열(36). 그는 기존의 날카롭고 예리한 이미지를 벗고 지질하고 ‘웃픈(웃기고 슬픈)’ 취준생 민재 역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가진 건 몸뚱이뿐인 취준생 민재를 통해 김무열은 또 한 번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증명해냈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워낙 상황이 빠르게 돌아가고 얘기하고자 하는 것들이 있어서 ‘연기로 안 웃겨도 되겠다’고 했는데, 자리에서 보니까 ‘아, 웃겼어야 했나?’ 걱정되더라고요. 그래도 다행히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서 긴장감을 사르르 녹여주었죠. 코미디 영화는 이런 걱정들이 있더라고요.”
“민재 캐릭터에 뭔가 더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일부러 더 지질해 보여야겠다거나, 불쌍해 보여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죠. 민재만 두고 보면 너무 비극적인 상황이니까요. 비극적 상황, 민재의 선택에 대해서만 생각했어요. 영화적 웃음은 민재를 둘러싼 인물들에게서 나오니까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게 우리 작품의 특징 아닐까요?”
지질해 보이려고 노력한 건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극 중 민재는 독특한 표정으로 시종 관객들의 짠내를 유발했다. 그 ‘지질한 표정’에 대해 김무열은 “저도 깜짝 놀랐다”며 표정 연기에 대해 해명(?)하기 시작했다.
“표정이 왜 저러지? 당황했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눈에 특수분장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억울한 표정이 만들어지더라고요. 영화를 보면서 제 표정이 낯설었는데 나중에는 ‘아, 분장 덕에 도움을 받았구나’ 싶더라고요. 영화 초반에 양아치에게 얻어맞고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지는 일들을 담다 보니 가라앉을 새가 없었어요.”
극 중 민재는 그간 김무열이 보여준 캐릭터와는 사뭇 달랐다. 스크린·브라운관에서 보여준 예리함과는 달리 민재는 수더분하고 허점도 많았다. 도대체 민재의 어떤 면에 마음이 동한 걸까?
“캐릭터보다는 영화의 전체적 콘셉트가 마음에 들었어요. 굳이 진지해 보이려고 하지 않고, 웃기려고 하지도 않는 B급 감성이 좋더라고요. 뭔가 패를 까고 시작하는 것 같았어요. 민재의 비극적 상황에 대해서는 저만의 감성으로 다가가려고 했어요. 아무래도 제가 하면 저만의 민재를 보여드릴 수 있지 않겠어요?”
가까워지기 힘들 것 같은 운 없는 남자 민재에 대해, 김무열은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고 고백했다.
“어머니에 대한 민재의 사랑은 공감할 수 있었어요. 가장 마음이 가더라고요. 뻔한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데, 민재가 어머니를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저의 모습과 겹쳐 보였어요. 저도 옛날에 아버지가 몸이 아프셨고, 병시중도 했었고, 수술비에 걱정도 했었거든요.”
김무열은 과거 IMF로 집안이 무너졌던 때도 언급했다. “돈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을 때”라고도 했다.
“IMF를 기점으로 사정이 정말 안 좋아졌어요. 당시 제가 중학생이었는데, 질풍노도의 시기잖아요. 정말 친한 친구들을 피해 잠적한 적도 있었어요. 배우로 인정받고 수입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친구들도 멀리하고 지냈던 거 같아요. 돈이야 뭐, 항상 있어도 모자라지만 그땐 정말 없었거든요.”
민재의 아픔을 알기에 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 김무열의 설명. 더불어 그는 민재 캐릭터로 하여금 관객들이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도록” 연기 포인트를 잡았다고 말했다.
“시종일관 억울한 표정이 포인트죠. 민재가 처한 상황이나 그의 선택도 굉장히 답답하잖아요. 그 느낌을 가져가고 싶었어요. 그러다 민재가 잠깐 돈을 쥐었을 때, 그 웃는 얼굴에서 답답함이 해소되길 바랐죠. 저도 민재가 웃는 걸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관객들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는 코미디 연기를 줄곧 했었다는 그는 스크린과 무대의 ‘코미디 호흡’ 차이점을 짚어내기도 했다.
“저는 코미디를 좋아해요. 무대에서는 코미디 연기를 자주 경험해봤는데요, 사람을 웃길 수 있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공연은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는 반면 영화는 시차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를 찍을 때, 관객 반응이 궁금했어요. ‘이 장면에서 웃을까?’ 걱정됐었던 거죠. 그런데 막상 영화를 관람하니 관객 마음은 똑같더라고요. 작품을 감상하러 오신 마음은 같다는 걸 느꼈어요. 웃음 포인트에 웃어주시고 열린 마음으로 봐주시고요.”
지난해부터 김무열은 쉬지 않고 달려왔다. ‘대립군’, ‘기억의 밤’, ‘나쁜 녀석들2’, ‘머니백’에 김지운 감독의 ‘인랑’ 촬영도 함께하고 있는 상황. ‘머니백’ 홍보 이후에도 바쁜 나날을 보낼 예정이다.
“시기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가치 있는 일이라 쉬지 않고 (연기를)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다른 속물적 이유를 꼽자면 돈이겠죠? 하하하. 일을 열심히 해야 할 때기도 하고요. 바쁘지만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게 될 때가 가장 기쁜 것 같아요.”